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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니뿌니 Sep 30. 2022

수업 스케치 7_선생님 사람도 학생 사람만큼 힘들다.

수업의 공포

설명


내가 많이 알고 있는 것과, 그걸 제대로 상대에게 전달하는 건 확실히 다른 능력인 듯하다. 잘 배우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이 다른 능력인 것처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잘 가르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수업 중에는 사실 강의교안이 있긴 하지만 그때그때마다 순서며 내용이 살짝 달라지기도 하고, 때에 따라 사례를 달리하여 설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어쩌면,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똑같은 내용을 어떻게하면 조금씩 다르게, 달라보이게, 그럴듯하게 설명하는가의 달인들일 것이다.


머릿속에는 수업시간만큼의 설명이 순서에 맞게 타임라인이 만들어져 있어서, 머리와 입의 작동 속도가 비슷하고 동기화되어야 매끄럽지 이 중 하나라도 속도가 빠르거나 느리게 되면 말이 꼬여, 학생들이 알아듣기 요상한 말이 튀어나와 난감해지는 경우가 있다. 조금 후에 설명할 내용이 아주 중요한 경우에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긴장하다가, 뇌와 입의 동시성이 잠깐 끊어지면서 여지없이 뒤의 말이 먼저 튀어나와 허겁지겁 끊어진 문맥을 연결하느라 애를 먹는다. 성격 급한 교수의 설명은 그래서 더 알아듣기 힘든데, 재미있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교수들이 그런다는 것이다. 스킬의 부족을 인정하는 수밖에.


더군다나 분반이 되어 있는 경우에는 같은 내용으로 수업을 하다 보면 두 번째 반에서는 강의 속도가 빨라져서 수업이 좀 일찍 끝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인데, 이럴 때는 재미있는 선배들의 실수담이 단골 소재가 되기도 한다.

typography 학생들 작업

실수


여기다가 다양한 사례들을 접목시켜야 하고, 가끔 조는 학생들을 위한 멘트도 날려야 하고, 더불어 예측 가능한 결과물의 홀로그램(?)도 학생들의 머릿속에 띄워주어야 하는 과정도 수반한다. 최대한 집중해서 '썰'을 전파하는 도중에 뜬금없는 질문이 튀어나오는 경우 장황하게 답이 길어지다 보면 답이 마무리될 때쯤 가끔 '나는 어디?'를 되뇌며 원래의 설명으로 돌아가기 위해 내가 아까 어디까지 설명했더라....... 를 찾아야 한다. 대개는 질문으로 인해 잘린 '썰'의 끝을 찾아가지만 정말 못 찾을 때는 학생들에게 정중히 여쭙는다. "내가 무슨 얘기 했었니?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몇 년 전 강의평가에 이런 얘기도 있었다. 설명을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가끔 삼천포로 빠지신다고........


업그레이드의 공포


소프트웨어는 나날이 발전한다. 아니 진화한다. 수업 중에 가끔 가르치는 선생보다 소프트웨어를 더 잘 다루는 학생을 만날 때가 있는데 이때 교수의 반응을 보면 아주 재미있다.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고 폭풍 칭찬과 함께 학생을 띄어주거나, 아니면 그게 언제 그렇게 바뀌었지?...... 하고 요즘 업그레이드는 너무 복잡하고 빨라서 오히려 사용성에 문제가 생겼다고 넌지시 비난한다. 그리고는 연구실로 돌아와 빨리 유튜브에서 해당 기능을 보고 공부해서 다음 시간에는 마치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척한다.


학교 실습실에는 좋고, 비싸고, 높은 사양의 컴퓨터와 소프트웨어가 수두룩 있을 것 같지만, 학교의 재정 상태는 항상 넉넉지 않아서 실습비 한 번 타려면 이게 온갖 서류에 본부를 못살게 졸라야 겨우 얻어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최적 가격과 최저 가격 사이에서 묘한 줄다리기를 한 끝에 알지도 못하는 조달청 가격이라는 제한을 두어 구매 결정이 내려지고, 그래서 견적서 상의 스펙과는 아무 상관없는 엉뚱한 모델이 들어오기도 한다. 근데 왜 매번 견적서를 같이 내라는 건지...... 그래서 항상 최신의 버전을 갖추기는 매우 어렵고, 그래서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용 컴퓨터의 사양보다 낮으면 낮았지 절대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컴퓨터는 그나마 낫다. 소프트웨어의 상황은 더 안 좋아서 학생들이 쓰는 높은 사양의 프로그램보다는 한참을 뒤처지게 되는데, 학생의 개인용 노트북에서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볼 때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허걱 한다. 더 난처한 것은 학생이 최신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에 대해 질문을 할 때다. 대개는 비슷한 위치에 비슷한 기능이 있기 때문에 눈 부릅뜨고 메뉴와 패널들을 찾다 보면 설명이 되긴 하지만 '이게 이쯤에 있을 텐데...... '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살짝 민망하기도 하고 그렇다. 잦은 업그레이드는 그래서 공포다.


상대가 누구건 간에 가르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래서 더 어렵다. 무엇인가를 가장 확실하게 이해하는 방법은 그 무엇을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디자이너에게 웹 코딩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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