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추억 상자 속, 함께 비행한 동료가 보내준 엽서가 눈에 띄었다. 세이셸 비행을 함께 했던 순진한 뉴질랜드 아가씨였던 클레어의 엽서. 보통 비행이 끝나면 그것으로 인연이 끝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우편함에 엽서까지 남긴 첫 번째 이유는 그 친구가 착하고 배려심이 넘쳐서이고 두 번째 이유는 세이셸에 추억을 묻고 온 내가 안타까워서일 것이다.
영국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신혼여행지로도 유명한 세이셸. 하루 체류가 다반사였던 비행 일정 중 5일씩이나, 그것도 인도양의 보석이라 불리는 세이셸에서 보낼 수 있다니.스케줄이 나오자마자 꺄악! 소리를 질렀다. 환상적인 일정을 데이 오프로 바꾸자는 스왑 신청이 쇄도했으나 가볍게 무시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야, 당장 두바이로 와야겠다!" 마침홍콩 비행이 있던 터라 남편을 부산-홍콩-두바이-세이셸로 실어 나를 일정을 짜고 티켓팅을 했다. 홍콩-두바이 노선은 항상 풀 부킹 상태라 ID90 할인 티켓 사용이 걱정되었지만 성격 좋고 오지랖도 넓은 사무장님이 얘들 두바이에서 결혼식 있다고 뻥을 치는 덕에 바로 좌석이 확보되었다. 고마워하는 나에게 오히려 비즈니스를 못 내어 주어 미안해했던 얼굴까지 천사 같던 고마운 그 남자!
세이셸 비행에 그렇게 신이 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고난했던 신혼여행 때문이었다. 신혼 여행을앙코르와트로 간 나는 3일 동안 슬리퍼 신고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걸어 다녔다. 출입국 직원이 두 손가락을 비비며 복화술로 1달러씩을 요구하던 것부터가 불안한 시작이었다. 주변엔 온통 가족단위, 계모임 단체 여행객들이었는데 호텔 근처 북한 식당에서 조미료 듬뿍 들어간 냉면을먹고 있으면 서빙하던 북한 언니들이 갑자기 바이올린을 잡아 들고 연주를 하는 색다른 공연도 관람했다. 앙코르와트가 보수를 이유로 폐쇄된다고 해 마음이 급해 가게 된 신혼여행지였는데 몇 년 뒤 또 보수를 한다고 하니 이것들 이런 식으로 사람 자꾸 낚는다며 구시렁댔다. 그리고 신혼여행 마지막 날, 남편은 그간 찍은 사진이 담긴 디카를 주머니에 넣고 그 호텔의 가장 큰 특색이라는 소금물 수영장에 멋지게 다이빙했다. 바이~바이~ 두바이야~~
세이셸은 듣던 대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다들 작정이라도 한 듯 와이프를 동행한 사무장, 엄마, 여동생과 함께 효도여행 온 동료, 남편을 끌고 온 나까지 단체 가족여행이라도 온 기분이다. 칠흑 같은 밤에는 당장에라도 별이 쏟아질 듯했고 프랑스 영향을 받아 싱싱한 해산물로 만든 음식들은 김치 없으면 힘들어하는 내 입맛에도 다시금 발길을 돌리게 했다. 동료들과 보트를 빌려 간 아일랜드의 부드러운 해변과 맑고 깨끗한 날씨는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도 만족스러웠다. 남편이 홍콩 면세점에서 새로 산 디카로 내 인생 사진이 마구마구 생성되고 있었다.
마침내 보트가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하나씩 배에 올라타려는 차, 높게 인 파도에 보트가 우리를 덮칠 뻔했다. 요즘 같아선 살겠다고 날 놔두고 저만치 비켜 설 남편이 그때는 날 구해보겠다고 팔을 들어 감싸는데 풍덩! 하고 디카가 가방에서 쏙 빠져 파도에 휩쓸려버렸다. 급히 발이라도 뻗어 찾아보려는데 다시 파도가 일렁여 보트가 밀려오니 어쩔 도리가 없다. 모래 속으로 사라진 디카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돌아가는 배 위에서 우린 아무 말이 없이 바깥 풍경만 응시할 뿐이다. 아마 남편은 내가 원망스럽고 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때 옆에 있던 동료가 날 위로했다. "시에나, 사진기는 잃어버렸지만 넌 여기에 다시 올 이유가 생긴 거야."
'Reason to come back' 그 친구의 멋진 말에 슬그머니 마음이 풀리고 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요즘도 가끔 남편과 세이셸 이야기를 나눈다. 떨어질 듯 반짝이고 큼지막한 별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카메라. 우리 둘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그곳이 더욱 그리운 것은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아쉬움이 커서일 것이다. 올해백신을 맞기 시작하며 여행 규제가 완화되나 싶어 15주년 결혼기념일에 세이셸을 갈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오미크론이 극성이니 또다시 원점이다. 놓고 온 카메라를 추억하러 다시 돌아가는 우리의 여행이 20년 기념일에는 가능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