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과 클레멍
뚜르에 발을 딛은 후 나는 연습을 지독하게도 했다.
아무것도 몰랐고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없었으니 연습이 내 유일한 구원자가 되어 줄 거라 줄곧 믿었다. 어쩌면 회피성 연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 복도를 거닐면 항상 프랑스인 친구들을 마주쳤는데 스몰토크장인 친구들은 무엇이 그리도 궁금한지 나에대한 질문폭격을 해 왔다.
여느 때 처럼 학교가 닫을 시간 9시에 내가 맨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복도의 끝에서 피아노 소리가 울려왔다. 악보를 정리하고 막 나가려는 찰나에 마주친 친구는 자신을 클레멍이라고 소개했다.
올리비에(다른 피아노 교수) 오래 전 제자라고 소개 한 그는 피아노 뿐만아니라 지휘에도 관심이 있다며 신이 나 나에게 이런저런 음악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한날 내가 교수님에게 레슨을 받고 있을 때 클레멍이 들어 와 이야기 하던 중
“파리에서 꼭 레슨을 받아야 해요. 미래한테 내가 아는 교수님을 소개시켜주고 싶은데”
하고 겁도 없이 우리 교수님에게 말했다.
교수님은 당황한 표정으로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야” 하고 날카롭게 받아쳤다.
우리교수님은 성질이 있기로 소문이 자자 했는데
자주 고함을 질러대는 탓에 귀가 다 아팠다. 어느날은 레슨실에 들어가자마자
“tu me fatigue!!”
(넌 날 너무 피곤하게 해!!)
하고 소리를 꽥 질렀다. 레슨을 받고 있던 한 친구는
“ 너무 무례한 것 같아요” 하고
일침을 놓았다.
그 많은 학생들 중 거의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나는 알게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되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많았다.
올리비에 교수님은 내 담당 교수님과 아주 친한 교수였는데 나에게 파리의 유명 교수를 안다며 미래에게 소개시켜주라고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건네었다 . 중간에 종이를 낚아 챈 교수는 그 종이를 버려버렸다.
교수님이 나를 진정 생각하는 마음이었는 지 아니면 본인의 능력이 부정당한 것 같은 열등감이었는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여러 좋은 기회를 놓친 건 아닌가 마음에 꼬인 실타래가 가득한 듯이 복잡했다.
훗날 클레멍은 파리를 거쳐서 독일에서 자리를 잡았고,지휘 콩쿠르에서 수상 해 지휘자로써 훌륭한 커리어를 쌓아 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를 많이 도와주었던 그 친구가 부디 잘 지내기를 바라며 마음 속으로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