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워낙 수면장애가 심하다. 쉽게 잠을 들지도 못하고 겨우 잠에 들어도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겁이 많아서 그런지 작은 소리에도 잘 놀라서 깬다. 여행을 가서도 시차 응을 잘 못해서 여행하는 동안 해롱해롱 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이번에는 심상치 않다. 한국에서부터 잠을 제대로 못 잤으니 따지자면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결국에는 수면유도제를 사서 먹고 잤다. 7시간을 한 번을 안 깨고 잠을 자니 이제 살 것 같다.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서 엄마와 긴 통화를 했다. 어렸을 적부터 엄마한테 나의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의연하게 지내왔었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엄마가 그립고, 조카들이 보고 싶다며 한바탕 울었다. 엄마가 많이 놀랄까 봐 염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엄마는 담담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동안 나는 엄마의 감정을 짐짓 생각하느라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전화를 끊고 나서 엄마가 속상했을지 아니면 의연하게 지나갔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건 엄마의 감정이다. 엄마와의 전화를 끊고 나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생각하느라 나의 감정을 숨기고 산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다. 어렸을 적 유난히 말이 없고 겁이 많은 조용한 아이였다. 나는 겁이 많은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관찰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의 안전이 위험하지 않으려면 주변을 살피는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사회화 활동을 삼십 년 넘게 하면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환경을 관찰했다. 그러니 눈치가 빠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솔직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오늘은 그런 내가 온전하게 내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한 손에 꼽히는 날 중에 하루이다. 여기서 지내면서는 내 강점에 이렇게 솔직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