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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디 Jan 25. 2023

3. 낭만 가득한 채소

#야채카레 좋아하세요?

내가 좋아하는 채소들

-사각사각


난 야채의 아삭한 소리를 좋아한다. 특히 잘게 썰은 야채를 달궈진 프라이팬 위로 볶을 때 나는 소리를 좋아한다. 치지직-치지직-


야채는 색깔이 참 알록달록하다. 흙 묻은 감자는 생긴 거와 달리 안이 뽀얗고, 냄비에 삶으면 젓가락으로 쑥-찔러서 고소한 향을 맡는다. 양파는 적양파를 좋아한다. 단 맛이 나는 야채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볶은 양파만큼 가장 달콤한 채소는 없다. 버섯도 종류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새송이 버섯이 좋다. 버섯은 식감이 말캉거리는데, 소금이나 후추로 시즈링만 해도 고기 같은 좋은 향이 난다. 파프리카는 채소 중 가장 귀여운 형태이다. 둥글둥글 빨강, 노랑, 초록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마치 신호등과 닮았다. 맛은 말할 것도 없이 비타민C가 풍부한 상큼한 맛이다. 브로콜리와 당근은 수프와 최고의 조합을 보여준다. 식감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불호에 가까울지도 모르지만, 난 수프를 먹을 때 당근과 브로콜리의 부드러움을 사랑한다.



어렸을 때 야채가 싫어서 입 안에 오물오물 씹고만 있던 적이 있다. 엄마는 야채를 안 먹으면 키도 안 크고 얼굴도 못난 채소로 변한다며 잔소리부터 시작했는데, 오히려 역효과 났던 나에겐 채소가 아주 싫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런 내가 어쩌다 야채를 사랑하게 된 거냐면 바로 카레였다.


우리 집 가정은 두 분 모두 맞벌이를 하셨고, 요리라곤 눈곱만큼 관심이 없어서 배달요리를 주로 이용했다. 그러다가 내가 중학교로 학년을 진학할 때즈음,  부모님은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과 가까운 곳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는 사랑샘(보육원 같은 개념)이라는 곳에 다니며 생활했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꽤나 적었다. 그래서 가족이 한 곳에 모여 제대로 된 밥을 먹게 된 것은 중학교 이후부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요리가 있는데, 처음으로 엄마가 해준 카레맛이다. (원래는 3분 카레만 먹어서 엄마가 해준 수제카레는 처음이었다) 난 보통 카레보다 짜장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그 당시엔 온 집안에 풍겨오는 카레향이 숟가락을 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고기보다 야채가 더 많이 들어간 야채카레였고, 눈 딱 감고 입 안에 야금야금 씹는 순간 카레와 야채의 풍미가 진하게 느껴졌다. 모든 야채들은 카레향을 그대로 흡수해 제 각각 어울리는 맛을 만들어냈고, 부드러운 식감에 더해 포만감도 높았다.


그리고 아빠가 아침이 되면 출근하기 위해 카레를 보글보글 끓일 때, [아 오늘 일찍 출근하는구나]하고 카레향을 킁킁-맡으면서 눈을 뜬 기억이 있다. 나에겐 카레란 가족을 한 곳에 모이게 해 준 유일한 음식이었다. 냄비 하나로 가족들이 옹기종기 보여 그릇을 맞대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며 하루를 묻는다. 야채 가득한 카레는 온 가족을 식탁에 모이게 해 준 낭만적인 식사였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모든 야채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마 계기는 엄마가 해준 야채카레일 거라고 생각한다. 낭만 가득한 야채카레가 끔찍이 싫어했던 채소를 한 입에 먹을 수 있게 해 줬다. 난 대부분의 채소를 가리지 않을 만큼, 야채가 들어간 음식들을 자주 먹는다.


여전히 아삭아삭- 소리를 내면서.


나에겐 채소란, 낭망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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