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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디 Feb 23. 2023

6평 원룸으로 예약했습니다.

가족 여행, 6평 원룸에서 보내요.

지난주는 저에게 아주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처음으로 가족 모두가 일본으로 여행 가기로 한 날이어서입니다. 제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지 2년간, 단 한 번도 놀러 온 적 없는 가족들에게 저의 삶을 낱낱이 보여주는 날이 온 겁니다. 부모님이 예약한 티켓은 나리타 제2터미널, 도착시간 18시 비행기였습니다. 저는 너무 들뜬 나머지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끝마치고 코트를 입은 채 얌전히 시간이 흘러가길 기다렸습니다. 공항으로 부모님을 마주하기 위해 버스를 예약해 둔 상태여서 시간만이 저를 잠시 잠재워줄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예상보다 차가 막히지 않아서 30분 일찍 공항에 도착했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공항에 오니 여전히 들뜬 기분은 감출 수 없더군요. 저는 얼른 부모님이 오시길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이미 머릿속엔 부모님과 같이 갈 분위기 좋은 식당과 관광명소 등 웃음 많은 나날의 여행을 상상하는데 행복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하루는 아사쿠사에 있는 호텔에 머물고, 나머지는 저의 6평 원룸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아무쪼록 여행이니 만큼 하루는 호텔에서 편히 머물고 싶었고, 그 뒤는 딸의 생활흔적이 묻어있는 곳에서 부모로서 챙겨주고 싶은 게 많다고 하셨습니다. 이때 저는 가족 3명이서 6평 원룸에 지낼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혼자 살기 적은 규모가 아니지만, 싱글 침대와 싱글 주방, 싱글 화장실 등 어느 곳도 가족 3명이서 지낼 만큼 편한 곳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 어둡고 칙칙해만 보이던 방 안의 분위기도 아늑함으로 채워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참을


공항에서 기다리자 부모님이 캐리어 2개를 끌고 저에게 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얼굴은 여전했지만, 눈은 살짝 피곤한 듯 보였습니다. 웃는 모습으로 마주하길 원했는데 두 분의 눈을 보자 조용히 인사를 나누고 빨리 호텔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마는 전철을 타자마자 이어폰 두 귀에 꽃은 채 눈을 감으셨습니다. 저는 괜스레 마음이 씁쓸해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다녔습니다. 반대로 아빠는 저의 표정을 읽은 신 건지 여러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그저 안부가 아닌 일본에서의 하루하루를 물어주셨습니다. 그게 또 기뻐서 아빠 손도 꼭 잡으며 가족 3명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도착한 호텔은 도쿄 스카이트리가 눈에훤히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저의 가족은 피곤한 나머지는 잠깐 보고 끝났지만요. 부모님이 저녁을 드시지 못해서 작은 이자카야로 들어가서 메뉴를 골랐습니다. 이자카야 메뉴는 생각보다 단순해서 면종류 하나, 밥종류 하나, 꼬치류 하나, 술 2잔 정도 시키고 수다를 떨었습니다. 거짓말처럼 술을 마시고 나니 가족들은 점점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양 쪽 테이블에서 들리는 큰 웃음소리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저희 가족도 빵빵 웃으며 대화했습니다. 그날은 올해 가족들과 있으면서 가장 크게 웃는 날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곤 상상했는데 내일은 더 많이 웃을 여행이 될 거라고 말입니다.


언제 잠을 들었는지 모를 만큼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눈을 뜨고 나니 가족이 있고, 목소리가 들리고, 낯선 방에서 익숙한 가족의 향기가 풍깁니다. 가족이 있는 것만으로도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내일에도 가족이 있을 걸 생각하니 안심했습니다. 이대로면 허름한 6평 원룸에 들어가도 나름 괜찮을 거라고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체크아웃 시간이 다가오자 엄마가 물었습니다.


[너희 집에 이불은 몇 개 있니?]


생각해 보니 가족과 함께 덮을 이불도 베개도 부족했습니다. 아차 싶어서 집에 도착하면 근처 역에서 이불과 베개를 사자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에겐 호텔처럼 따듯한 아늑한 곳에 머물고 싶었지만, 아직 학생인 저로선 호텔비 하나 내줄 만큼 능력 있는 딸이 아니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 순간은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엔 더 좋은 호텔과 더 좋은 여행지에 있길 바라며.


