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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익 Aug 26. 2023

R&D 예산삭감 유감

엉망진창 나라살림

R&D(연구개발비)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 33년 만의 일이다. 긴축을 하건 확장재정을 하건, 알앤디 예산 규모를 줄이지 않는 게 역대 정부의 컨센서스였다. 과학기술 경쟁력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윤 대통령이 알앤디 카르텔을 지목하니 3.4조 원이 증발했다. 부정한 행위가 있었다면 규명하고 처벌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연구직 전체를 잠재적 카르텔로 인지하고, 멀쩡히 가동 중이던 슈퍼컴퓨터를 멈추게 만드는 행태는 납득하기 어렵다. 출연연 연구자, 대학원생 등이 입을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 과학기술이 나라의 미래라고 얘기하면서, 연구자들을 내팽겨 치는 위선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과학기술 분야만 삭감한 것은 아니다. 세수 부족에 따라 정부 예산이 전반적으로 축소되었다. 이는 무역수지 적자 같은 경기 상황이 반영된 결과이지만, 작년 7월 정부가 발표한 대규모 감세 정책 영향이 더 크다. 윤석열 정부는 개인별 소득세 과표구간을 조정하고, 증여세 세액공제, 법인세 종부세 완화 등을 추진했다. 주로 고소득자의 세금을 낮추었다. 이렇게 감세만 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세수가 부족해져 나라 살림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다. 결국 정부는 전체 예산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고, 그중에서 ’가장 만만한 부문‘인 알앤디 부문을 도려냈다.


출처: 우석진, 세수 부족 시대에 기재부의 꼼수 재정운용/alookso. 글 하단 링크


알앤디 예산을 삭감해도 재정건전성이 개선되지 않는 건 매한가지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만 한국은행 마이너스 통장에서 100조를끌어다 썼다. 정부는 매년 1141억에 달하는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집권 초반부터 나랏빚 타령하며 재정건전성을 노래한 정부의 결과가 이렇다. 단지 국채비율을 낮게 보이려는 자존심 때문에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침범하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다. 세수 추계가 잘못됐건, 경기가 어렵건, 결과적으로 이 모든 상황은 정권이 재정운용을 잘못한 결과이다.



정부의 재정은 전략적으로 편성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예컨대 윤석열 정부 주장대로 산업경쟁력을 위해선 특정 산업 법인세를 낮춰줄 수도 있다. (우리나라 법인세율은 OECD 평균보다 약간 높다) 또한 전략적인 산업정책 차원에서 정부가 자금을 투입하는 경우도 많다. ‘큰 손‘인 정부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경상수지 흑자-경제성장으로 인한 세수 증대와 경쟁력 강화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이 선상에서 본다면 기술 패권경쟁이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상황에서 알앤디 예산은 함부로 다룰 분야가 아니다. 헛돈 쓰는 것이 아닌 미래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늘리진 못하더라도 욱여넣기 식으로 줄여선 안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이유가 소용없는 까닭은 ‘윤석열 정부는 감세를 지지하고 증세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감세-증세는 선악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윤정부는 ‘부자 감세’를 이념적 도그마로 떠받들고 있다. 재정준칙을 법제화하겠다고 하면서 감세만 고집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 세수를 거두지 않으면서 재정건전성을 지킬 길은 정부의 역할을 줄여 나가는 방법 밖에 없다. 시작은 알앤디 예산이고 끝은 복지 축소로 갈 것이다.


국민에게 무차별 현금 살포하는 정책뿐만 아니라 여론 눈치보며 감세로 일관하는 기조 또한 포퓰리즘이다. 우리나라는 초고령화 초저출산 사회로 진입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복지 수요와 부양비가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점진적)증세‘라는 정공법은 외면하면서 국가 책임을 줄이겠다는 건, “나라는 살아야겠으니 시민들은 알아서 사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초고령화 파고를 감당하려면 지금부터 지속가능한 조세 구조를 위한 합의를 다져가야 한다.



경제 문제를 떠나, 우리가 진정으로 선진국이 되려면 학술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지적 호기심과 탐구가 자극되는 사회에서 혁신이 발생하고 혁신은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한다. 시민들이 학문•예술•교양에 가까울수록, 그 공화국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구성해 나갈 것이라는 추론은 너무나 당연하다. 가끔 경기가 어렵고 흔들려도 문화적 자산이 탄탄한 나라는 쉬이 추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면 ‘그래서 그게 돈이 된다는 거냐’, ‘세금 더 내라는 소리냐’는 말들이 돌아올 것이다. 아, 여기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어쩌면 윤석열정부는 몇몇 연구가 당장 돈이 안 되는데 예산만 타먹는다고 카르텔 취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사실은 아이들이 더 이상 과학자를 꿈꾸지 않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호는 아이도, 미래도 없는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 각자도생의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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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진, ‘세수 부족 시대에 기재부의 꼼수 재정운용’ , 얼룩소 alookso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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