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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선 편히 쉬세요.

아버지,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여보세요~

여수 딸 맞지?

아니 어머니가 회관에 오늘도 안 와서 어디 갔나 물어볼라고 전화를 했네.  

차가 집에 있는 거 보면 어디는 안 간 것 같은디. 월요일에 병원 갔다 왔다고 다녀간 뒤로 어머니가 통 안 보여서.

집에 가 봐도 인기척도 없고 문도 꽉 닫아져 있고 "


"아. 그래요? 저한테는 어디 간다는 얘기 없으셨는데요? 아마도 밭일하시느라 바쁘셔서 회관에 못 가셨나 보네요. 걱정 마세요. 별일 없을 거예요. "


그날 밤 시골집에 가봐야 했었던 거였다.

통화시각 수요일 오후 5시 38분.


그날 난 일을 마치고 모처럼 남편이 중2 아들 문제로 힘들어하는 내게. 자식 다 필요 없다며. 요즘 맘고생이 많다고 외식을 시켜준단다. 딱히 먹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한편으론 남편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 둘이서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온 지 30분 후쯤 전화벨이 울렸다.

율희 엄마. 중2 둘째가 사귀는 여자 친구 엄마다. 이번엔 또 무슨 일로 전화를 했을까 맘을 졸이며 마지못해 전화를 받아본다.

둘째가 최근 헤어진 여자 친구 율희가 자기 험담을 했다며 둘째의  친구가 단체 톡방을 만들었고 율희에게 공개사과를 요구했고 욕을 하며 율희를 협박했다고 한다. 율희는 사과를 했는데, 아들은 끝까지 사과도 하지 않고 톡방을 나가버렸단다. 그래서 율희가 많이 힘들어한다며 아들과 아들 친구들 단속 좀 잘 시켜달라는 얘기였다.


더불어 아들이 담배 피우는 동영상까지 확인차 보내주셨다. 당신 아들 문제아고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착한 아들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여자 문제로 속 썩이는 것도 모자라 부모를 감쪽같이 속였다는 것에 너무 화가 나고 용서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자기가 아니라더니 나중에는 사실대로 인정을 했다.  

새벽 4시가 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간신히 눈을 붙이고 일어나서 남편을 출근시키고 8시쯤 율희 엄마에게 사과 전화를 드리려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알 수 없는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내가 왜 이렇게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근 한 달 동안 죄송하다고 계속 사과를 해야 하는가?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먹고 산다고 나도 나름 바쁘게 살았는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그래 다 내 탓이지. 최근 남편과 자주 다투며 안 살겠다고 집을 나가려고도 했었지. 나 너무 억울하다. 나름 살아보겠다고 이렇게 애쓰는데 가족들은 왜 하나같이 나를 힘들게 하는 걸까? 난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 보다. 도대체 이 고난은 언제쯤 끝이 나는 걸까?"

 너무 막막하기만 해서 전화기를 바라보니 하염없이 눈물만 났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버튼을 눌렀다. 죄송하다. 더 이상 문제 생기지 않도록 아이들 단속 잘 시키겠다. 율희가 원한다면 저녁에 사과 전화를 드리겠다고 약속하고 나서 둘째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고 둘째를 깨웠다. 오늘도 지각이다. 교복 찾느라 10분. 어제 지어온 냉방병 약 먹으라는 실랑이 10분. 간신히 학교에 내려주고 출근하면서 문득 어제 전화가 떠올랐다.


급하게 전화기를 꺼내서 전화를 걸어본다.

아버지 핸드폰도, 어머니 핸드폰도 꺼져있고 집전화도 받지 않는다. 뭔가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에이 별일 없을 거야. 자꾸 되내어 본다. 이내 오전 수업을 급하게 빼고 시골집으로 향하면서 별 생각이 다 든다. 문이 다 잠겨있다는 동네 이모의 말씀이 떠올라 119에 미리 신고를 해 두었다. 저도 가고 있는데, 얼른 오셔서 문 좀 열어달라고.


집에 가 보니 언제나처럼 깔끔한 모습 그대로다.

황토방 방문을 열어본다. 너무도 굳게 닫혀있다. 화장실 쪽 문도. 창문도 다 닫혀있고 아무리 부르고 문을 두드려도 답이 없다.


방충망 너머로 살펴보니 창문은 잠가져 있지 않았다. 틈새가 조금 벌어진 방충망을 뜯고 창문을 간신히 한 뼘쯤 열어보니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옆으로 돌아누운 채 이불을 덮고 있지만 얼굴이며 온 몸이 너무 퉁퉁 부어있다. 이미 사후 강직 상태임을 짐작했다. 떨리는 손으로 다시 119를 누른다.

어머니가 아무래도 돌아가신 것 같고 아버지는 아무리 찾아도 안 계시는데, 아마도 아버지도 돌아가신 것 같다고.

경찰차가 오고

구급차가 오고

현장감식반이 오고

나는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며 문득 남동생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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