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아버지도 그랬을까
불혹이 되었다.
내가 40대라니.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40대부터다.
그 시기 아버지는 굉장히 혈기왕성했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참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겠다고 노력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좀 잘 되려 하면 IMF가 오고 좀 잘되려고 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고 늘 그랬던 것 같다. 아버지는 50대가 다 되어서부터 커리어에 큰 변화가 생겼고 자신의 영역에서 높은 자리까지 오르면서 정점을 찍었다.
다만 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적었다.
아버지와 기억나는 추억이 그다지 많지 않다. 어쩌면 학창 시절, 내가 친구들과의 시간이 더 좋아서 나가 노느라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되었다.
아이도 둘이나 있다. 아이가 나에게 처음으로 '아빠'라고 부르는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큰 아이는 커갈수록 나와 너무나 닮았다.
정말 얼굴로 유전자 검사를 다 했다고 할 정도다. 함께 나가면 아들이 아빠랑 똑같이 생겼다고 어르신들께서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아들을 보며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좀 덜 겪게 해주고 싶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너무나 많다. 지금은 어려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조금씩 알려주려고 한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말씀들을 돌이켜 보게 된다.
아버지는 같은 말씀을 반복적으로 많이 했다. 당시에 나는 또 시작이다 생각했지만 내가 아버지가 되어보니 왜 그때 그런 말씀을 반복적으로 했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집 문 열고 나가서 핸들 잡는 순간부터 전쟁이다.
아버지가 늘 했던 이야기다.
집을 나가 차를 운전하는 순간부터 전쟁터라고 했다. 나는 출퇴근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이 속에서도 참 많은 불편한 일들이 생긴다. 쩍벌하고 있는 사람이라던가 불필요한 접촉을 한다거나 별거 아닌 일에 화내는 사람 등 집을 나가는 순간부터 전쟁의 시작이다. 회사에서는 어떤가,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모든 게 사람과의 문제다.
결국 사람은 사람 인(人), 사이 간(间)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도 어우러져 살아가야 한다.
참 이것이 쉽지가 않다.
학교 다닐 때는 맞지 않는 친구는 어울리지 않으면 된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놀면 된다. 그런데 사회는 그렇지가 않다. 그렇다 보니 가식적인 모습도 보여야 되고 굽히기도 해야 하고 내키지 않는 일도 해야 하며 화가 나도 참아야 한다.
나는 집에 가면 일절 일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좋은 일만 이야기한다. 바깥일을 집안으로 들여가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다. 사회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당하다 보니 아버지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참 힘들었겠다 싶다.
예전에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세상 더러운 꼴 안 보고 살게 해 준 부모님께 감사하다.
그땐 친구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 이야기가 많이 공감이 된다. 드라마나 영화, 뉴스를 통해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엿볼 수 있는데 예전엔 남의 일 같던 일들이 가장이 되니 너무 안타깝고, 마음 아프고, 화나는 일들이 많다.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몸도 마음도 정신도 건강하게 자란 것에 감사한다.
나도 우리 가족에게 그런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나이 앞자리가 3으로 바뀔 땐 철이 없었다. 다만, 사회에 진출해 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 즐기기 좋았던 나이였다. 앞자리가 4로 바뀌니 딸린 식구가 셋이나 있다. 이젠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니다.
예전에 개그맨 이경규가 이런 말은 했던 기억이 난다.
딸인 예림이가 학창 시절부터 아빠는 집에 없고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아 성인이 되어 둘이 있는 것이 너무 어색하다고 하니
아빠들이 40대에 가장 일이 많고
한창 일해서 돈 벌 나이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지...
40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불혹.
아버지가 견뎠던 무거운 책임감을 이제 내가 짊어진 나이가 되었다.
아버지는 그 한창때 우리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일과 가족과의 시간의 균형 사이에서 둘 다 지켜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