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독 논문의 게재가능을 받고
올해는 학술대회에서 두 번의 발표를 하고, 그중 하나를 단독으로 투고하여 게재가능을 받았다. 연구 논문이란 뭘까. 이 논문을 작성하고 투고하고 수정하면서 끝까지 고민했던 질문이었다. 언젠가 들었던 국내 박사과정생 대상 강의에서 해외 박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해외 박사들이 가진 방법론이라는 힘을 흡수하면서도 그것을 유려한 모국어로 풀어내는 또 다른 힘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었다. 그 이후로 방법론이라는 것은 항상 나의 열등감이었다.
그래서 나는 통계, 질적연구 방법, 텍스트마이닝, 인공지능과 같이 그때그때 핫하다는 교육연구방법론 강의를 마구 찾아다녔다. 결국 어떤 방법론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방법론을 활용한 연구를 직접 진행해 보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되풀이되었으나, 내가 관심 있는 주제들은 당최 이 사회과학의 방법론에 맞아떨어지지가 않았다.
게재 예정인 논문은 예능 프로그램 <고등래퍼>의 ‘교과서 랩 대결’에서 나타난 교과서 시의 전유 양상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문학교육에의 시사점을 도출하는 논문이었다. 이 논문을 처음 학술대회 발표문으로 작성할 때만 해도, 나는 내용분석과 주제분석의 방법론을 따라 ‘객관적’이고 ‘신뢰로운’ 분석임을 강조하려 했다. 그런데 분석을 하면 할수록 텍스트의 의미는 독자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에서 어차피 모든 텍스트 분석은 객관적일 수 없고,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닌 것만 같았다. 토론문에서는 그래서 전유에 대한 나의 주관이 무엇이냐 묻는 질문 두 개와 분석의 타당도에 대한 질문 하나를 받았다.
투고할 논문으로 재구성하면서, 나는 과감하게 분석을 늘어뜨렸던 부분들과 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던 부분들을 모두 삭제했다. 반대로 내가 텍스트들로부터 받았던 인상들을 정리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했다. 오히려 원고가 더 길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게재가능이 떴다. 그럼에도 심사의견에서는 나의 생각을 더 요구했다. 연구자의 해석에 더하여 어떤 전유가 좋은 전유인지 추가적인 해석을 요구하거나, 한편에서는 전유의 문제점은 없는지 검토해 보라는 식이었다.
그러니까 요컨대 학계의 선배 선생님들은 항상 나의 의견과 주장을 물었고, 그 논리를 풀어가는 나의 글쓰기에 주목했다. 방법론에 대한 열등감 대신에 논증과 글쓰기, 그리고 내 생각을 견고하게 만들어나가는 일이 나에게 더 필요했던 것이다. 이처럼 나의 직관을 언어화하고, 그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논리를 쌓아가는 것은 철학과 인문학의 주된 방법론이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애매하게 걸터앉아 있는 문학교육이라는 분야에서 내가 할 일은 나의 열등감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장점, 모국어를 더 활용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나는 꽤 직관적이다. 결론에 빠르게 도달하고, 비약이 많고, 현상을 마주하면 그 본질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근거 없이 떠오른다. 결국 지금 내게 연구란 놈은 나의 이 직관들을 견고한 언어로 쌓아나가는 일이리라. 그런데 아직은 그것이 견고하지 못해서, 이 논문은 결국 46장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이 되어버렸다. 추가 원고비를 교육비로 내기로 했다.
아, 그래도 연구에 대해 내 직관을 앞세워 생각하니 직업 만족도가 최상이다. 내가 일상에서 생각한 것들을 정당화하고 설득해 나가는 작업들. 박사논문 주제를 새롭게 잡았다. 나 같은 직관을 자신의 언어로 쌓아나간 영미 문학의 현대 이론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아직도 90년대처럼 박사논문을 쓰는 사람도 있네 하며 신기해하겠지. (여기서 신기는 긍정적인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우리가 문학과 문학교육의 인문학적인 속성을 완전히 버릴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