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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선 편히 쉬세요. 2

아버지,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두어 달 만에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마도 아버지도 돌아가신 듯 하니 너도 와봐야 될 것 같다고.

성큼성큼 마당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남동생을 나는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맞이한다.

마당엔 경찰들이며 국과수 사람들이 가득하다. 남동생은 열린 창문과 방문 너머로 두 분의 시신을 확인하곤 한숨을 내쉰다.

"아니, 내가 안 오면 너라도 좀 자주 들여다봐야  하는 거 아냐?"대뜸 화를 내는 동생에게 나도 한 마디 한다.

"뭔 소리야. 지난주에도 감자 캐놨다고 가져 가라 해서 다녀갔는데. 생선 없다고 해서 굴비랑 과일도 사다 드렸구먼. 엊그제 일요일도 통화했고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냐고."


폴리스라인이 쳐지고 사진 찍고 증거물 확인하고 질문에 답하는 사이.

시신을 수습하는 사람들이 왔고 흰 천에 덮인 두 분의 시신은 어느 차에 실려서 병원으로 가고 사망 확인을 받아야 하니 의료원으로 오라고 한다.


혼자 운전하며 병원으로 향하는 길.

갑자기 눈물이 또 쏟아진다.

그래도 자다가 고통 없이 가신 듯 하니 맘은 편하다.

반듯하게 누워 이불 덮고 누운 채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니 오래전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난다.

내년 봄이면 팔순을 맞는 아버지를 모시고 제주도 여행도 가고 가족사진도 찍고 영정사진도 미리 찍어두어야겠다고 요즘 생각하던 터였다.

아니면 여름휴가 때라도 어딘가 모시고 1박 2일이라도 여행을 다녀올까 했는데,

뭐가 그리도 급하셨는지.

마지막 말도 남기지 못한 채 저런 모습으로 나를 떠나셨는지.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언젠가 이해할 날도 오겠지. 오늘을 웃으며 추억할 날도 오겠지 하며 나를 위로해본다.


의사는 사인 미상이라고 시체검안서에 사인했고 경찰은 두 분이 동시에 돌아가셨기에 부검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장례는 치러도 된다고 하니 우린 서둘러 가까운 장례식장을 예약하고 예복으로 하나, 둘 갈아입고 머리에 핀도 찌르고 제법 장례 준비를 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실감은 나진 않는다.


올케와 3살 조카가 도착하고

서울 언니네가 도착하고

우린 아무 말없이 늦은 저녁을 먹는다.

꽃 재단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두 분의 영정사진은 이 사건을 전혀 실감하고 있지 못한 행복한 모습이다.

한 명, 두 명 이른 조문객들이 찾아오고 우린 어설픈 모습으로 그들을 맞는다.


늦은 저녁 우린 한 상에 둘러앉아 술을 마셨다. 모두들 실감하지 못한 표정들로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남동생은 화요일에 브레이크 파열로 아버지가 물려주신 레미콘을 폐차시켰다고 한다. 그날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거나 찾아뵀어야 했었다고 늦은 후회를 한다. 집과 땅을 자기 명의로 이전해달라고 몇 년째 졸라대는 동생은 두 달 전 아버지와 대판 싸우고는 그 길로 집에 발길을 끊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스트레스로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담배도 많이 피우시더니 근래 들어서는 어느새 새어머니와 사이가 좋아져서 요즘은 잘 지내셨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장례 이틀째. 우리는 어느새 제법 세련되게 문상객을 맞는다. 어찌 된 일인지 설명도 해가며 음식도 챙겨주며.

저녁 즈음 1차 부검 결과가 나왔다며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40프로가 넘게 나왔다고 아궁이에 불을 때고 주무신 게 원인 같다고 하며 아궁이에 연막 실험을 하니 아랫목에서 하얀 연기가 올라오는 사진을 보내왔다.

