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데 힘들고, 슬픈데 행복한 현실
학원 강사 정규직이 되었다. 나는 며칠 전 학원 원장님께 이 일이 좋고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데 매일 실수해서 죄송하다는 장문의 톡을 남겼다. 왜냐하면 학원 행정 업무는 처음이고, 많은 아이들을 한 번에 가르치는 건 방학 때 한 번 해봤어도 대회와 그냥 수업은 또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변명일 수 있지만 나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잘하고 싶었고 연차가 쌓인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들도 처음부터 차근차근 깨지면서 올라온 것인 줄 알면서도 부러웠다. 모두에게 처음이란 존재한다. 처음이니까 실수도 많이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수습기간 동안 윗선에서 다 책임져 주고 있다. 그게 감사하면서도 싫다. 어른이니까 책임은 내가 지고 싶다는 착각을 했다. 심장 철렁한 순간들이 생길 때마다 피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바로 직면하려 애썼다. 하지만 퇴근하는 버스에서, 고시원에서 나는 실수한 게 계속 떠올라 울었다. 정규직인데 제대로 못 하냐면서 자책했다. 나를 뽑아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조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과거에 지나간 일 붙잡고 나 혼자 울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일이 좋아서 최선을 다 해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봤다. 어중간한 마음이었으면 바로 그만뒀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고, 강사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서툴러도 행복했다. 아이들이 주는 행복이 좋았다. 그러면서 힘들어도 몇 번이고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에 했었다. 그게 내 초심이었다. 다만 나 자신에게 실망한 부분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벌써 무너지냐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바쁘긴 했다. 개강 후 학업도 챙기고 바로 학원 일 하러 갔다가 집에 가서 밥 먹고 수업 준비하면 잘 시간이었다. 반복이 되니까 체력 소모도 생기기 시작했고, 내가 우려하던 부분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상했고 다 머리로는 아는 것들이 마음에 들어차질 않았다. 머리보다 마음이 빠르면 에너지가 깎인다. 울면 배가 고프고 에너지도 빠지고 그럼 배달시키고 싶어 지니까 돈이 나간다. 그래서 덜 울기로 했다. 그리고 사소한 걸로 그만 슬프기로 했다. 나에겐 아직 많은 행복과 고난이 남아있는데 벌써부터 지치고 싶지 않았다. 내 목표는 단기간 성공이 아니라 장기간의 지속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듣는 강의 OT가 기다려질 만큼 나는 정신적으로 벌써 지쳐 있었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감이 솟았다. 오늘은 얼마나 발전할지 설레고 행복했다. 그러면서 개강총회도 빠지고 학과 행사 이것저것 다 빠지기 시작하면서 약간의 공허함도 느꼈다. 술은 이제 입도 데지 않는다. 가끔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동기들이 간혹 부럽기도 했다. 함께 있다는 게 부러웠다. 하지만 내 옆에도 친한 동생들이 있었고, 나랑 성향이 비슷한 동기가 있었다. 난 내 기준에서 그들을 살뜰하게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그 애들이라면 내가 계속 도와주고 챙겨줘도 아깝지가 않았다. 진정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내가 원하는 걸 얻으려는 생각은 애초에 접었고, 20대를 편하게 살려는 생각도 접은 지 오래지만 바로 보이지 않는 성과에, 더딘 발걸음에 조급함과 욕심에 나는 비틀거린다. 한 번은 아빠한테 전화를 걸어서 이렇게 말했다. "아빠, 나는 왜 이렇게 욕심이 많아? 왜 처음부터 다 완벽하고 잘하고 싶을까? 나도 내가 이해가 안 돼." 그런 마음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그저 그 마음이 들 때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차이일 뿐.
정규직이어서 좋다고 생각하다가 법 관련 강의에서 교수님께 여쭤봤더니 근로 시간이 너무 적다고 정규직은 허울이라는 뉘앙스의 답변을 얻었고, 혼란스러웠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대학생에게 어떻게 바로 정규직 자리를 내어주겠는가. 하지만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정규직 모집이었던 것 같다. 너무 바빠서 그건 기억도 잘 안 난다. 여하튼 혼란스러워진 나는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정규직이든 알바든 내가 일을 좋아하니까 그걸로 좋다는 결론이다. 그리고 9월이 끝나면 근로 계약서는 무조건 물어봐서 받기로 결심했다. 급여 등록도 해주셨고, 급여는 재깍재깍 들어왔다. 세금도 떼고 말이다. 근데 근로 계약서는 못 받았다. 학원 시스템 상 바빠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여태껏 자격지심 때문에 내가 그저 한낱 알바에 불과해서 바로 잘리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내가 보낸 장문의 카톡에 원장님은 자신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고 처음부터 잘할 순 없지만 열정과 가르치고자 하는 그 마음만 있으면 나는 자신보다 더 뛰어난 강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중에 만약 내 후배가 생긴다면 똑같이 말해주고 싶어서 편지처럼 고이 간직하려고 캡처해 놓았다.
난 어려서부터 굼뜨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동시에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대기만성형이라는 소리는 나에게는 너무 느리고 답답한 꼬리표일 뿐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다 때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마음을 많이 내려놨지만 가끔 발전에도 부스터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내가 부족하면 한 없이 미안해져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소극적인 태도를 이어나간다면 아이들도 느낄 것이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나는 난데없는 자신감과 그냥 돌진하겠다는 마인드로 흑화(?)해 버렸다. 세상에서 나 자신이 가장 소중하고 내가 내 인생 사는 거고 타인의 인정에서 자유롭겠다는 다짐을 다시 하고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할 거라는 속마음이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마음의 부작용은 과하면 일을 그르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면 이 마음을 시각화해서 인지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여과를 거쳐 필요한 이성만을 챙길 수 있다. 돈에 쪼들리면 뭐 어때, 좀 힘들면 어때서, 실수하면 또 어떻고. 나는 성장통을 겪고 있고, 누구나 그렇듯 터널 안에서 빛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