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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디 Aug 01. 2023

무더운 여름 이야기

[에세이] 다들 똑같은 거지

유난히 파란 하늘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무더위를 피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집에서부터 역까지 걸어가는 10분 동안 땀을 흘리기 싫었고 이번은 양산을 들어야 할까 미니선풍기를 들고 가야 할까 아님 둘 다 챙겨가야 하나 그런 고민들 말이다.


나는 최근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깨닫고 말았다. 한 달 생활비 중 식비가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인간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텅텅 비어 가는 냉장고 안에 얼른 음식을 채우지 않으면 이대로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내고만 것이다.  


올해는 지난여름보다 우회적이길 바랐다. 그러나 힘겹게 걸어온 역에서 손을 부채 삼아 얼른 이 더위가 사라지길 바라는 자신을 보고 올해도 지난여름과 똑같다는 걸 느꼈다. 나는 얼른 역 안에 있는 대합실로 피신했다. 에어컨 바람은 마치 아이스 아메리카노에서 얼음이 다 녹은 것처럼  온몸이 눅눅했지만, 옆에 앉은 사람들도 나처럼 더운 행색을 하고 있어 그저 빨리 전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다행히도 전철은 곧장 왔다. 물론 나는 전철이 멈추기 전까지 조급한 나머지 발을 동동거린 기억이 난다. 여름만 되면 마음이 좀처럼 가만히 있질 못한다. 아무리 더위를 먹었다고 해도 금세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러면 음악을 듣거나 그냥 허공만 보면 멍 때리곤 하는데 가끔은 같은 전철에 탄 사람들 중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는 사람을 발견하고 “오 마자 저거 재밌는데’하면서 몰래 쳐다보곤 한다. 이런 사람들과 마주하면 다들 똑같이 산다는 걸 실감한다. 나만 더위를 먹은 게 아니고 나만 조급해진 게 아니고 우리 모두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어느 때와 같이 일을 하기 시작한다. 매번 같은 일을 하고 출근을 시작해도 퇴근시간을 체크하는 버릇은 버리지 못한다. 꾸준함을 비롯한 회사와의 이별은 언제일지 다이어리에 작게 적어본다. 나는 남들처럼 꾸준한 사람은 아니지만 회사만 다니면 어떤 개미보다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대충 일하면서 돈만 챙기는 월급쟁이로는 살고 싶지 않으니까. 그때 누군가는 이런 나를 칭찬해도 스스로가 조금 더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하다 그냥 다음 혹은 내년을 기대하며 다이어리를 덮어버린다. 만약 지금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한다고 해도 다음 달 월세와 전기세, 수도세를 걱정해야 하고 일을 하지 않는 자신을 후회할게 뻔하니까 말이다. 순간의 해방이 영원한 불안을 놓아주진 않는다.


언젠가는 전철도 버스도 없는 작은 외딴 마을에서 살고 싶다. 그러면 여태까지 못 읽은 책도 보고 요리책에 있는 음식들도 하나 하나 해보며 소소하지만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다 가끔은 글도 쓰고 프리랜서처럼 하루하루를 사는 꿈을 꾸겠지. 이게 나의 한 발자국이란 걸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다.


오늘은 저녁은 뭘 먹을까. 더우니까 편의점에 들러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가자. 어디까지나 상상에 불과하지, 실제로 나의 바람대로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가끔 저런 상상도 하며 맛있는 저녁과 함께 유튜브로 하루를 끝마치는 것도 최고의 하루를 보내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다들 나랑 똑같은 하루를 보내겠지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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