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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박자 Feb 09. 2024

해가 진다

ㅡ우리의 태양, 할머님

이번엔 시할머님이시다.

정확히 말하면 시외할머님?

18년전 너무 일찍 돌아가신 남편 어머니,의 어머니.


12~3여년전 결혼 앞두고 인사를 드렸을 때

그때는 정말 정정하셨다. 세어보니 80 초반이셨구나.

그래도 늘 소식하고 기도하며 지혜의 빛을 잃지 않고 살아오신 덕분인지 끽해야 70대쯤 되신 걸로 여겼던 것 같다.


남편의 아기 시절,

출산휴가도 없이 복직하셨던 남편 어머니를 대신해 핏덩이 어린 것을 안쓰러워하며 대신 육아해주셨다던 분.


우리 애들 애기때부터 한번씩 놀러가면

마치 우리 친정엄마처럼, 돌아가신 남편어머니처럼...

다정하고 살갑게 대해주시며 정갈한 밥 한끼씩 꼭 직접 챙겨주시던 분.


우리 션이 어릴 때 할머니방을 파헤쳐 찾아낸 홍삼캔디 하나를 들고 나와 눈을 반짝이니 귀엽다며 옛다 봉지를 까주시고 그 삼삼한 맛에 눈뜨게 해주신 분..ㅎㅎ


그 할머님이,

우리의 태양이

지고 계시다.


이제는 아흔 중반에 가까우신 나이.

오랫동안 함께한 각종 지병들로

쇠약해져가는 장기들.. 떨어져가는 수치들..


오늘 명절 인사차 잠시 찾아뵙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한강대교 위

저 멀리 마천루 사이로 져가는 해.

유난히도 해를 바라보며,

이제 우리의 태양도 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엄마, 해가 엄청 크다."

"그러게 오늘 해가 유독 크네."

"근데 해는 원래 빨리 지는거야? 밑으로 쭉쭉 빨리 내려가네?"

"낮에 하늘에 떠있느라 힘들었나봐. 빨리 쉬고 싶나보다."

"아! 하늘에 밝게 떠있느라 힘들었구나?"

"그래서 그 덕분에 세상에 생명도 자라고 너희 자란거야. 해가 빛이 되고 온기를 준 덕분에."

"엄마 근데 그럼 해는 사라진거야?"

"아니 지구가 자전을 하니까 태양은 지구의 다른 지역을...(아 그럼 다른 나라에... 쏼라쏼라).."

 

(어쩔 수 없는 T)



도란도란 형과 얘기하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며

둘째는 잠에 빠졌고,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전방만 주시했다.

지는 해를 바라보기 힘들테니까.



올 봄에는 남편 사촌동생의 결혼식이 있다고 한다.

우리의 태양이 -남편과 마찬가지로- 맞벌이하는 며느리 대신 도맡아 키워내신 그 동생이.



한 세월이 지고

한 세월이 피어오른다.


자연의 순리 앞에서

나는 오늘도 고개를 숙인다.



* 저희와도 적잖은 추억이 쌓일만큼

하늘에 오래 떠계셔주셔서 감사했어요 할머님.

덕분에 저희가 자랄 수 있었어요.


늘 저희더러 아프지 말고 건강해라 하셨죠.

할머님도 더는 아프지 마시고 하늘이 부르실 때 편히 쉬러 가세요..


그리울 테지만, 슬플 테지만,

할머님이 주신 온기로

아이들과 남편과 따뜻하게 살다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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