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회복탄력성
밤을 새웠다. 새벽에 일어나 겨우 약과 영양제를 삼키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최근 너무 바빴고, 나는 연휴 때 그 피로를 풀고 재충전하는 시간으로 삼고 싶었는데, 오히려 스트레스만 더 받아왔다. 가족을 만나는 건 기쁜 일이다. 오랜만에 만나면 반갑고 거기서 힘을 얻는 듯싶으니까. 하지만 그들과 함께 한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다. 오히려 자립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다시금 깨닫고 올 때도 있다. 떨어져 있다가 다시 가서 그들의 대화 방식에 또 상처받으면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를 내 마음속에서 발견했다. 공부를 하면 연휴에 내려와서 꼭 하는 척을 해야겠냐고 하고, 나중에 시험을 망하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하고, 장단을 맞출 수가 없다. 아무렴 상관없긴 하다. 부모님을 바꾸거나 온전히 이해하려는 시도는 진작에 멈췄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부모나 자녀 둘 중 하나는 다치는 길이다. 부모도 엄연히 자녀와 살아온 환경이 다른 타인이다. 그걸 존중할 줄 알면 조금 서운하게 대해도 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다만 에너지 소모가 되는 게 조금 힘들 뿐. 형제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들을 챙겨주는 것에서 행복을 얻었지만 간사한 인간인지라 보상심리도 가지고 있었다. 없애버리자고 마음먹고 내려갔으면서 나는 끊임없이 속으로 가족에게 무언가를 바랐다. 그것의 실체를 모르겠지만 아마 혼자 있었을 때의 외로움과 힘듦을 나누고 싶었나 보다. 의존하지 않기로 했으면서, 혼자서 단단하게 잘 넘어가 보자 다짐했으면서. 그래도 이젠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짓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의 딸이자, 언니고, 선생님이니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주변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이유로 힘들어하고 똑같이 버티며 살아간다. 그렇다고 내 힘듦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과거의 힘듦은 흘려보낼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잘 됐으면 몸이 자꾸만 고장 나지 않을 것이다. 난 뭐 한 것도 없는데 원래보다 조금 더 얹었을 뿐인데 체력이 따라주질 않는다. 그게 절망스러웠다. 내 탓이 아니라고 되뇌어도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오히려 하나 둘 손에서 빠져나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다시 일어나야겠지. 몇 번이고 위기는 되풀이되고 계속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때 나는 감정소모를 크게 하고 싶지 않다. 살아가는 과정을 즐기는 법을, 조금이라도 재밌게 사는 법을 배우고 싶다. 과제를 다 끝내고 제출했을 때 말고 요즘은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예전에 그만두었던 아이돌 덕질을 최근 다시 시작했다. 응원봉도 사고, 앨범도 사고, 돈을 쓰는 게 아깝다는 생각 없이 콘서트를 가기 위한 돈도 모으기 시작했다. 몸을 축내면서 내 청춘을 다 바치며 살고 싶진 않다. 혼자 괴로워해도 항상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은 좋은 거니까 장착하고 살아갈 것이다. 대신 중간중간 내 청춘도 챙겨주기로 했다. 그러지 않으면 후회할 것만 같았다. 최근에는 시험이 끝나는 대로 친한 친구와 그 친구의 최애 아이돌 콘서트를 보러 서울 여행을 계획했다. 그렇게라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내가 오롯이 나일 수 있는 곳을 찾아 숨구멍을 이리저리 뚫고 싶었다. 그렇게 뚫고 나면 그 작은 구멍들 사이로 바람이라도 불어올까 봐. 내가 더 쉽게 숨 쉴 수 있을까 봐. 내 앞에 놓인 삶의 무게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어깨가 가벼워질까 봐. 눈물은 탈수를 부르고 에너지를 줄인다. 그래서 난 그만 울기로 했다. 항상 그랬듯 또 이번 달만 버티자. 그렇게 다음 달에는 다음 달만 버티면 된다. 그러다 보면 또다시 밝은 빛이 도사리는 터널 끝이 오겠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