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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롱이 Jan 16. 2024

혼자 간 해외여행, 인생을 마주하고 왔습니다.

혼자 해외여행을 가는 이유가 뭘까? 나는 여행책들을 읽으며, '내 인생의 방향성을 찾기 위해서', '나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서' 같은 이유들이 종종 부풀려진 환상이란 생각을 해왔다. 여행 하나로 나에 대해 뭘 얼마나 알겠어. 이번에 홍콩에 혼자 간 이유는 직장 스트레스, 이별 스트레스였다. 혼자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 있지 않은가. 그런 도피성으로 떠난 여행에서, 나는 위의 구절들에 동의하는 사람이 되었다. 거창한 방법을 통해서도 아니었고, 그저 혼자 있으니 생각이 많아져서, 스며들듯 체감한 것이다.


첫 글로 2만보 정도 걷고 힘들어서 잠시 스타벅스에 쉬어가는, 어느 평범한 순간에 쓴 글을 공유하고자 한다.




홍콩 여행 와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살 한살 먹어가니 내 마음, 내 신체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보다. 오래 걸으면 체력적으로 다음날 컨디션에도 영향을 준다. 이건 요즘 술마실 때도 느끼긴 한다. 숙취 강도가 다르고, 수면의 질도 매우 다르고 확실히 피곤하다. 여행 와서 이틀 연속으로 2만보를 걷고 나니, 너무 힘들어서 더이상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내 마음은 빨리 여기저기 구경하고 싶은데, 체력이 나를 가로막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느꼈다.


심적으로도 다르다. 점점 안정적인 거, 안전한 거, 늘 하던 패턴을 추구하게 된다. 내가 지금 홍콩 예쁜 카페가 아닌 스벅에 와서 자몽 허니 블랙티를 시키고 앉아있는 것만 해도 그렇다. 숙소 예약도 실패하지 않으려 꼼꼼히 알아보고, 맛집도 블로그 보고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곳으로 간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무언가보단, 안정적인 선택을 추구할 일이 많아지고 있었고, 단편적으로 체감하게 되었다.


이렇듯 몸과 마음이 늙어가며 내 선택들에 영향을 준다. 수지타산과 리스크를 따지게 된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서 얻는것과 잃는 것들. 얻는 것이 잃는 것을 감내할 가치가 있는 일인지. 선택에 계산이 들어간다. 이번에 혼자 홍콩 여행을 오고, 피크트램이나 제니 쿠키 같은 남들 가는 곳에 가지 않았다. 대신 미술관을 가고, 다른 것을 먹었다. 여행 기간이 짧기 때문에 하나를 하게 됨으로서 다른 선택지는 포기해야 했다. 내가 내키는 결정들을 하면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왜 이런 쾌감이 들었지? 나는 내 인생에 포기못한 결정들이 떠올랐다. 내키진 않지만 남들이 하니까 놓지 못한 결정들.


퇴사를 쉽게 할 수 없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퇴사를 해도 안정적으로 지낼 만큼 나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직장을 그만두면 경제적인 건 어떡할 거고, 면접때 왜 쉬었냐고 하면... 여기저기 들리는 걱정어린 조언들에 관둔것은 직장이 아닌 '내 스스로 선택하기' 였던 것이다.


나는 참 주저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홍콩에서는 분명 구글지도를 따라 가는데, 그 자리에 뭐가 없을 때가 종종 있었다. 좀더 가서 확인을 할 것이냐, 뒤로 돌아서 다른 길로 가볼 것이냐 결정을 하게 되는데, 이때 더 가지 않고 주저하고 다른 길로 갔다가, 결국 좀더 갔으면 있었던 것들이 많았다. 그럴때마다 너무 황당했다. 그냥 몇발자국만 더 갔으면 될 것을 굳이 먼 길을 돌았을까. 이 태도 자체가 내가 내 인생을 대하는 태도 같기도 했다. 그냥 조금만 더 용기내고 다가가면 원하는 것들을 얻었을 수도 있는데, 그 몇발자국의 두려움 때문에 돌고 돌아서 살고 있는 거 같다. 이 태도를 고치고 싶은데, 내 머리로는 안 된다.






혼자 여행 하는 것은 인생과도 같다. 혼자서 의식주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고, 돈을 내고 계약하는 행위를 해야 한다. 어디를 갈 것이고, 내 돈과 체력과 시간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내 돈과 체력은 한정적이기에, 자의적으로 포기하는 선택도 한다. 여행 기간은 참 짧기 때문에 매순간의 선택이 중요해진다. 2만보 정도 걸으니 더이상 못 걷겠다. 이럴땐 의지와 다르게 체력에 발묶인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줄 알았는데 홍콩 여행 중에 머리와 다르게 몸에 의해 멈추는 선택도 하게 되었다. 내 여행 자체를 망칠 수는 없으니까, 받아들여야지. 그 모든 선택을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최선인 점도 참 인생과 닮았다.


나는 내 인생에서 스스로 가진 돈, 시간, 체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 하고 있진 않은가. 그것들을 남발하거나, 쉬어갈 때, 아껴야 할 때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혼자 하는 여행은 감각적이고, 자유롭고, 독립적이다. 내 모든 선택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도 온전히 혼자 결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모든게 나를 위한 선택이니 싫은 소리 할 필요도 없다. 또한 어떤 풍경을 보더라도 느끼고 싶은 대로. 내 기분 자체도 그대로 느끼게 된다. 여행의 모든 순간들이 남들에 영향을 받지 않고, 100% 내 감각으로 받아들여진다. 분명 누군가 함께 갔으면, "에이, 여기 별로네." 하는 말에 '그런가...?' 하고 영향을 받았을 게 뻔한 곳에서도, 혼자 있을 땐 의미를 부여하며 만끽할 수 있었다.


모든것이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린 삶을 경험한 것은, 내 인생 그 어떤것도 온전히 내가 느끼는 대로 받아들인 적이 있었는지를 다시금 회상하게 했다. 남들이 가는 길, 남들이 하는 행동, 이렇게 하면 성공하고 저렇게 하면 힘들고. 이런 것들에 너무 얽매여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내 인생 자체도 100% 내 생각으로 살지 못하는 현 삶에서 이런 3박 4일의 감각적인 삶이 너무나도 소중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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