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빈터베르크, <어나더라운드>
과유불급. 술에 대한 우리의 원칙을 짧게 말해야 한다면 이 사자성어 하나로 가능하다. 영화 <어나더라운드>도 과유불급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술에 관한 독특한 실험을 보여준다. 작중 인물들은 "인간의 혈중 알코올 수치를 0.05% 로 유지하면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란 가설을 실험한다. 하루하루가 지루했던 중년 교사들에게 실험은 활력을 불어다 준다.
알코올 농도가 조금씩 올라가자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주인공 니콜라이는 술기운으로 끌어올린 에너지로 가족관계를 회복하려 하지만 결국에는 실패하고 만다. 심지어 일원 중 한 사람은 알코올 중독을 겪다가 생을 마감한다. 영화는 ‘이 영화 알코올 중독을 장려하는 거 아닌가’란 걱정이 들 때 쯤, ‘술은 적당히 마셔야 한다'는 엄중한 교훈을 되새겨준다.
그러나 이 영화가 ‘음주에 관한 뻔한 이야기‘만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어나더그라운드는 ’공허하고 우울한 삶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관한 환유를 담은 영화다.
영화 속 인물들은 생의 어느 단계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 영화 초반에 묘사되는 이들의 영혼 빠진 모습은, 영화의 시작과 함께 영사되는 젊은이들의 술 게임과 대조된다. 일에 대한 회의, 가족 관계에 대한 고민, 젊은 시절에 대한 향수... 소위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남성들이다. 이들은 위기의 돌파구로 ‘술’이라은 묘약을 찾았다. 그러나 ‘마약은 있을지 몰라도 묘약은 결코 없는 삶’이다.
영화 엔딩 시퀀스에서, 니콜라이(매즈 미켈슨 역)는 춤을 춘다. 매즈 미켈슨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오묘한 감정의 춤사위였다. 고등학교 졸업 파티 사이에서 신들린 듯 춤추는 니콜라이의 심정은 무엇이었을까? 친구 톰뮈의 죽음을 추모하는 마음, 자신을 휩쓸고 간 위기의 파고를 돌아보는 마음.. 그 모든 것들이 춤에 담겨 있다. 힘겨운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훌훌 털어내는 듯한 일종 해방 의식 또는 제례의식.
니체는 세계를 가상적인 밝은 표면과 어두운 심연으로 구분했다. 그는 우리 인간이 혼란과 무질서가 적나라한 세계에 살아가고 있음에도, 어두운 심연을 감추는 베일에 의해 그를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봤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극단적인 상황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진실을 들여다보지 않으며 무지하게 살아가는 환상의 삶’이고, 또 다른 극단은 ‘환상이 부재하여 심연의 늪에 빠져든 삶’이다.
니체는 두 가지 세계 사이의 균형을 중시했고 이를 ‘춤추는 삶'으로 비유했다. '춤추는 자'는 어둡고 고통스러운 삶의 심연을 이야기하는 비극적 인식을 갖추면서도 그것을 극복하는 삶의 양식을 찾은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매즈 미켈슨의 그 마지막 춤은 니체적이다. 삶이란 위태롭지만 즐거운 외줄 타기와 같은 것이다.
우리 삶은 매 순간마다의 불안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 불안은 지나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젊은 사람은 늙고, 늙으면 죽게 된다'는 진리는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그래서 (영화 속 언급되기도 한)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듯, 불안이란 마주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마주함으로써 돌파해 나가야 한다.
진짜 위기는 당면한 불안 그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이 없을 때 발생한다. 우리는 저마다 의연히 춤추는 방법을 배우고 찾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될 것이고, 다음 라운드는 이어질 테니 말이다. 어쩌겠는가. 그래도 살아야지. 이왕이면 잘, 즐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