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들이 신고다니는 신발같으다, 야."
나는 결혼 전, 즉 코로나 전까지만해도 매일 강남으로, 잠실로 출근했다. IT 회사다보니 자유로운 복장이 가능해서 빨간색 샌달을 즐겨 신었다. 꽃 자수가 화려하게 놓여진 자라 맨투맨에 청바지, 그리고 빨간색 오픈토 플랫폼 샌달. 혹은 선인장 그림이 그려진 검은색 플리츠 원피스에 빨간색 스틸레토 샌달을 신었다.
두 켤레 모두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버려졌다. 2만원, 3만원 주고 산 신발들인데 2년을 신었더니 너무 낡았었고, 무릎에 무리도 가서 신을 때마다 발과 무릎이 아프다고 남편에게 호소했다. 그래도 계속 신으면서 새 신발을 사지 않는 나에게 남편은 "결혼하면 쟤네부터 없애버릴거야"라고 벼르고 있었고, 집에 입주하자마자 재활용도 안된다며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대신 백화점에서 훨씬 좋은 와인색 플랫슈즈와 초록색 에나멜 스틸레토를 샀다.
하지만 결혼 이후 재택근무를 해서 그런지, 새로 산 신발 대신 크록스를 자주 신는다. 사실 매일 신는다. 우리 집엔 남편과 나의 겨울용, 여름용 4켤레가 있고 여름, 겨울엔 시어머니 그리고 엄마에게도 한켤레씩 선물해드렸다.
작년 겨울 남편, 엄마와 쇼핑하면서 남편이 사준 연보라색 털달린 크록스가 내 첫 크록스였다. 엄마에게도 크록스는 처음이었다. 이런 애기들이 신을법한 뭉툭하고 구멍이 숭숭 뚫린 신발은 낯설었다.
"이거 아들 (애들) 신발 아니가?"
처음엔 희한하게 생긴 신발이 6만원이나 한다니, 시큰둥한 척했지만 일단 신어보라는 남편 말에 나와 같은 연보라색 털달린 크록스를 신어봤다. 지비츠도 붙였다. 불이 반짝반짝 들어오는 아이스크림 모양이었는데, 한 발 한 발 걸을 딛을 때마다 반짝거리는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 내 크록스의 털이 납작해졌을때 쯤, 남편 할머니의 생신이 다가왔다. 우리 할머니에 대해서는 책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93세에 발리 여행을 다녀오신 분이라고하면 얼마나 멋쟁이신지는 어느 정도 감이 올 것 같다. 여행도 나보다 더 많이 다녀보셨고, 나보다 더 멋진 취향을 가지신 분이니 선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저녁 먹고 고민하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크록스 어때?"
"크록스? 좀 너무 그렇지않아? 애들 신발 같고.."
"우리 할머니 그런거 좋아하셔. 예전에 미네통카 모카신 사드렸었는데, 엄청 좋아하셨어!"
모카신이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들어서 반갑기도 했지만, 할머니와 모카신이라는 신선한 조합이 더 반가웠다. 할머니와 고무신도 아니고, 할머니와 모카신이라니! 할머니와 크록스마저 가능할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바로 쇼핑몰에 가서 내 것과 같은 연보라색 털 달린 크록스를 골랐다. 할머니는 꽃을 좋아하시니까 빛이 들어오는 꽃모양 지비츠도 붙였다. 내가 좋아하는 작은 오리 지비츠도 붙였다.
할머니 생신 축하를 위해 떠난 청산도 한옥에서 신발을 신겨드렸다. 13명의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할머니는 활짝 웃었다.
"애기들이 신고다니는 신발같으다, 야."
"오메? 불도 들어오네?"
"이건 뭐냐? 오리여? 아고 귀엽다"
할머니는 크록스를 신고 방 안을 종종종 걸어다니셨다. 불이 켜지는지 보려고 크게 성큼 걸어보기도, 발을 쿵쿵 굴러보기도 하셨다. 할머니와 크록스. 이 신선한 조합도, 평소 무릎이 아픈 할머니가 발을 쿵쿵 구르며 아이처럼 기뻐하시는 모습도 모두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