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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운 Mar 16. 2022

외국어로 먹고 살기, 정말 가능할까

어떤 외국어를 선택해야 할까, 실력은 어떻게 늘릴까

텔레비전탑. 베를린 프리드리히 스트라쎄 역(Berlin Friedrichstraße station)에서 박물관 섬(Museumsinsel)으로 가는 방향. 내가 정말 좋아했던 길.


언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봤을 것이다. '지금 당장 혹은 가까운 미래에 내가 좋아하는 외국어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나 역시 안 해본 건 아니다. 지금도 생각 중이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보자면 'Yes'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몇몇의 번역가들을 알게 됐다. 두 명은 일본어 번역가이고 한 명은 영어 번역가다. 수익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고 답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들은 언어로 돈을 벌고 자신의 삶을 돌보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아는 한 번역가는 '공부해둔 일본어가 지금 자신을 먹여 살려주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떤 언어를 선택해야 할까. 


언어의 수만큼 선택지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서 영어. 영어처럼 수요와 공급이 쏟아지는 경우 일자리가 많을 것 같지만 또 경쟁해야 할 작업자도 많을 거다. 유튜브나 인터넷만 봐도 영어에 관한 정보, 학습지, 채널 등이 무한대로 쏟아진다. 강점도 있지만 약점도 많다는 소리다. 상대적으로 희소한 언어의 경우, 정보량이 너무 적어서 배움의 접근성이 떨어질 확률이 높다. 


결국, 어떤 언어든 우리에게 환대적이지 않다.


그래서 나는 깨닫게 됐다. 언어로 먹고살기 위해선 수요, 공급, 희소성, 일자리 등을 따지지 말고 '좋아하는 언어'를 택해야 한다. 언어를 공부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고, 유학을 갈 여력도 없으며, 막대한 돈을 투자하지 않아도 잘할 수 있는 비법은 결국 '좋아함'에 달려 있다. 좋아하면, 오래 할 수 있고, 오래 하면 결국 잘하게 된다. 심지어 실패해도 후회가 없다. 신명 나게 즐기는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2020년 2~3월 독일 베를린에 본격적으로 창궐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B2 수업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언어는 독일어다. 정확하게 말하면, 좋아하는데 실력은 별로 없다. 이런 경우에도 외국어가 나를 먹여 살려줄 수 있을까. 아니, 못 할 것이다. 준비를 해야 한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준비하려고 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브레이크가 걸린다. 특정 언어를 전공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좋아하는 언어를 사실상 끼고 살기 어렵다. 직장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새로운 업무가 끼어들고, 누군가의 제안이 들어오고, 사건이 터지곤 한다. 지옥철에서 언어 공부를 다짐해도 인파 속에 끼인 채로 영혼이 탈곡되거나 잠들어 버리는 게 36살의 현실이다. 집에 오면 거의 넉다운이다. 


'의무'로 했던 외국어 공부들은 앞선 상황들에 모두 항복했다. 영어도, 스페인어도 그랬다. 하지만 '좋아하는' 언어는 힘이 강했다. 지옥철도 이기고 넉다운도 카운트다운시켜버렸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언어는 여기저기를 계속 두드리게 만든다. 너무 좋아하니까 자발적으로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독일어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찾아서 한 마디라도 더 독일어 채팅을 하게 된다.

-페이스북, 구글, 카카오톡 등 인터넷과 핸드폰 언어 설정을 독일어로 바꾼다.

-과거 일할 때 생각 없이 '아무' 문학 작품을 찾았다면, 이젠 굳이 '독일어' 문학을 참고 자료로 찾는다.

-괴테 인스티튜트 시험, 텔크 시험 등 자꾸 내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친다.

-위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교류하며 현재 독일 분위기나 시험 경향 등을 파악하게 된다.

-독일에서 사는 외국인들과 종종 Whatsapp을 이용해 전화 통화를 한다.(독일어로!)

-독일인과 선물 및 편지를 주고받는다. 이 과정에서 오디오로 대화도 할 수 있다.

-다른 곳에 돈 낭비 안 하고 독일어 학원을 다닌다.

-아침 알람을 독일어 라디오로 맞춰 놓는다.

-설거지할 때 독일어 유튜브 채널(Easy German 등)을 틀어 놓는다.

-독일어 팟캐스트를 자주 이용한다. 주위 환경을 독일어로 가득 채운다.

-독일어에 대한 의욕이 좀 떨어질 땐 유튜브 채널(The Sounds of Life)을 켜 둔다. 해당 채널은 고화질 카메라로 베를린 곳곳을 촬영해서, 시청자가 베를린을 거니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휴대폰 메인 창에 독일어 단어 애플리케이션을 깔아 둔다(휴대폰 메인 화면에 다양한 독일어 단어가 등장해서 휴대폰을 많이 보는 이들에겐 자연스럽게 독일어 단어 한 개라도 습득하게 만들어준다)

-독일어 모르는 신랑한테 독일어로 말 걸기(이젠 신랑도 짧은 단어는 따라 한다. 언어의 전염성)

-좋아하는 한국 소설을 독일어 번역본으로 사서 읽기(요즘 유럽권에서 한국 소설과 에세이가 상당한 인기다. 그래서 생각보다 독일어 번역본을 쉽게 사서 읽을 수 있다. 받아 보는데 좀 오래 걸리긴 하지만)

 

나는 좋아하는 언어를 택한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도 못 했다. 위의 행동들은 엄청난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웠지만 현재까지 영어 한마디 못 하는 내가 독일 거주 1년 만에 독일어를 말한다. 독일에 사는 외국인 친구들과 독일어로 비밀 이야기도 하고 수다도 떤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내 마음 상태를 표현하는 기적 같은 경험이었다. 


실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지지 않는다. 성장의 가능성이 여전히 있는 이유다. 가능성들의 축적은 외국어로 먹고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줄 것이다. 


※위의 리스트는 독일이 아니어도 한국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나만의 노하우다.


독일에선 맥주 하나로 세상 다 가진 듯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일상 곳곳에 독일 단어장 비치해 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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