자다가 돌아가신 게 맞냐며 잔뜩 의심의 눈으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새어머니의 식구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사진도 보여주고 나니 다소 안심하는 기색이다. 행여나 우리가 자기 누나를 죽이기라고 한 건 아닌지 우리를 노려보는 통에 뒤통수가 따갑기만 했는데 다소 안심이 된다. 행여나 장례식장에서 싸움이 나지나 않을지 걱정이 태산 같던 나는 그제야 마음을 놓는다.


늦은 저녁. 부의금을 정 산하 고나니 어느새 새벽 4시가 넘었다. 내일 새벽 7시 출상이라고 서둘러 잠을 청한다.

어느새 새벽 7시 장례지도사가 얼른 일어나서 식사하고 짐도 챙기고 장례식장 정산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깨운다. 서둘러 아침을 차리지만 밥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장례지도사가 서둘러 올라오더니 9시에 출상이라고 천천히 식사해도 된단다. 한 숟갈 뜨고 나서 서둘러 음식들을 정리하고 방울증편을 새어머니 형제들에게 한 상자씩 건넨다.


한 방에 모닥모닥 모여서 타인들처럼 자리를 지키던 새어머니의 형제들도 서둘러 짐을 챙긴다. 불편한 동거였다. 늘 속을 썩인 남동생과 괴팍한 성격의 아버지 때문에 우린 새어머니 식구들에게는 아주 나쁜 사람들이다. 그나마 딸이 잘해줬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나에게 어설픈 감사인사를 건넨다.


화장터로 향하고

납골당에 유골을 안치하고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우린 시골집으로 향한다. 급한 대로 이불과 옷을 태우고 부엌을 정리하고 개와 닭들을 챙긴다.

저온저장고 문을 여니 문 바로 왼쪽에 아버지의 사탕 봉지가 있다.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못난 아들 뒷바라지하느라 77세가 넘도록 레미콘 운전을 하셨던 아버지. 주식으로 전재산을 날리고 빚까지 진 남동생한테 평생 재산이었던 자신의 재산과 레미콘을 물려주고는 마음 허전해하셨던 아버지. 하나뿐인 아들이 자신처럼 운전대를 잡게 된 것을 마음 아파하셨던 아버지. 딸은 자식으로도 여기지 않던 아버지. 늘 아들밖에 모르던 그 아버지의 삶이 딱 알사탕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담배 대신 한 알씩 입에 넣으시던 그 알사탕이다. 아버지는 홀쭉해진 볼에  알사탕을 물고 바람 잘 통하던 평상에 누워 이제나 오나 저제나 오나 저 길 끝을 내려다보며 자식들을 기다렸을 터다.

텅 빈 소라껍데기 같은 아버지는 어느새 작아지고 등이 굽어지고 귀도 먹고 눈도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 좋아하시는 회랑 어머니 좋아하시던 족발을 사 가시면 잘 드시다가도 딸한테 미안하신지 차마 다 드시지 못하고 담배를 태우러 나가시던 그 아버지는 이제 내게 없다.

말은 안 하셨지만 그래도 묵묵히 할머니 잘 건사하고 남동생 잘 건사해줘서 고마워했으리라 나를 내가 위로해본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지는 못했지만 잘 가요 아버지.

그곳에서는 편히 쉬어요.


여순사건으로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의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하나 있는 아들 뒷바라지하느라고 늙도록 레미콘 운전하시면서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어머니랑 같이 가셔서 덜 외로우실 거라고 위안 삼지만 친엄마를 만나면 원망을 많이 들으실 테죠.


언제 간 우리 다시 만날 테죠.

그때는 못다 나눈 얘기들 나눠요.


할머니랑 우리 셋 버리고 와보지도 않은 거.

내 생일 평생 한 번도 안 챙겨준 거.

여자애가 무슨 대학이냐며 공장에 가서 일이나 하라고 내게 말한 거.

지금의 남편 만난다고  몽둥이로 때리고 가위로 내 긴 머리 다 자른 거.

새엄마 모함에 속아 나 스물세 살에 내쫓은 거.

남동생한테 집 상속 안 하고 죽으면 너희 셋이 재산 갈라야 되냐고 내게 물었던 거

나 다 용서할게요.


자유로운 세상에서 편히 쉬어요.

안녕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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