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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루 한옥언니 Nov 13. 2021

나의 인생 2모작
이리루 한옥 게스트 하우스

인생 터닝포인트가 된  어릴 적 꿈 한옥과의 운명적인 만남..


 '아빠가 이런 예쁜 집을 지어줄게'


10살 남짓 어린 소녀에게  아빠가 만들어 보여줬던 종이로 만든  2층 양옥집

콩닥콩닥 두근거리는 소녀의 설렘....

내 어릴 적 꿈의 시작점이었다.

 그러나 현실에 타협하여 포기한 아빠의 꿈은  박공지붕에 다락방이 있던 

2층 양옥집에서 연립주택으로 대체되었고 

실망한 어린 소녀는 가슴속으로 몇 번이고

  

 '나는 커서 꼭 하얀 2층 집을 지어서 살 거야'라고 되뇌곤 했다.


  소녀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고  소녀의 꿈은 현실에 희석되어 잊혀지고 있었다.


 작은 사업 성공으로 제법 넓은 아파트에서 꿈꾸던 살림을 꾸리게 되었지만 닭장 같은 아파트 

속에서 쳇바퀴 돌듯 이어지는 삶의 무게는 이제 중년에 접어든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틈만 나면 여행 예약 사이트를 뒤지고 집시 유랑민처럼 공항을  제 집 드나들 듯 드나들었다

호화로운 호텔에서의 아늑함은 나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동기 부여가 되기 충분했다.

럭셔리 휴양 여행에서 크루즈까지 20여 개국을 헤매고 다녔지만 어느새인가 여행 후 번번이 

찾아오는 번아웃 증상은 오히려 나의 일상을 좀 파먹고 있었다.


 '행복, 쾌락, 흥분, 호기심, Enjoy'로만 가득 찬 나의 마음은 서서히 지쳐가고 여행처럼 흥미롭고 첫 경험의 설렘이나 뜻밖의 즐거움이 없는 평온한 일상의 삶은 '불행, 지루함, 초조함으로 느껴졌다.

 더 이상 여행이 나의 탈출구가 되지는 못하였기에 이번에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캠핑을 시작했다. 


 뭐든지 처음에는 서툴지만 설레는 법 


내 주특기인 요리와 커피와 차를 캠퍼들과 나누며 때리는 불멍은 일상의 시름을 달래기에 최적의 취미 생활이었다.


 틈만 나면 들로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나의 자연친화적 삶은 들 고양이처럼 아파트라는 구조에 머무르지 못하고 탈출만을 감행할 뿐이었다.


  

단독 주택으로의 열망이 다시 타오르고 연희동의 구옥들을 보러 다녔지만 재테크가 아닌 내가 꿈꾸던 보금자리를 향한 까다로운 입맛에 맞는 집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층 아파트의 층간 소음은 내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기에 이르렀고 흐지부지 미뤄지고 있던 은평 뉴타운의 단독택지 분양을 검색한 순간 '은평 한옥마을 택지 분양'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연희동에서는 마땅한 택지를 찾을 수 없었기에  북한산 앞의 전경이라는 보너스를 누리며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신선한 공기가 매력이던 은평 뉴타운이 제2지망 후보가 되어 코앞에 북한산이 펼쳐지는 아파트에 둥지를 틀고 있던 터였다.


 한옥은 언제나 나의 동경의 집이었다. 


 

 대학 때부터  감나무가 있는 정원이 딸린 인사동의 미술관 찻집을 드나들었는데 내 로망을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었다. 

 느리게 내려지는 차향과 골동품으로 채워진 세월을 머금은 멋스러운 목구조의 공간을 나는 사랑했다. 나의 일본인 지인들이나 거래처 바이어들도 그곳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나는 그 불편하지만 멋스러운 한옥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한옥집이 즐비하던 삼청동과 가회동 또한  나에게는 서울의 마지막 남은 오아시스 같은 마을이었다. 불편함을 감수한 몇몇 특권층 진정한 서울 멋쟁이들만 살 것 같은 그림의 떡, 오르지 못할 산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틈만 나면 찾아가던 지리산에서 느낀 한옥의 나무 향기와 구들방의 따스함 또한 일상에 찌든 나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듯한 이상한 힘이 느껴졌다


 한옥 예찬론자가 된 내게  이 한옥마을 광고는 불현듯 가슴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바로 다음 날 땅 좀 볼 줄 아시는 집을 두 채나 손수 지었던 엄마를 모시고 은평 한옥마을 택지를 찾았다.  

 마침 한옥 시공 홍보 부스를 운영하던 도편수에게 부지를 추천해 달라고 하니 북한산과 공원 앞에 위치한 남향을 바라보는 기다란 삼각 원뿔 모양의 땅을 보여주었는데 한눈에 이게 바로 내 땅이라는 촉이 왔다. 


 10월 한글날 전날이었는데 어찌나 양지바른 지 눈이 부실 정도였고 조용한 집을 선호하는 내게 길 안쪽의 코너라는 입지는 바로 입질이 오는 위치였다. 

땅 모양도 정사각이나 직사각은 아니지만 길쭉한 형태라 주택 설계를 뽑기도 안성맞춤인 자리였다. 

다음 날 남편에게 땅을 보여주니 자리는 괜찮지만 여기 한옥마을이 잘 조성이 되겠냐며 반대하는 것이 아닌가?


 30년 전 아빠처럼 엄마의 반대로 현실과 타협할 순 없었다. 정 별로면 주택 연금이라도 받으면 되지 않겠느냐면서  남편을 설득하고 다음 날 바로 계약을 감행하였다. 

사실 추첨 분양이라고 해서 먼저 계약금을 입금시키고 "저는 이 땅이 아니면 계약 안 합니다"라고 신청을 하고 왔었다.


 알고 보니 당시 2013년은  부동산 경기가 바닥이었고 서울의 변두리였던 은평 뉴타운의 한옥마을이라니 많은 사람들이 거기가 그게 될까?라고 고개를 갸우뚱할 만큼 서울에서는 유래가 없던 

새로운 한옥마을 조성 사업이었기에  하도 인기가 없어서 선착순 분양 비슷하게 되어있었다. 

분양받은 후 안 사실인데 여러 사람이 이 자리를 노렸지만 내가 입금을 빨리하여 낙찰되었던 것이다. 


 자고로 집터는 인연이 되지 않고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내 것이 되지 못한다고 하는데 마치 홈쇼핑에서 충동구매하듯 모든 것이 쉽게 술 술 풀려갔다


 나에게 이 땅을 주신 것은 하늘이 내려주신 천운이었고 이 은평 한옥마을과 함께 나의 인생은 새로운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어릴 적 소녀의 꿈 언덕 위 하얀 2층 집을 이룰 토대가 마련된 순간이었다.

그것도 2층 양옥보다 더 매력 있는 한옥이라니~


 열망과 허세의 상징인  패션 트렌드를 쫓으며 액세서리 관련 사업을 하던 나름 패피였던 내가 

느림, 절제, 여백의 삶을 향한 전환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차경이 아름다운 은평 한옥마을 이리루 한옥 부틱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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