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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연희 Jan 23. 2024

헬레네 세르프벡_피고 지는 존재의 정수

 

헬레네 세르프벡, <자화상>, 1880-4년, 종이에 연필, 13 x 12.5cm  /1945년, 종이에 목탄


몇 년 전 한 화가의 회고전에 출품된 작은 두 자화상 드로잉이다. 귀여운 올림머리에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자(거울)를 바라보는 소녀는 어린 꽃망울처럼 사랑스럽다. 그 옆에 몇 개의 선으로 완성된 얼굴은 화가가 83세로 죽기 전에 그린 마지막 자화상이다. 기울어진 머리에 초점을 잃은 두 눈, 주름진 입가까지, 뭉뚱그린 그 형상에서 기력을 다한 노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날렵한 연필 드로잉에선 소녀의 활기가, 뭉툭하고 거친 목탄선에서는 노인의 쇠잔이 전해진다.   


지금의 나는 이 두 인생 단계를 면밀하게 마주하는 중간에 서 있다. 십 대의 딸들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쑥쑥 커가고, 팔십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풍성했던 활기와 총기를 잃어가며 점점 작아지신다. 그래서인지 이 화가가 죽기 직전까지 틈틈이 그려온 자화상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특히 소멸해 가는 존재를 집중적으로 기록한 말년의 자화상은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긴다. 

      



헬레네 세르프벡, <자화상>, 1884-5년, 캔버스에 유채, 50 x 41cm, 아테네움 미술관, 헬싱키

헬레네 세르프벡(Helene Schjerfbeck, 1862-1946)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와 동시대를 살았던 핀란드 헬싱키 태생의 화가다. 안타깝게도 네 살 때 계단에서 넘어져 엉덩이뼈가 부서진 사고로 그녀는 평생 절뚝거렸다. 아이는 이때 아버지가 쥐어준 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뛰어난 실력으로 11살에 핀란드 예술협회 드로잉 학교에 입학했다. 몇 년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집안 사정이 나빠졌지만, 주변의 후원으로 미술 공부를 계속 이어나갔다. 세르프벡은 1879년 예술협회에서 주최한 대회에서 상을 받아 당시 미술의 중심지인 파리로 향한다.


파리에서 세르프벡은 화실에서의 가르침보다 미술관과 전시에서 다양한 자극을 받았다. 특히 마네와 세잔, 베르트 모리조 등의 작품에 경탄하며 자연주의와 인상주의를 흡수했다. 청년 시절 세르프벡은 프랑스 무동과 퐁타벤, 이탈리아 피에솔레, 영국 세인트 아이브스 등의 예술가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작업하며 성장해 나간다. 1883년 그녀는 퐁타벤에서 만난 화가와 약혼했지만 아이를 낳기에 허약하다는 이유로 파혼당하며 아픔을 겪었다. 그럼에도 다음 해의 자화상에서 22살의 화가는 담담하고 차분하게 자신을 마주한다.   



헬레네 세르프벡, <회복기>, 1888년, 캔버스에 유채, 82 x 107cm, 아테네움, 헬싱키


세르프벡이 세인트 아이브스에서 그린 <회복기>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그림 중에 하나다. 의자에 놓인 베개와 이불을 두른 모습에서 아이가 아픈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아이는 컵에 꽂힌 나뭇가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뭉크를 비롯해 당대 화가들이 아픈 아이를 소재로 다루곤 했는데, 세르프벡의 그림은 막 돋아난 나뭇잎처럼 활기를 되찾아가는 회복을 주제로 한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엉성한 붓질이 너무 모던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림이 전하는 희망을 사람들이 좋아했고, 결국 핀란드 예술협회에서 구매했다.


헬레나 세르프벡, <자화상>, 1895년, 캔버스에 유채, 38 x 31cm, 에케네스 미술관, 핀란드 에케네스

1890년대 세르프벡은 어렸을 때 다니던 핀란드 드로잉 학교에서 그림을 가르쳤다. 미술관에서는 실력이 뛰어난 그녀에게 벨라스케스, 한스 홀바인, 엘 그레코 등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는 작업을 의뢰했다. 세르프벡은 경제적으로는 안정되었지만 정작 자기 작업은 줄게 되었다. 이때의 작은 자화상을 보면 단아하고 성숙한 삼십 대 화가를 만날 수 있다. 어떤 단서도 없는 배경에 별 꾸밈없는 그녀는 충분히 아름답다. 고개를 돌려 관람자(자신)를 바라보는 단단한 눈빛과 고요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자화상이다.


1901년에 큰 병을 앓으며 세르프벡은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요양지로 유명한 휘빈캐(Hyvinkää)로 이사한다. 내향적인 화가는 외딴 마을에서 어머니를 돌보며 작업에 집중했다. 독서와 자수 등 취미생활도 하고 패션 잡지를 탐독하며 파리에서 주문한 옷을 입고 작업하는 등 은둔의 삶을 즐겼다. 세르프벡은 주변 사람들과 시골 풍경, 정물을 그리면서 당시의 모더니즘을 실험하며 자기의 언어를 찾아 나간다.



