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릿 우먼 파이터 시리즈 리뷰
‘여성과 몸’을 다룰 때 ‘야하다'라는 시선과 생각이 배제된 콘텐츠를 본 적 있는가? 의도는 그렇지 않더라도 카메라(혹은 모든 방식의 화면)에서 비추는 여성의 몸은 성별 상관없이 행하는 품평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있다. ‘야해서 감춰야 하는 것’ 혹은 ‘야하니까 노출해야 하는 것’이라는 미디어의 모순 사이에서 판단하거나, 예쁜 몸과 그렇지 않은 몸으로 구분 짓는 것이 참 쉽다. 그런데 스트릿우먼파이터(이하 ‘스우파’)를 볼 때는 한 번도 댄서의 몸을 보고 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여러 댄서가 노출 많은 옷을 입고 나옴에도 말이다.
혼자만의 생각인가 싶어 나름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50대 엄마한테 스우파 댄서들의 몸이 야하냐고 물어봤다. 엄마는 “그러고 보니 하나도 야하지 않다.”라고 말했고, “막 싸워서 그런가~?” 라는 말을 툭 내뱉었다. ‘막 싸운다’ 라… 그 말에서 여성의 몸을 그냥 몸으로 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스우파 1화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어떻게 여성의 몸이 저렇게 역동적으로 움직이지?’ 였다. 남자 댄서들만 가능한 줄 알았던 춤을 여성들이 공격적으로 느껴지다시피 추고 있었다. 그 어디서도 이렇게 많은 여성이 파워풀하게 춤추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남자 운동선수나 아이돌에게서만 봤던 활력 있는 움직임, 겸손보다는 무조건 이길 거라는 커리어에 대한 자신감, ‘쇼미더머니’나 ‘더 지니어스’ 등 흔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주로 남자 출연자가 보여줬 던 승리를 향한 집념의 역할이 모두 여성들에게도 쥐어졌다. 아니, 그들이 스스로 쥔 채 젠더플립을 보여줬다.
젠더플립 콘텐츠란 기존 성별에 고착화된 역할 혹은 서사 구조를 뒤바꿈을 말한다. 이때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 점>, <미남이시네요>의 남장여자 캐릭터같이 단순 성별을 바꾼 것에서 끝나지 않고, 클리셰를 전복하고, 사회적으로 부여된 성별 역할을 해체해야 의미 있는 젠더플립이라 할 수 있다.
스우파는 여성 개인의 기량으로 대단한 경쟁을 치르는 점에서 클리셰를 전복하기도 했지만, 노출한(혹은 그대로 의) 여성의 몸을 ‘야한 몸’ 대신 ‘그냥 댄서의 몸’, ‘멋진 몸’으로 비추었다는 점에서 고착화된 성 관념의 시선을 해체 했다. 여성 댄서들이 주체성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몸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신체 부위를 훑기보다는 몸 전체에 집중했으며, 몸이 주는 에너지를 전달하는 데 편집점을 두었다. <프로듀스 101> 시리즈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 극명하다. 무대를 채우는 여성들의 서바이벌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나, 만약 여자 아이돌이 스우파처럼 노출하고 열심히 무대를 한다면 아마 온갖 짤방과 슬로우모션 캡쳐가 인터넷을 돌아 다녔을 것이다. 아이돌의 몸은 그들의 몸이기보다는 감상하기 위한 몸에 가깝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아이돌이 춘 춤의 목적과 이를 담는 카메라 시선의 차이가 만들어낸다.
10여 년 전인 2014년, 가수 현아의 <빨개요>라는 음원 발매 당시 ‘퍼포먼스 vs 성 상품화’의 논란이 한바탕 일었다. 빨개요의 가사가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라는 동요를 인용해 자신을 먹음직스러운 대상으로 그린 점과, 뮤직비 디오와 퍼포먼스 등이 너무 선정적이라는 이유였다. 이때 현아가 한 말이 논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 “‘빨개요’는 당 당한 섹시를 담았고 예전보다 지금 오히려 어떻게 하는 것이 섹시한 것인지 잘 안다.”라고 말하며 주체적이면 성 상품화가 아닌 것이 되는가에 대한 2차 논란이 일었다. 그녀는 자신감이라고 했지만, 주체적 성 상품화는 어불성설이라는 시각도 다수 존재했다. 주체성은 단순히 ‘내가 주체적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서사와 히스토리 를 가진 이야기(춤)인지가 핵심이다. 어떤 시선으로 여성의 몸을 담는지, 그 몸을 가진 여성이 어떤 목적을 위해 보이는지가 중요하다. 이 시각에서 보면 현아의 <빨개요>는 여성 몸에 대한 품평의 시각을 재생산하는 것임은 틀림 없다. 따라서 기존 성역할을 새롭게 보는 경험이 젠더플립의 주요점이라면, 현아의 사례는 젠더플립이라 보기 어렵다. 당시엔 주체적 성 상품화의 반대를 보여줄 수 있는 사례를 찾을 수 없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스우파를 통해 얘기할 수 있겠다. 스우파가 여성의 몸이 많은 부분 노출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야하게 보이지 않는 장면은 대단히 괄목할 만하다.
