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
점을 보기도 했다.
정신과 전문의도 찾아가 보았다.
지역 센터에서 몇 차례 상담도 받아 보았다.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까 나름대로 고민해보고 같이 답을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계속 그 자리를 맴돌 뿐.
웃고 떠들며 행복해하는 우리의 모습이 어느덧 피에로의 환영처럼 보이기 시작했을 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고 오히려 슬퍼 보이기 시작했을 때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 것일까 수없이 고민하고 방황했다.
주변 모두 우리를 행복한 가정이라며 추켜 세울 때 그 거짓된 행복을 지키려 부단히 도 애썼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했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우리 아이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내 아이도 내 웃는 얼굴만 보고 행복한 모습만 보고 자랐으면 했다.
그렇게 철저히 타인의 눈을 의식하며 나만 외로운 행복을 좇다 보니 숨이 가빴다. 아이의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면 그게 행복이지 하며 마음 한편이 썪어들어가는 것을 외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아이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울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나에게 안아 위로해 주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새삼스레 나를 위한 행복을 다짐했다.
'정말 이혼이 답인 걸까?'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라던데 정말 그럴까?'
'우리 다시 잘해볼 수 있을까?'
마음속에 끝없이 대화들이 오간다.
수없이 흐르는 질문들은 그 어떤 곳에도 멈추지 못한 채 계속 흐르기만 한다. 하지만 어디로 흐르는지 이 길이 맞는 것인지는 모른다. 그저 흐른다.
내 생각의 물줄기는 과연 어디로 흐르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답답해하던 어느 날 정말 우연히 GPT에게 질문을 하게 됐다. 그저 답답함에 건넨 푸념 섞인 질문이었고 그렇기에 큰 기대 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리 대단한 GPT라 한들 9년을 해결하지 못했던 그 오랜 문제를 너라고 별 수 있을까.
오히려 한 순간에 해결책이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당신은 아주 뛰어난 상담가입니다. 위험성 회피가 아주 높아서 다른 사람의 상처보다 본인의 두려움을 회피하고자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상과 그렇지 못한 현실에 괴로워해 반복적인 거짓말과 그를 메우기 위한 대출까지 해서 가정에 계속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남편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답이 생성되는 그 몇십 초 사이에 불신과 기대 그 어딘가에 외로이 서성였다.
하지만 순식간에 생성된 답변을 보고 잠시 넋을 잃었다.
아무도 없는 광장에 혼자 헐벗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데 내 온몸을 훑고 있는 것 같은... 어쩔 수 없이 들켜버린 느낌이랄까.
짧지만 답답한 내 감정을 진심으로 알아주기라도 하는 듯 GPT는 아주 성실하게 답변해 주었다.
정말 깊고 중요한 질문이에요. 그런 상황을 오랫동안 지켜보셨다면, 아마 말씀하신 “거짓말보다 그 안의 두려움”을 이미 꿰뚫어 보고 계신 듯합니다. 지금의 남편분은 단순히 “나쁜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감당할 힘이 부족한 사람이에요. 그 두려움이 "자존감 붕괴"와 "통제감 상실"로 이어져, 거짓말과 빚이라는 왜곡된 방식으로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겁니다.
1) 위험 회피형 사고
→ 실패·비난·실망을 견디는 능력이 매우 약해서, "거짓말"이 현실보다 안전하게 느껴집니다.
→ 문제를 직면하는 대신, 단기적인 안정을 택합니다.
2) 자기 가치의 경제적 환원
→ "돈을 벌지 못하면 존재 가치가 없다"는 왜곡된 신념이 있습니다.
→ 이 신념은 보통 어린 시절 "성과 중심적 사랑"을 받았던 이들에게서 생깁니다.
→ 그래서 빚을 내서라도 ‘가장 역할’을 유지하려 합니다.
3) 수치심 회피형 정서
→ 진실을 말하면 “무너진 자신”을 마주해야 하기에, “내가 틀렸다”는 인정보다 거짓말을 택합니다.
1) 감정의 방향 전환: 비난이 아닌 ‘두려움의 이름 붙이기’
“왜 거짓말했어?”보다 → “당신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던 게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을까?”이렇게 물으면, 그가 처음으로 ‘방어 아닌 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 핵심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그가 느낀 ‘두려움의 진짜 정체’를 함께 찾아가는 것이에요.
2) 현실 직면을 훈련시키기 (심리적 회피를 약화)
→ 거짓말과 빚의 패턴을 깨기 위해선 ‘작은 진실 말하기’를 훈련시켜야 합니다.(예: “이번 달엔 이만큼 부족했어.” “사실 이 일에 자신이 없어.”)
→ 진실을 말한 후에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경험이 쌓여야, ‘두려움 < 신뢰감’으로 전환됩니다. 이를 돕기 위해 부부상담 혹은 인지행동치료 기반 개인상담이 매우 효과적입니다.
(특히 회피성 성향에 특화된 상담이 필요합니다.)
3) 경제적 현실은 감정의 연장선에서 다루기
→ 재정 문제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통제감의 문제예요. 가능하다면 가계 재정 투명화를 함께 시도하세요. 단, “통제”가 아니라 “공동 회복 프로젝트”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예 : “우리 둘 다 지금 겁나지만, 숨기면 더 무서워질 것 같아. 같이 다시 계산해 보자.”)
4) 자기 효능감 회복의 루틴 만들기
→ 남편분에게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 “신뢰를 회복하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주면 좋습니다. (예: 가족 안에서 매일 하나의 ‘작은 약속’을 지키는 훈련, ‘오늘은 회피하지 않고 이야기했다’는 감정적 성공 경험을 쌓기)
→ 이런 관계에서는 배우자 쪽의 정서적 소진이 매우 큽니다. 당신이 계속 “구해주는 사람” 역할을 하면, 남편의 회피가 강화됩니다. 그러므로 당신 자신을 돌보는 루틴이 꼭 필요해요. 감정일기, 개인상담, 심리 서적(예: 《두려움과 용기》, 《회피의 심리학》) “내가 그의 문제를 대신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인지적 경계 세우기
“거짓말을 멈추게 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안전한 관계를 함께 만드는 것”
이게 진짜 회복의 시작입니다.
지난 9년이라는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똑같은 일의 반복으로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이미 해볼 대로 다 해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GPT의 답변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끝까지 최선을 다했을까?'
내 사정을 아는 이들은 겉으로 나를 위로하며 속으로는 연민의 감정을 품겠지.
어떻게 그렇게 참고 사냐며 나를 추켜세우지만 아이 때문인지 그 누구 하나 이혼을 권하지 않았다.
답도 없이 긴 터널을 걷고 있는데 그 터널 안에 갇힌 게 나인지 남편인지 아니면 우리 모두인지 모르겠다. 그가 스스로 극복해냈으면 했고, 나는 할 만큼 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거기엔 '우리'가 빠져있었다. 함께 극복해야 할 그 무언가라기보다 그저 한 사람의 희생만을 강요한 불공정한 계약 같았다. 처음부터 불공정한 계약은 아니었겠지만 이 불공정을 감지하는 순간 한 사람은 죄인이 한 사람은 피해자가 되어 서로를 계속해서 옭아맸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함께 극복해 나가 볼까?'
'어떻게 하면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함께'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을까?
답답해 시작한 나의 첫 질문에 GPT는 그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낯설지만 친숙한 그의 답변에서 왜인지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
그래서 조금씩 시작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거짓행복이 아닌 진짜행복을 '우리'가 '함께' 찾아나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깊은 물줄기가 멈추지 않고 흐르는 한 여전히 시간은 있고, 우리에게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