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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몬 Aug 24. 2023

중국 대륙의 부잣집에 가보았습니다

집에 드럼실이...

앞선 이야기


회사에 사이좋았던 직원이 있었다.


그는 나보다(이하 S) 직급이 높았고 우리 팀원은 정말 잘 지냈다.

S는 종종 우리를 자신에 집에 우리를 초대했는데 본인이 부모님과 사는 집은 중산층으로 평범한 아파트였다. 방 세 개 화장실 두 개. 좀 다른 거라면 회전 테이블이 있다는 것. (중국에서 집에 회전 테이블이 있는 것은 흔한 일이다)


S의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 아버지가 직접 요리를 해주셨는데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라 정말 몸 둘 바를 몰랐다.


아버지가 요리를 해주다니!!


다른 중국인 직원들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는데 나는 문화적 차이로 큰 충격을 받았다.

오래전에 중국에서 유학할 때 우리를 가르치던 선생님의 초대로 우리 반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 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선생님의 아버지가 요리를 해주긴 했다만 아버지가 요리를 잘하셔서 그렇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또 보니 중국은 집에서 남자가 요리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싶었다.


S의 아버지 요리 실력은 수준급이었고 S의 어머니와 함께 약 20가지 정도 되는 요리를 회전 테이블이 부족할 정도로 차려주셨다. 음식은 맛있었고 양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이 테이블 위에 올려진 것도 다 못 먹을 정도였는데 밥도 있으니 더 먹으란다. (중국은 주식을 나중에 먹는다)


아니요.. 진짜 못 먹겠어요 ㅠㅠ


음식이 먹어도 먹어도 줄지가 않았다. 탕수육도 있고 온갖 중국 가정식 요리가 있었는데 탕수육을(탕수육을 굉장히 좋아함...) 다 먹어가니 다시 내어 오셨다. 아... 절대 한 음식을 다 먹으면 안 되는 거였다 ㅠㅠ


중국은 오히려 음식을 남기는 것이 예의라는 얘기를 했는데 손님이 그릇을 다 비우면 모자라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라고 한다. 그러니 꼭 다 먹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고 배운 한국인으로서 다 먹는 것이 습관이 된 나에겐 너무 고역이었다. (지금도 눈앞에 있는 음식은 남기지 않고 다 먹으려고 한다...)


중국인들은 자신과 가까운 이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친하게 지내는 중국인 직원들로 부터 여러 차례 집으로 초대를 받아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는데 S는 어느 날 우리 팀원을 자신의 언니 집에 초대했다. S는 이번에는 나를 포함하여 우리 팀과 잘 지내는 다른 팀의 직원들까지 6명 정도를 언니집으로 초대했는데 언니 집은 그 도시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부촌이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허락받지 않으면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영화 '쥐라기 공원'에 들어가는 그런 큰 문이었으며 그 단지 안에 있는 집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되어 있는 독채였다. 중국어로는 비에슈(别墅)라고 불리는 곳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별장'이라는 뜻인데 고급 펜션 같은 단독주택이었다.


진짜 이런 나무 통문이었음


단독주택이 모여있는 이 단지는 모든 집이 독채였으며 각 집마다 낮은 벽이 둘러져 있었으며 차 두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과 잔디밭이 있었다.

위에서 보면 이런 느낌일 듯

집 안에는 지하공간까지 있었는데 S의 조카가 최근에 드럼을 배운다며 지하에 드럼실이 만들어져 있었다. 드럼을 치면 시끄러우니 방 밖으로 소리가 내어나가지 않도록 방음 시설이 되어 있었다. (나중에 S의 조카는 우리에게 드럼 연주를 해 보였는데 꽤나 실력 있었다)

지하에는 방 두 개가 있었는데 드럼실외 다른 방은 도서관 같이 책장과 책으로 꾸며져 있었다. (대애박...)


1층은 넓은 주방과 금색으로 된 큰 회전 테이블이 있었고 바깥 잔디밭에서는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었다.(이 날은 더워서 실내에서 먹음)


2,3층은 모두 방이었다.

방이 5~6개 정도였던 기억이 난다. (다 들어가 보지는 못 했음)


우리는 그날 1층에서 주로 놀았는데 S의 부모님이 언니집에 와서 우리의 음식을 만들어주셨다.

S의 부모님 그리고 언니까지 음식을 만드는 데다 일하는 분까지 있었으니 음식 양은 저번보다 훨씬 많았다.

큰 회전 테이블에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였고 직원들과 S, 그의 부모님과 언니 그리고 조카까지 모두 모여 식사를 했다. (생각해 보니 집이 크고 테이블도 넓다 보니 더 많은 이들을 초대한 듯)


그의 언니에게 남편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더니 자그마한 사업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도 와인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남편과 어떻게 만났냐고 물어보니 초등학교 동창이란다. 식사를 하고 있으니 그의 남편도 퇴근하고 돌아와 우리와 함께 식사를 했는데 덩치가 좋고 푸근한 인상이었다.


언니가 와인 회사를 하다 보니 전에 S의 집에서도 언니가 보내준 와인을 마셨는데 이 날은 와인이 아주 그냥 몇 박스가 종류별로 쌓여있었다. 분명 좋은 와인이라고 했는데 와인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홀짝홀짝 마시다 훅 가버렸다. 눈을 뜨니 2층의 어느 방 침대에 홀로 누워 있었는데(난 누구 여긴 어디...?) 기억을 더듬어 보니  식사를 하다가 다 같이 노래 부르고 (잔디밭에 나가서) 춤추고(그놈의 강남스타일...) 난리도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S의 어머님도 우리와 함께 신나게 춤을 추시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문을 조심스레 열고 나가보니 다들 여기저기에서 뻗어 자고 있었다. 이 날 모든 직원은 술이 취해 S의 언니집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S의 언니는 죽과 요우티아오(油条, 밀가루 튀김 꽈배기)를 준비해 주었고 우리는 그걸 먹고 집으로 갔다. (집에 가서 다시 실신)


내가 직접 만나본 중국의 실제 부자들은 자신의 부를 내세우지 않았다.

차는 꽤 좋은 차를 타고 다녔는데(S의 언니집에는 포르쉐와 BMW가 있었다) 옷이나 치장에 있어서는 명품을 입고 다니거나 좋은 브랜드를 입고 다니지 않았다.(내가 몰랐을지도) 그리고 자신이 돈이 많다는 걸 자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많다며 겸손했다. 대신 주변 사람들에게 통 크게 베풀거나 대접을 잘해주었다. (집은 정말 좋더라...)


빈 수레가 더 요란하다던데 요즘엔 정말 그렇다고 느끼는 현실이다.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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