헬레네 세르프벡, <나의 어머니>, 1909년, 캔버스에 유채, 81 x 83.5 cm/  휘슬러, <회색과 검은색의 조화, 1번>, 1871년, 144.3 x 162.3cm


<나의 어머니>에서 자연주의를 벗어난 세르프벡의 새로운 언어를 만날 수 있다. 화가는 의자에 앉은 어머니의 옆모습을 그리면서 세밀하게 묘사하지 않았다. 벽과 바닥의 색면을 배경으로 어머니의 검은 옷과 우윳빛 의자 등 단순화된 형태와 색면으로 화면을 구성했다. 이 작품은 소재나 표현이 유사한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1834~1903)의 유명한 작품 <회색과 검은색의 조화, 제1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휘슬러 또한 흰색과 회색, 검은색의 형태와 배치가 자아내는 조화의 아름다움에 집중했다. 그의 사실적인 묘사와 다르게 세르프벡은 명암과 원근을 최소화한 색면을 활용했다. 세르프벡의 초상화는 이처럼 옆모습, 뒷모습이거나 화가와 교감 없이 시선을 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특징과 절제된 색채는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덴마크의 화가 빌헬름 함메르쇠이(Vilhelm Hammershøi, 1864~1916)의 영향도 지적된다.  



헬레네 세르프벡, <자화상>, 1912년, 캔버스에 유채, 43.5 x 42cm, 아테네움 미술관, 헬싱키


1912년 세르프벡은 자기만의 모던한 언어로 자화상을 그린다. 배경은 노랑과 회색의 자유로운 배색으로 표현된 한 폭의 추상화다. 우리를 향한 그녀의 표정은 신중하면서도 단호하다. 볼과 입술에 채색된 분홍빛은 생기를 더하고, 묵직한 군청 상의는 차분한 안정감을 준다. 색면으로 단순하게 묘사한 과감한 표현에서 50살 화가의 자신감이 느껴진다. 두 눈이 다르게 표현된 것도 특이하다. 불투명한 눈은 내면을, 사실적인 눈은 외면을 향한 화가의 복합적인 시선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녀만의 표현과 개성이 돋보이는 자기 선언서인 셈이다.  

 


헬레네 세르프벡, <검은 배경의 자화상>, 1915년, 캔버스에 유채, 45.5 x 36cm, 아테네움 미술관, 헬싱키


<검은 배경의 자화상>은 핀란드 예술협회의 주문으로 그린 자화상이다. 검은 배경 때문인지 창백한 피부와 하얀 블라우스 차림의 그녀가 더 돋보인다. 색다른 시도들도 눈에 띈다. 눈과 볼, 입술을 물들인 화장이 더 화사해졌고, 뒤쪽 주황색 물통에 꽂힌 붓은 그녀가 화가임을 나타낸다. 상단에는 흐릿하게 대문자로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영화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 포스터

세르프벡은 공식적인 자화상에 더 아름답고 위엄 있는 화가로 자신을 제시했다. 은둔하며 작업하던 그녀는 이때 국내외 전시에서 주목을 받았고, 한 아마추어 화가의 흠모를 받으며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영화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은 이 시기 그녀의 삶과 작업을 그리고 있다. 핀란드 예술협회가 자화상을 의뢰한 15명의 미술가 가운데 세르프벡은 유일한 여성 화가였다. 자화상에서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은 그녀의 자긍심을 드러낸다. 상단의 글씨는 화가가 모사하기도 했던 독일 화가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 1497~1543)의 초상화를 참고한 것이다. 세르프벡은 이 글씨 때문에 자화상이 묘비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흑암 속에서 빛을 발하는 그녀의 형상은 신비로우면서도 고요한 위엄을 전한다. 예술은 죽음을 넘어 그녀를 마치 성자처럼 불멸화한다. 이 자화상은 그녀를 추앙하게 하는 현대판 성상화인 셈이다. 



헬레나 세르프벡, <팔레트가 있는 자화상>, 1937년, 44.5 x 33.5cm/ <검은 입의 자화상>, 1939년, 42 x 28cm/  1942년, 30 x 25.5cm


1910년대 초반에 만난 언론인이자 미술상 괴스타 스텐만(Gösta Stenman)은 평생 세르프벡의 전시를 돕고 작품을 팔면서 물심양면으로 화가를 도왔다. 러시아의 일부였던 핀란드가 독립한 1917년, 첫 개인전이 열리고 단행본이 출간되며 그녀는 핀란드의 선구적인 화가로 평가된다.


1923년 어머니의 죽음으로 세르프벡은 온전히 혼자가 되었다. 어머니의 사랑은 오빠를 향해 있었지만 평생을 함께해 온 어머니가 떠나자 그녀는 무너졌다. “일하는 것, 작업을 통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 길이다”라는 말처럼 화가는 그림을 그리며 방황을 이겨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책을 읽고 영성에 관심을 두며 옛 대가들의 성화를 자기식으로 그리기도 했다. 주문한 초상을 절대 그리지 않았던 화가는 모델을 찾지 못하면 거울 속에 자신을 바라보았다. 세르프벡이 남긴 40여 점의 자화상 가운데 반 이상은 193, 40년대에 제작된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그녀에게 스텐만이 자화상에 관한 자료를 가져다주며 독려하기도 했다. 세르프벡은 자화상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의 이상적인 자화상이나 제임스 앙소르(1860~1949)의 자기 비하의 자화상보다는 꾸밈없고 진솔한 케테 콜비츠(1867~1945)의 자화상에 끌렸다.  


