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것은 매일을 실패한다는 것이다. 그 실패는 다름 아닌 안 들리는 프랑스어와 말을 못 하는 나 자신이다. 수업을 가기 전에는 ‘오늘은 얼마나 안 들릴까?’ 생각하고, 수업을 다녀오면 ‘오늘도 역시나 안 들렸구나’를 생각하며 더디 느는 나를 자책하게 된다. 같은 반 친구들은 틀려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데, 나에게는 이 스스럼없이 가 어렵다. 가장 괴로운 것은 내가 부진아가 되는 것이 힘들다. 수업 시간에 가장 바쁜 모습으로 허둥지둥 따라가도 반도 이해하지 못할 때 정말 괴롭다.
나는 줄곧 모범생 아이였다. 말수가 많거나, 발표를 잘해서 선생님에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시험을 보면 늘 상 앞줄에 있던 아이였다. 선생님이나 교수님이 했던 이야기들을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고 복습 몇 번에 완벽히 이해하는 소위 말하는 모범생이었다. 학창 시절에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도 없고, 선생님께 혼나본 적도 없다. 그랬던 내가 이곳에서는 부진아가 되어서 매일을 나머지 공부하는 느낌이다. 집에서 아무리 듣고 단어를 외워도 도통 되질 않는다.
이런 내가 여기서 느는 것이라고는 ‘눈치’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말을 잘하고 잘 들어줄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아서 그 곁에 앉는다. 어학원의 수업은 대부분 짝이나 그룹을 지어서 하는 수업들이 대부분인데, 이럴 때 이 친구들을 좋은 파트너가 된다. 요즘은 아랍 친구 곁을 맴돌고 있다. 이 친구는 나에게 먼저 발언권을 주고 나의 틀린 발음이나 문법을 고쳐준다. 그리고 나의 하찮은 질문에도 정성스럽게 대답을 해준다. 무시할 법도 한데 한 번을 그렇지 않고 있다. 아마 이 친구는 잘 알고 있을 거다. 남의 말을 잘 듣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과 아는 것도 다시 설명할 때 본인의 것이 된다는 것을….
오늘은 선생님이 각자 다르게 나누어준 만화를 읽고 친구들에게 설명하는 것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두려운 나는 언제나 피하고 싶은데 선생님은 절대 넘어가는 법이 없다. 다른 사람은 그냥 넘어가도 나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오늘도 여기 그냥 지나쳐 가질 않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반 친구들이 아니라 선생님에게 먼저 간단히 설명해도 된다고 하셨다. 더듬더듬 겨우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크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청천벽력과 같지만 절대 봐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용기를 내어 이야기했고, 선생님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곁에서 아랍 친구가 잘했다면 엄지 척을 해주었다.
집에 가는 내내 이게 뭐라고 눈물이 났다. 매일을 고민하며 자책했다. 괜히 왔나 싶기도 했고, 여기서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냥 한국에서 직장 다닐 거라며 생각하기도 하고,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야 하나 고민 아닌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런 고민들을 뒤로하고 조금은 편하게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낮잠을 잤다. 마음이 편해져서 인지 비가 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누워있었다. 사실 요즘, 매일을 전쟁하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데 편안하게 잠을 못 자고 있다. 오늘은 그래도 조금 낮잠을 잤으니 다행이다. 한국에서처럼 낮잠을 늘어지게 자는 날, 정확하게 적응한 날이겠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