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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박자 Feb 10. 2024

예쁘게 말할 수 있어(1)

ㅡ둘째 Jay 출산 이야기

우리 둘째는 19년생, 한국나이로는 6세다.

이제 공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이 아이는 나이를 빨리 먹형님이 되고 싶어해서, 우리집에서 나이를 세는 기준은 항상 한국나이다.



만 37주 되는 날, 마지막 정기검진을 갔다가

뭐랬지, 태아가사?(태아가 거의 죽어간다는 뜻)

이름도 끔찍한 그 진단 하에

갑자기 올스탑. 응급수술이 외쳐졌다.


평생 못잊을 그때 그 시간들.


첫째 땐 매 검진마다 남편이 함께 했지만, 이젠 경산(출산경력 있음)이라 나 혼자 마음 편히 검진받으러 가서, 늘 하던대로 조용히 태동검사실에 누워있었는데_

갑자기 삐삐삐삐 경고음이 뜨더니 간호사가 달려오고, 놀란 눈으로 급한 목소리로 여기저기 호출을 하고, 의사가 바로 달려오고,

지금 즉시 수술해서 아기를 꺼내야 한다며 빨리 보호자를 부르라 하고, 수술복으로 갈아입게 하고,

응급 출산대기실? 인지 뭔지로 옮겨져 수많은 의료진이 둘러싼 수술대에 누워  온갖 기계를 몸에 붙이고,

그렇게 갑자기 수술대기에 들어갔다.


마지막 정기검진에서

태동검사를 하다 말고.



정말 위급한 상황이었는지

내 곁엔 의료진이 돌아가며 계속 붙어있었다.


아니 슨생님, 이게 무슨 소리요. 태아가사라니.

그게 대체 뭔가요. 집에서 아무 문제 없었는데요,

그저 가진통으로 한번씩 배가 땡긴 것 밖에 없었는데요.


**태아가사. 영어로 fetal distress

뱃속의 태아가 호흡은 못하지만 심장 박동은 있는 상태.


의료진의 설명 왈,

태아의 심장박동이 갑자기 100 이하로 뚝 뚝 떨어진다는 것.

그게 이번 태동검사 중에 잡혔는데, 100 이하까지 뚝 떨어지는 싸인은 태아가사의 싸인이기에, 다 자란 태아도 호흡을 못하면 갑자기 사산될 수 있어서 즉시 수술해서 꺼내는게 원칙이라고.. 상황이라고...


그때 담당의가 오셨다.

단호한 말투로

보호자 오셨나요. 안오셨어도 본인 싸인하시고 바로 수술 들어갑니다.


에? 저 점심밥 먹고 왔는데요. 수술은 공복에 해야하지 않나요. 토하면 어떡하죠..

(점심 맛나게 먹고 정기검진 간지 1시간여 만에 어안이 벙벙 할 정도로 응급상태의 수술대기 처지가 됨)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바로 수술해서 애기 꺼내야해요.


아.. 정말 그렇게 급한가요? 저는 배 이제 뭉치지도 않고 괜찮은 것 같은데요.. 지금은 애기 심장박동도 괜찮은거 같은데.. 아닌가요?


(화난 얼굴로)

애기가 사산될 수 있다구요! 심장박동이 100 이하로 뚝 떨어진 건 단 한 번으로도 응급상황이에요! 그렇게 해서 다 자란 아기가 뱃속에서 죽는 일들이 있는 겁니다.

지금 수술실 자리 만들고 있으니 자리 나는대로 바로 수술해야 합니다. 보호자 빨리 부르세요!



그 순간

내 인생 최고난도의 시험에 드는 순간이었다.


아기 아직 만 37주 밖에 안됐는데, 그렇잖아도 태반이 둥게 공처럼 뭉쳐진 기형태반이라 영양을 잘 못받아서 아기가 작은데, 아직 덜 컸는데, 한 주만 아니 하루이틀만 더 버틸 수는 없을까. 엄마 뱃속에서의 한 주가 태어나서 한 달이라는데.. 이 아이가 너무 미숙하게 태어나 고생하면 어쩌지. 하는 시험의 순간.


내가 살아오며 경험한 모든 이성과 지성과 감성과 미래와 과거와 현재가 한 곳에 모여들며 이렇게 말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여기서 수술대기하면서 심장박동이 안정되는지 아닌지 조금만 더 지켜보게 해주세요. 또 떨어지면 그땐 바로 수술 받을게요.



사실 선택권은 없었다. 의사쌤이 태아사산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하실 정도로 정말 응급이었기에.


하지만 (태아는 태중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게, 완전하게 성장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그게 출산 후의 성장발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기에..) 아기를 뱃 속에서 하루라도 더 키워서 낳고 싶었다.


물론 아기의 심박이 계속 낮았다면 즉시 수술실로 향했겠지만, 의학적으로도 아기의 심장박동은 단 한번의 100 이하를 보인 후 안정상태 였기에,

본능적으로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 말했다.


그렇게 두어시간쯤 지났을까.

그 사이 연락을 받은 남편이 달려와 곁을 지키고 있었고, 친정부모님께 만약의 경우 갑자기 한동안 못 만날 첫째를 챙겨달라는 연락을 드렸고,

외출하며 하고 간 화장을 못 지워 급한대로 물과 비누로 문지른 바람에 팬더가 된 상태에서


두 번째 100 이하가 떴다.


그 즉시 내 곁에 상주하던 의료진 소리를 높여 무슨 코드 어쩌고를 외치더니, 달려온 의료진들과 함께 내 수술대를 빠르게 밀고 수술실로 향했다.


무서웠다.

정말 이 아기가 잘못되는 건가.

아까 의사쌤 말 듣고 바로 수술했어야 했나.


응급제왕술이라 하반신만 마취한다고 했다.

(**마무리 단계에 풀렸다.. 끄억)

바로 배에 메스가 닿았다.


잠시 후 아기 울음소리가 작게 들렸다.

작았다. 울음이 작았다. 안돼 나는 좌절되어 울었다.

그때 의료진이 아기에게 뭔가 처치를 했고

아기가 숨 넘어가듯 크게 호흡하며 우렁차게 울었다.

나는 그제야 안도하여 또 울었다.


오후 5시33분. 아들입니다.


태아가사를 보였기에 태아중환자실로 간다고 했다.

다행인지 별로 안다행인지 정확히 만 37주여서 미숙아는 아니라고 했다.

(**만 37주부터 출산 가능한 만삭이라고..)



후처치가 시작됐다.

첫째도 자연분만(진진통) 열두어시간 만에 난산 판정을 받고, 응급제왕술로 낳았기 때문일까

자궁.장기유착이 심해 떼어내기 어려운 상태라며 후처치가 길어졌다.

그렇게.. 나는 개복상태로 수술대에 누워 고개만 옆으로 돌린 채, 소화되다 만 점심밥을 다 토해냈고, 길어진 후처치에 마취가 풀리기 시작해.. 마무리 단계에 복근과 뱃가죽을 꼬매는 통증은 고스란히 느껴야했다.(끄억)



**

남자들은 어디가서 군대 얘기 좀 하지 말라던데..

반대로 여자들은 어디가서 출산 얘기 좀 하지 말라하고..ㅎㅎ


근데 솔직히 정말 살면서 그런 고난도의 고난은 처음이었기에 어디가서 내 출산 얘기를 하면 (지금까지는) 모든 엄마들이 무릎을 꿇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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