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부족한 섬에 지하수 파기
집을 짓기로 결심하고 물 때문에 좌절하느라 겨울을 보냈다. 지난 가을엔 12월엔 새 집에서 크리스마스 맞이할 수 있을까?하는 희망찬 꿈도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물이라는 엄청난 복병을 만났고, 겨울 내내 고민하고 포기하고 마음졸이는 시간을 보냈다.
시작부터 얘기하자면, 우리가 땅을 살 때 확인했던 부분이 몇가지 있었다. 건축 허가가 가능한지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는 4미터 이상 도로가 접해야함), 전기를 가까이서 끌어올 수 있는지, 상수도가 공급 예정인지.
건축 허가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관할 시청 공무원, 토목 사무소, 건축 사무소, 그리고 관할 시청에 엄마 지인 찬스를 써서 비공식적인 루트까지 4번을 크로스 체크했다. 전부 다 건축에는 문제 없다, 뷰도 좋고, 계획관리지역이고, 뭐든 지을 수 있는 좋은 땅이라는 칭찬도 들었다.
그 다음, 전기는 한전에서 설치해줄 때, 끌어오는 거리 단위 (m)마다 공사비를 부과한다. 그러니 전기를 끌어오기 어려울수록 예상치 못한 비용이 발생한다. 우리 땅은 여기서도 패스! 우리 땅에 떡하니 전신주가 박혀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땅 양 옆, 앞으로도 전신주가 서있다.
마지막 상수도. 우리 땅 뒤로 상수도 매립 공사가 진행되어서 상수도는 매립되어있다. 하지만 이 상수도를 통해 물을 공급해주는 수원지를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우리가 땅을 사던 다음해인 2022년 초에 완공 예정이라고 했다. 부동산에서 들은 정보였기 때문에 시청 홈페이지, 신문 기사, 관할 공무원에게도 크로스 체크했고, 실제 통영시에서 섬 내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큰 예산을 할당하여 진행하는 프로젝트였다. 2022년까지 모든 도민에게 상수 공급!이라는 슬로건하에 진행하는 프로젝트이니 안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땅을 사고 집 짓기 전 이 3가지에 대해 다시 확인하기까지 약 3개월의 시간동안 변화가 생겼다. 수원지 확장 공사가 2022년 초가 아니라 2022년 말로 지연됐다고 한다. 하지만 공무원들조차도 2022년 말에 될지, 2023년에 될지 솔직히 확신이 없다고 한다. 예산을 편성받지 못하는 등의 문제로 공사가 계속 멈췄었고 이제 다시 시작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 시점에는 단순히 상수도가 기대했던 것보다 늦게 뚫리는거니, 집 짓기를 미룰까? 아니면 추가 비용이 들더라도 지하수를 파서 빨리 지을까? 정도의 고민에 그쳤다. 그러던 중 욕지도에 내려가서 지내는 동안 주민들께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상수도 돼도 물 안나와요. 물이 모여야 상수로 나오지요."
수원지 확장 공사가 된다고 하더라도 물 자체가 부족하니 수원지에 물이 모일수가 없고, 따라서 모든 도민들에게 제공할 상수가 부족할거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럼 다들 지하수 파서 쓰시는거에요?"
"그렇죠, 지하수 파야죠. 근데 땅 사신 동네 거기는.. 물 없어요. 지하수가 안나와요. 그러니까 개발이 안됐죠."
여기서 무릎을 탁 치며... 뻔히 보이는데도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됐다. 이렇게 뷰가 좋고, 해가 잘 들고 아름다운 곳에 마을이 형성되지 않은 이유는 물이 없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조건의 다른 동네보다 땅 값이 절반 이상으로 저렴했던 이유도 물이었다.
충분히 의심하고 알아봤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초보자에겐 이런 복병이 숨어있었다. 말이 되는 것이, 지하수는 바다 가까운 곳에선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전화로 지하수 알아봐도 바다에서 좀 가까워서 안나올 것 같다며 공사를 거절한 업체도 있었다.
