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후원을 시작하면서 느끼는 것들...
원래는 졸업 후 스페인 마드리드에 어학연수를 가고 싶었다. 하지만 블루크루 정기 후원자가 되고 난 후, 나는 기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타인을 도움 때 마음이 풍족해지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돌아오는 대가가 없어서 떼를 쓰는 아이였지만, 이제는 대가가 없어도 도와주는 그 순간을 행복해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스페인은 모로코와 가깝고 아프리카 대륙과 가깝다. 마침 내가 제3 국어로 삼고 싶은 언어는 '스페인어'다. 스페인에도 도움이 필요한 분야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언어도 발전시킬 겸 '스페인 해외 봉사'를 위한 적금을 만들었다. 현재는 단 50만 원 밖에 없지만 원래 어학연수 갈 돈을 봉사의 목적으로 바꿨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건, 그럴 여력이 생기고, 나중에는 능력도 자라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매번 도울 수 없어서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고, 나도 동참하고 싶은데 내가 가진 게 쥐뿔도 없고 내 코가 석자라고 생각해 여력이 없을 때, 그저 외면하는 느낌이 들어 싫었다. 하지만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된 현재와 앞으로의 미래에 주눅 들고 떼쓰는 아이는 더 이상 없다. 스페인에 가야겠다. 나에게 또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되는 여동생의 하소연을 들으며 깨달았다. 누구나 도움이 필요하단 것을 말이다. 도움을 주는 데에는 자격 따위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속으로 자꾸만 자신의 가치를 따지며 자신이 도울 처지가 아니라 포기해야 하는 처지라고 착각한다. 이건 전부 자신감 결핍과 관련 있다. 초심을 잃고 자신감을 잃으면 타인을 도울 수 없다. 그래서 남을 돕기 전에 준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나의 마인드다. 굳센 마인드로 꾸준히 제공할 수 있는 도움을 진심에서 가져올 줄 알아야 한다. 어느 순간 그저 형식처럼 감정 없이 하는 일이 되어버리면 그 일은 의미를 잃는다. 그래서 사람은 한 번씩 자신의 삶 전반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태어난 환경은 그 누구도 스스로 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환경을 누구에게 달라고 한 적도 없다. 사람은 다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지만 각자의 고민이 다 있다. 그게 크던 작던 주제는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기본적인 것에 대한 공급이 없어 고민하고, 어떤 사람은 성공과 실패에 대해 고민한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에서 자신이 해당하는 부분이 다르다는 건 주어지는 것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
그래도 다들 기본적인 하위 1,2 단계는 다들 갖추고 있으면 좋을 텐데, 현실은 말 그대로 불공평해서 그 단계의 피라미드에 사람들을 다 나누어 가둬버린다. 그 위의 인정받고 싶고, 더 잘하고 싶고, 미래를 꾸미는데 필요한 욕구는 꿈조차 꾸지 못하는 사람들은 평생 하위 1,2 단계에 머물러야 하는 것일까. 그건 좀 불공평하다. 한 때, 플랜테이션에 대해 배우며 팜유 농장에서 노동착취를 당하는 어린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임금 막노동'이다. 근데 농장주들은 항상 그런 행동을 한다. 인건비를 줄이려고 사람을 도구처럼 막 대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팜유가 들어간 제품과 식품이 많아서 그게 수입이 되어 살 때, 그 사실은 쉽게 인지가 안 된다. 아니면 애써 외면하게 되는 것일까. 그럴 때는 이런 생각이 든다. 팜유가 들어간 제품을 죄책감 없이 소비하되, 그 농장주들이 아이들한테 적당한 임금을 주던지 농장에서 내보내 부모 곁으로 돌려보냈으면 좋겠다는 아주 이상적인 생각. 그 생각을 하던 때가 고1 때였다. 그 당시 나는 공정무역가를 꿈꾸고 있었고, 코트라에 들어갈까 생각도 하고 있었다. 공정무역이 그 문제의 근본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게 닥친 현실에 좌절했다. 내가 원하는 대학의 국제통상학과에는 들어갈 성적이 전혀 안 됐다. 그래서 그 꿈을 쉽게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전에 했던 이상적인 생각은 사라지고 그저 내가 원하는 것에만, 내 문제와 내 고민에만 매몰되어 버렸다. 누군가를 도울 자격을 상실한 것만 같았고, 그런 생각들은 전부 사치 같았다. 그러다 결국 대학에 가고 '사유'라는 걸 하기 시작하면서 이 시점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래전 마음에 묻어두었던 나의 추구미를 다시 꺼내보려 한다. 의심과 불안은 집어치우고 그냥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젠 방법을 찾아 실현할 준비가 되었다. 과거에 발목 잡혀 있던 때는 끝났고 나는 현재 나아가기 바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너 자신이나 잘해라'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면 이제는 그 말이 그저 바람인 것과 같이 여길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어찌 보면 다 연결되어 있다. 세상도, 세계도 마찬가지다. 그저 안타깝게 바라보던 타인의 불행이 언젠가 나에게도 충분히 닥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걸 이겨낼 수 있는 자본과 힘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공통의 문제로 가져가서 집단지성을 발휘해야 하는 게 세계의 이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