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수업 숙제가 생겼다. 반 친구와 같이 대화를 연습하고 녹음해서 오는 것이었다. 나는 낯도 심하게 많이 가려서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숙제를 해야 하니, 누군가에게는 말을 시켜야 한다. 오늘의 나의 숙제 친구는 나와 적당히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일본인 친구이다. 본인도 숙제 친구를 찾지 못했다며 오히려 반색하며 반겨준다.
그런 그녀가 너무 고마워서 신나게 숙제를 했다. 그리고 숙제가 끝나고 나니 그녀가 갑자기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한다. 처음이다. 여기서 누군가가 나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하는 것이…. 게다가 외국인이다. 너무 반갑다.
둘이 식당에 앉아서 안 되는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떠듬떠듬하고 잘 이해 못 하는 이 말들이 너무 재미있다. 그녀는 다양한 나라에 거주하면서 증권사에서 일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해외 경험이 많고 영어에 능숙한 그 친구는 언어는 언젠가는 배우게 되는 것이니 삶을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 도시에서 지역 축제며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진들을 보여줬다. 사람의 기질이라는 것이 이렇게라도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유로운 그녀가 부러웠다.
사실 나는 짧게 여행을 가서도 놓치는 것들이 많다. 한국인들을 서양 사람들에게 해외여행 가서 새벽같이 일어나서 관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그렇지가 않다. 게으른 성격과 약한 체력으로 인해서 여행을 가면 기껏 하는 것들은 조용한 공원이나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들이다. 그래서 몇몇 친구들을 그렇게 재미없을 거면 한국에 있으라고 장난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런 내가 그녀의 사진들을 보니 내가 너무 바보같이 살고 있다는 반성 아닌 반성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과 기질이 있으니 다 다른 것이라고 이내 나를 설득 시켰다. 아마도 불편한 마음에서 의무감으로 축제나 문화 행사의 현장에 있었으면 즐기지도 못하고 불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오늘은 나도 숙제를 같이 하고 점심밥을 먹을 수 있는 친구가 생겼으니 조금은 마음 놓고 이곳을 즐겨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은행에서 도착한 카드가 있다. 그래 걱정하던 것들을 해결했으니 이제 나도 즐겨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