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주의 시간
이제는 제법 출근길이 익숙해졌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멍을 때리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도 이제는 내 몸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개미떼 같은 지옥철 줄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건지 벌써 어느 라인에 서야 빠른 지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그래도 진짜 샐러리맨이 된 그런 기분이 들겠다." 뭐 마냥 틀린 말은 아니다. 생각해 보니 은근히 그런 내 모습에 흡족해하는 상태이기도 하다.
첫 주는 배운 게 없었다. 지금도 역시 많은 업무 지시를 받는 상태는 아니지만 슬슬 업무에 대해 구체적으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삼 주를 보내며 도장을 잘못 찍는 가벼운 실수도 해보고, 상사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도 드려봤다.
컴퓨터랑도 처음보다는 많이 가까워졌고 썸 단계(something)를 넘어 이제는 본격으로 사귀는 사이로 돌입했다.
이제는 알아가는 것과 더불어 나는 너(computer)를 미우나 고우나 이해해야 하고 너의 편에 서서 언제나 너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임무이고 네가 미운 순간이 오더라도 피할 수 없는 임무이다.
어느 정도 너를 대해주는 요령은 찾았다. 문서에 필요한 샘플을 하나 켠 다음 복사한 뒤 계속 똑같이 만들어 보고, 작업해 보고 수정하면서, 쉴 새 없이 만져본다. 그리고 하나씩 깨우친다. 엑셀로 따지면 같은 수식이어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참 다양하지 않나?
좀 과장된 표현일 수 있지만 정말 너와 나는 더 뜨거워져야 한다. 오래 보고 오랜 시간 구석구석 만져가며 어떤 방식이 좋고 빠른지를 깨우치 듯이...? 그런 식이다.
더 적나라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싶지만 그러지 않아도 성인이라면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본격적으로 연습 삼아 산출도 해보면서 '이제는 정말로 내가 이 분야에 들어왔구나...' 이런 실감이 들었다. 가깝고 직접적인 실무를 배우는 시간은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인 건 사실이다.
다만 조금 슬픈 사실은 그 시간이 흥미롭지는 않다는 것. 지금의 나와 예전의 나는 많이 다르다는 것. 일을 정말 '일'로써만 받아들인다는 것.
과거에는 일에 대한 갖은 로망이 많았다. 일은 일에 불과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런 순간마다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며 감성팔이하고 마음을 자극시키는 순간들이 허다했다.
이제는 그런 마음이 많이 사라진 걸까? 사실 알면서도 괜히 한번 더 내게 되묻고 싶은 것 같다. 이런 걸 보고 "나이를 먹는다"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만약 나이를 먹은 내가 매우 화나는 일을 마주하게 된다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할까. 나이를 먹었으니 남들이 흔히 말하는 조언대로 많이 참는 게 현명할까?
"못 참으면 아직도 어리고 잘 참으면 이젠 어른"이란 말은 도대체 누가 만든 기준인 건지. 그런 말들이 자꾸 교훈처럼 퍼지니 억울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인내가 필요한 것도 맞지만 모든 것을 참으며 살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장 앞에 것만 생각하지 않고 멀리도 보면서 스스로가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선 안이면 괜찮지 않을까?
뭐가 됐든 간에 스스로 후회가 덜 한 선택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한 법!
참고로 내 스타일은 안 해보느니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입장인 것을 참고를 해서 알아서 걸러 듣기를 추천한다.
일을 빨리 배우기 위해 사무실에 있는 동안은 누군가 일을 지시하지 않는 이상 업무 연습에만 몰두하고 있는 중이다. 안타깝게도 어린 나이가 아닌 상태로 수습을 들어갔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릴라 하고 있다. 일부 상사들은 나보다 어리다. 배우는 데 자존심을 부리는 건 아니지만 나이 많은 내가 적어도 무시를 덜 받으려면 배운 것은 빨리 습득하는 게 중요하다.
아직 몸에 배지 않아서 꾸준히 해보는 게 중요한데, 이번 추석은 연휴가 너무 길어서 걱정이 든다. 일을 시작한 지 삼 주만에 10일 가까이 또 쉴 수 있다니-
좋은 일이지만 배운 걸 금방 잊기 쉬울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도 든다. 불안감에 끝내 파일을 옮겨왔고, 이번 연휴 동안에 생각이 나면 틈내서 꺼내보고 또 연습 삼아 만들어 볼 계획이다.
긴 연휴에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가족을 만나며 각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곳으로 재취업 전 휴식기를 가졌던 탓에 이번 연휴는 크게 계획이 잡혀있는 일이 없는 상태다. 그래서 오히려 걱정이 크다. 그러니 연휴 동안 차라리 간간히라도 업무 연습을 하면서 생활리듬을 잡고 있을 예정이다.
간간히 파일 확인해 보면서 내 시간을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