6평 원룸, 저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두 분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헉헉 숨을 쉬기 바빴습니다. 그날은 바람이 거세었고 역에서부터 1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집까지 평소 걷지 않는 두 분에게 조금 힘든 거리가 된 모양입니다. 물론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전철을 탔던 것도 있지만요.


조용히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집 안을 한눈에 보았습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너 혼자 살기엔 적당하네]


엄마가 넌지시 했던 말이 지금 떠올려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딸을 홀로 유학을 보내 걱정이 심했는데 안심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숨을 돌렸습니다. 그날부터 우린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신주쿠, 시부야, 키치죠지, 오다이바, 초밥, 오코노미야끼, 어묵, 정식 메뉴 등 등 여러 곳 여러 음식을 먹으며 즐겼습니다. 두 분 모두 눈을 뜨면 매일매일 일하기 바빴는데, 잠시 일을 내려놓고 사뿐히 걷는 모습이 딸로서 뿌듯하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작은 6평 원룸에 돌아와 맥주 한 캔 씩 들이키곤 했습니다. 이상하게 혼자 있을 땐 먹던 술도 싱겁게만 느껴졌는데,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원한 탄산을 꿀꺽 들이킬 수 있었습니다. 우린 일인용 테이블 위에 오이조림 반찬 하나를 두곤 맥주 6캔을 비웠습니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갈 가족을 떠올리며, 혼자 남게 될 저를 위로하면서 말입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 부모님은 일찍 공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미 이케부쿠로역에서 곧바로 나리타공항까지 도착하는 9시 버스를 예약해 둔 상태였습니다. 그날의 저는 어리광을 부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 어리광 좀 부려둘 걸 후회합니다. 버스를 탑승하기 전 엄마는 저를 안아주고, 아빠는 건강히 잘 지내라며 어깨부터 등까지 쓰다듬어주셨습니다. 정말 눈물이 날 뻔했지만, 항상 잘하고 있다는 부모님 앞에서 바보같이 우는 모습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부모님이 떠나자 저의 마음은 마치 레몬의 향기처럼 씁쓸한 냄새만 났었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는데, 노란 마음은 파랗게 물들이기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이케부쿠로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6평 원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족 3명이 모일 땐 좁기만 했던 집이 지금은 너무나도 넓고 조용한 곳이 되었습니다. 홀로 청소를 하고 나니 저의 집엔 많은 흔적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이불을 덮었던 곳, 아빠가 사용했던 배게, 칫솔 3개, 일회용 젓가락, 먹다 남긴 오이조림 등.. 지금의 집엔 가족이 남긴 흔적만이 존재했었습니다. 사실 올해 3월 말에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알바도 구했고, 학업에 더욱이 충실하며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한 발판의 첫 단계였죠.


6평이라는 작은 방이 싫었고, 계속 보는 풍경이 지루했던 참이었습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참에 결국 깨닫게 된 게 있었습니다. 6평 원룸이 나에겐 결코 작은 방이 아니었다는 걸. 방 안에 색깔에 채워준 가족들이 이곳에 남아 더 남은 색깔을 채워주길 원한다는 걸. 저는 이사 가는 걸 그만두고 새로운 생활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집을 떠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는 걸 깨닫게 됩니다. 처음 유학을 떠났을 때의 설렘과 긴장감과 달리 가족이 없는 나의 집과 헤어진다는 건 자신도 모르는 무의 존재를 안에서 녹여내야 되는 것과 같다는 걸 말이다.


아무리 힘들고 외로워도 내일은 평등하게 존재합니다. 그 사실이 좋아서 노란 마음을 내려놓고 파랗게 마음을 칠합니다. 그렇게 색깔을 칠하고 하루를 쌓다 보면 매일 변하는 날씨처럼 계절의 보내겠죠.


저는 다시 6평 원룸 방과 갱신을 하고, 깔끔하게 청소를 했습니다. 분명히 어둡고 칙칙했던 방이 이젠 무언가 따뜻하고 애틋하게 느껴집니다. 이게 만약 기분 탓이라면, 그냥 마음에 싹이 트이길 바랍니다.



가족이 남긴 흔적, 내일에도 존재하는 6평 원룸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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