만약 진짜 물이 안나오면 어떡하지? 농담으로 영화 미나리야? 했는데 심각하게 영화 미나리 상황이 맞았다. 물이 없으면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보호구역이라서 건물을 못 올린다고 하면 캠핑장이라도 할 수 있지, 물이 안나오면 할 수 있는게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방법은 둘 뿐이었다. 집을 짓고 나중에 상수도 연결하기. 하지만 물을 쓸 수 있을지는... 미지수. 아니면 그냥 집 짓는걸 포기.
언제나 이런 상황엔 모든 옵션에 대해 가능한 정보를 취합해야하니 지하수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하수 업체에서 나와서 확인을 해줘야하는데 (정말 티비에서만 보던, 그리고 영화 미나리에 나왔던 수맥 찾기) 섬이기 때문에 출장비도 30만원이 든다. 하지만 물이 나오는지, 안나오는지 확실히 알아야하니 출장을 요청드릴 업체를 찾았다.
총 3개 업체가 있었는데, 한 업체는 견적을 900만원으로 얘기했고, 900만원에 물 나오게 해드린다며 자신했다. 하지만 이 분은 지난번 글에 쓴대로 당일에 약속을 계속 바꾸다가 만나지 않기로 한 날에 막무가내로 배타고 찾아온 분, 남편이 절대 절대 이사람과는 일할 수 없다고 해서 아웃.
두번째 업체는 예전에 전화 문의 드렸을때 아주 회의적으로 바닷가는 물이 안나옵니다... 그리고 상수도 연결된다는데 왜 굳이 하실랍니까... 돈도 많이듭니다.. 최소 천만원 이상 이천만원도 들 수 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신 업체였는데 이번에 다시 연락해보니 1500만원으로 견적을 내주셨다.
그리고 세번째 업체는 부동산에서 소개시켜준 업체인데, 900만원에 해준댔지만 전화해도 안받고, 견적서 보내주기로 하고 보내주지 않고 연락이 없어 아예 진행이 어려웠다.
결국 옵션이 별로 없기도 했지만, 일단 두번째 업체에 출장을 요청했다. 오셔서 역시 잘 안나올 것 같다는 말씀과 함께 수맥 잡는 금속 봉 두개를 꺼내시고 이리저리 땅 위를 걸어다니시다가 전봇대가 있는 근처 한 군데에서 멈추시고 여기서는 조금 나올 것 같다고 하셨다. 여기에는 파볼만하다는 말씀을 해주셨고, 1500만원이라는 금액이 다른 두 업체의 금액과 차이가 나서 몇주 고민하다가 통영시에서 고지하는 지하수 개발 금액도 1500만원이고, 오셨을 때 솔직하게 설명도 잘 해주셔서 이 분과 계약을 체결했다.
그렇게 또 몇주가 흘러 설날도 지나 우리는 총 2개의 관정을 뚫었다. 처음에 뚫은 곳에서 물이 나온다고 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루 1-2톤의 양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일반 4인 가구가 하루에 사용하는 양) 그마저도 아 괜찮아, 아껴쓰면 돼, 하면서 박수쳤다.
하지만 사장님이 나중에 부족해질 수 있으니 하나 더 뚫자고 하셔서 두번째를 뚫었다. 여기서 생각보다 물이 많이 나왔는지, 사장님은 모터는 일단 여기에 하나만 달고 나중에 필요하면 첫번째 관정에 모터를 달기로 했다.
이와 동시에 건축 인허가 신청도 빠르게 진행됐다. 건축사무소, 토목사무소에서 빠르게 움직여주셔서 바로 어제! 서류 제출을 완료했다. 이제 이르면 2월 말, 늦으면 3월 초에 인허가나오면 바로 착공을 시작한다. 소형 모듈러 하우스이기 때문에 1달만에 공사는 완료될 예정이라 4월에는 집이 올라오게 된다.
이제야 마음이 조금 놓인다. 이제 시작이라고들 하지만 주민분들께서도 지적했던 가장 큰 문제는 해결이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제 착공 전에 싱크대 주문, 세부 디자인 결정들만 남았다. 큰 돈이 계속 들어서 약간 공황 올 것 같지만 정신 차리고 4월의 별장을 생각하며 오늘도 남편과 나는 의기투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