스우파의 큰 성공과 반대로, 스트리트맨파이터(이하 ‘스맨파’)와 스맨파의 순수 무용 버전인 ‘스테이지 파이터’는 각 최고 시청률 1.9%, 0.9%를 기록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스맨파’는 원래 우리가 보던 경쟁 방식을 그대로 재현할 뿐이었고, 반대로 ‘스테이지 파이터’는 춤보다는 외모에 기대어 본질을 놓쳤기 때문이다.
‘스맨파’는 ‘스우파’에 비해 새로운 것이 없었다. 자기가 최고라 하는 남성 출연진, 경쟁심에 불타고 독기를 갈고, 큰 에너지로 몸을 쓰는 것은 남성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춤 역시 스우파로 안목이 높아진 대한민국 시청자를 사로잡기에는 크게 신선하지 못했다. 또한 ‘스우파1’에서 댄서 간의 서사가 흥행에 주요 역할을 했기 때문인지, 스맨파도 서사 끼워넣기에 매달렸다. 다만 영 억지스러워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기엔 부족했다. 젠더플립이 빠진 ‘스맨파’의 흥행 실패는 반대로 젠더플립이 ‘스우파’에 얼마나 큰 흥행 요소로 작용했는지 방증했다. ‘스맨파’가 끝난 후 방영한 ‘스우파2’의 최고 시청률이 2.9%라는 점을 볼 때, 단순히 포맷에 대한 지겨움은 원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스테이지 파이터’의 기획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건네들은 말이 있다. 순수 무용에 대한 흥행 허들을 넘기 위한 제작진들의 근거 속에 하나가 댄서들의 외모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주로 귀티 나는 외모와 무용 특성상 선이 아름다운 근육질의 몸이 많이 나온다는 점에서 여성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스테이지 파이터’에는 춤 전체에 대한 장면보다는 외모와 신체 클로즈업, 몇 번이나 반복하는 한 동작의 슬로우 장면(마치 훑으며 감상하라는 듯이)이 주를 이뤘다. 최근 피부과를 다니며 겨드랑이 제모 등 '보여지는 모습에 신경쓰는' 남성들이 많아진 것처럼 ‘스테이지 파이터’와 같이 남성의 몸이 상품화되어 여성에게 판매되는 식으로 전복되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러나 외모보다는 춤 본질에 열광했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시청자의 이해가 하나도 없었던 기획은 흥행 실패의 가장 큰 요소다.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는 자가복제를 벗어나기 위해 스우파2부터 글로벌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현재 방영하는 ‘월드 오브 스우파’는 한국팀이 1개만 있을 정도로 다양한 춤과 다양한 몸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팀의 ‘교수님 들의 조별 과제’로 바이럴을 끌었던 방송 전과 달리, 실제 첫 화를 열어보니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기대를 끌었던 한국팀의 성적 부진과 한국팀 대신 팬덤을 만들어줄 글로벌 팀의 부재 때문이다. (그나마 오사카 팀의 쿄카 가 힘을 내주고 있다) 1화와 2화 시청률은 0.8%~0.9% 수준이다. ‘스우파1’에서는 젠더플립을 더 재밌게 느끼게 하 는 요소로 명대사가 큰 역할을 했다. “잘 봐 언니들의 싸움이다.”, “어딜 뺏겨 못 뺏겨” 등 대사의 향연은 당시 마케 터들이 앞다투어 활용하곤 했다. 하지만 ‘월드 오브 스우파’는 언어의 장벽이 생긴 만큼 ‘말맛’이 감소했다. 이전의 느꼈던 여성들의 도발적인 당당함이 줄어든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월드 오브 스우파’는 댄스씬과 여성 댄스에 대한 시각을 레벨업 해줄 기회다. 시청자들은 “지금껏 우물 안 개구리였다.”라는 허니제이의 말 과 함께 최고인 줄 알았던 한국팀의 부진을 함께 겪어내고 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방식으로 잘난 여성들을 목격하고 있다. 여성의 모습이 다양하게 비치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다. ‘월드 오브 스우파’가 한국 시청자에게 그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