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집 정리를 하다 보면 있는 줄 몰랐던 물건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떡하니 보이는 데 있지만 쓰지 않는 물건도 보게 된다. 추억이 담긴 물건을 버린다는 점에선 어느 쪽이든 쉽지 않지만, 때론 후자가 더 어렵기도 하다. 아빠의 오래된 전축이 그랬다.
녀석은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데, 군데군데 버튼이 사라져서 이빨 빠진 늙은 악어를 보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 전축을 작동한 게 최소 10년 전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소리가 날지도 의문이다.
이번에 부모님 댁 짐 정리를 하면서, 몸집 큰 전축을 버리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쓰지도 않고 작동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거 그냥 버리자는 나, 그리고 그냥 두자는 아빠. 팽팽한 며칠이 흘렀다. 그러다 어제 힘겹게 입을 떼셨다.
“아빠 안 볼 때 버려주라.”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버리는 걸 볼 수 없을만큼 아빠에게 큰 의미였다니.
일단 알겠다고 하고도 마음이 괜히 싱숭했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찍은 사진엔 전축이 조금씩이라도 걸려서 찍혀있었다. 기억나지 않는 나의 과거에도 한 자리를 차지한 녀석이었다.
엄마의 전자레인지도 그랬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함께였다는 오래된 금성 전자레인지는 집을 여럿 바꾸는 동안 계속 함께였다. 올해 새 집으로 오기 직전까지니까 최소 31년 이상, 즉 엄청 오래 엄마 곁을 지켰다.
왜일까를 가만히 생각해봤다.
어쩌면 아빠는 ‘전축’을 보면, 음악을 즐겼던 30대가 떠오르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금성 전자레인지’를 돌릴 때마다 예뻤던 20대 새댁이 된 기분이 들었을 수도 있다.
오랜 물건들은 젊었던 엄마 아빠의 기억을 더 생생하게 품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것들을 버리면,
젊은 시절의 모습도 같이 잃는 것 같아서
그래서 버리지 못했는가 싶어, 괜히 마음 한 쪽이 짠했다.
아무래도 이 빠진 오랜 전축은 조금 더 우리와 함께할 것 같다. 아빠 스스로 보내줄 수 있을 때까진 말이다.
그때까지는 세월에 쌓인 먼지나 잘 닦아 줘야겠다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