케테 콜비츠, <자화상>, 1934년, 석판화

(위의) 70대 화가의 자화상을 보면 팔레트를 앞에 두고 냉소적인 얼굴을 하고 있거나, 심기가 불편한지 얼굴이 찌그러져 있고, 때론 짙은 화장 속에 숨은 광대처럼 보인다. 세르프벡은 왜 더 추하게 세월의 흔적과 불행한 마음을 담아낸 것일까. 처음엔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말년의 자화상들 때문에 전성기의 자화상이 더 찬란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삶의 진실이라는 측면에서 그 시대 결혼하지 않고 여성이 홀로 긴 세월을 살아내는 것이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내성적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작업을 위해 평생 기꺼이 고독을 선택했다. 세르프벡은 ‘진정한 예술가는 모든 권위에서 독립해 절대적인 자유를 위해 분투하고 자기 내부의 목소리만을 들어야 한다’(p. 127)고 믿었다. 이제 그녀는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모습이 아닌 늙어가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들을 여과 없이 자유롭게 표현했다.  


헬레네 세르프벡, <검게 된 사과가 있는 정물화>, 1944년, 캔버스에 유채, 46 x 51cm, 디트리체 미술관, 헬싱키

1939년 핀란드는 독일과 동맹해 러시아를 침공하며 불안의 시기를 거친다. 불치병에 걸린 세르프벡은 1944년 스텐만의 설득에 따라 그가 있는 스웨덴으로 이주한다. 그녀는 살트셰바덴(Saltsjöbaden)의 스파 호텔에서 남은 생을 보내며 작업을 지속했다. 이때 그림은 병약한 화가가 작업하기 쉬운 정물화와 자화상이 대부분이다. 


<검게 된 사과가 있는 정물화>에서 붉은 껍질에 푸른 속살을 보여주는 사과는 검게 썩은 사과와 나란히 놓여있다. 생은 이렇듯 죽음과 동행한다. 그녀의 언어는 더 단순해져 이제 정물화는 색면 추상화에 가까워졌다. 화가는 직접 관찰하기보다 점차 기억에 의존했고, 특정한 것은 보편적인 형상으로 표현했다.



헬레네 세르프벡, <붉은 점이 있는 자화상>, 1944년, 캔버스에 유채, 45 x 37cm, 아테나움 미술관, 헬싱키

이 시기 자화상 가운데 <붉은 점이 있는 자화상>은 탁월한 표현이 인상적이다. 몸은 단단하게 자리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대기 속에 녹아들듯 흐릿하다. 커진 한쪽 눈과 작은 동굴 같은 입만 또렷하게 남아있다. 노화는 육체적인 쇠락만을 불러오지 않는다. 그녀의 인식과 통제력은 유령 같은 얼굴처럼 희미해졌던 것일까. 아랫입술에 찍힌 붉은 점은 삶의 마지막 불꽃처럼 보인다.    


말년에 그린 충격적인 자화상들을 보면 왜 세르프벡이 ‘핀란드의 뭉크’로 불렸는지 알 수 있다. <초록 자화상, 빛과 어둠>에서 눈을 감은 그녀의 얼굴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다. 붓질은 더 엉성하고 거칠어졌다. 거울에서 그녀가 본 것은 초록톤의 붕괴하는 형상이었다. 여기서 그녀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순순히 맞이하는 듯하다. 반면 <자화상, 늙은 화가>는 죽음 앞에서 그녀가 느끼는 두려움을 보여준다. 온통 시커먼 화면과 해골마저 녹아버리게 하는 공포는 뭉크의 <절규>를 능가한다. 세르프벡은 다음 해 1월에 83세의 나이로 이젤이 옆에 놓인 침대에서 삶을 마감한다.


이런 그림들이 불러일으키는 힘은 병환 중에 있는 80대 화가가 거울을 마주하며 작업하는 모습을 상상할 때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희미한 감각으로 자기를 표현해 내려는 그 의지는 자화상을 마주하는 이를 매혹한다. 캔버스에 남겨진 붓질과 물감은 소멸해 가는 존재의 자기 증명이자 마지막 남은 예술혼을 불태운 흔적인 것이다.


 

헬레네 세르프벡, <초록 자화상, 빛과 어둠>, 1945년, 캔버스에 유채,  36 x 34 cm, 빌라 길렌버그 미술관, 헬싱키



헬레네 세르프벡, <자화상, 늙은 화가>, 1945년, 캔버스에 유채, 32 x 26cm, 개인소



핀란드 국립 미술관에서 발행한 영문 전기에서 세르프벡의 다양한 작품과 사진을 볼 수 있다.

https://research.fng.fi/wp-content/uploads/2023/04/fngr_2023-1_hs_print.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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