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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재 Jan 13. 2022

소원을 들어주마


어느 날 신이 음성으로 다가와 삶에서 원하는 것 딱 하나를 들어주겠노라 한다면, 자유라고 답하겠다. 혹여나 나 말고 당신에게 기회가 먼저 온다면 꼭 자유라고 답을 해라. 이건 멋있다거나 혹은 처절한 대답이라기보단 아주 똑똑한 꾀를 내는 것이다. 자유를 갖는 건 세상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혹 사랑이나 부를 떠올렸다면 그보다 자유가 더 좋은 아웃풋을 뽑아낸다는 걸 한번 증명해보겠다. 먼저, 사랑을 갖는 건 사랑을 갖는 것뿐이다. 그 교환에 생략된 건 나다. 누군가의 사랑을 통해서만 안정되고 충만해지는 마음은 허공, 갈대, 이산화탄소 같은 마음이다. 그건 그리 사랑스럽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우리에게 필수 영양소이지만 영양소를 채울 몸은 나에게 있고 몸은 나와 있다. 귀한 햇볕과 비가 가무른 토양에 내려봤자 그곳은 불모지다. 그러니 신에게 사랑을 말하기엔 내 몫의 일들이 아직도 많으니 영 아까운 것이다.



부(富)는 더 하다. 부를 갖는 건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다. 부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순진한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부는 무다. 부에는 정도가 없기에 형체가 없고 그 안엔 가치도 없다. 오히려 여태껏 세워온 삶의 가치를 영점으로 만든다. 우리가 부를 유토피아처럼 생각하는 건 당장 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농담 같은 상상이다. 자기(自起) 없는 부는 암이 된다. 속에 자라는 돌연변이 마음이 결국에는 온 몸을 멈추게 한다. 그래서 신에게 부를 말하면 오히려 나를 빼앗기는 것이다.



그러니 자유를 이야기하라.

살면서 한번쯤은 지금 내가 자유롭다는, 마음이 잔디를 잔뜩 묻혀가며 초록 땅을 껴안는 느낌을 느껴봤다면 주저 없이 말해라. 혹은 소름 돋는 자유를 느껴본 적 없어도 말해라. 자유는 사랑이 될 수도, 부가 될 수도 혹은 또 다른 가치도 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것들이 나를 쌓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들은 오직 수단일 뿐이다.  



세상에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부유한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자유로운 사람은 지구에 한 명도 없었다. 기원전에는 자연에, 중세에는 종교에, 근대에는 국가에, 현대는 서로에게 모두 몸이 돌돌 말아져  꼼짝 못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랑과 부의 이야기, 그 껍질 안에 있는 진주 같은 바람도 바로 자유일 것이다. 사랑으로 사람들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고, 돈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롭고 싶을 것이다. 우리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사랑하며 돈을 번다. 그래서 신에게 소원으로 자유를 말하는 것이 똑똑한 꾀인 것이다. 그날이 오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자유를 뱉을 것이다. 당신도 주저 없이 자유를 던져라. 그리고 소원이 이뤄진 순간 신은 음성이 아니라 모습으로 눈에 나타날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은 신이 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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