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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상 Nov 18. 2021

LP예찬(1) LP는 인테리어다


LP 커버에는 단 하나의 정돈된 메시지가 있다. 그것으로 앨범이 모두 이해되는 건 아니지만, 그 안에 담긴 음악을 기억하게 만들 강력한 색과 이미지가 있다. 음악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건, 부드러운 원단을 만지기만 해도 멋진 옷이 상상되는 것처럼 근사한 일이다.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는 생각만 해도 서늘한 겨울이 떠오르고. 테임 임팔라 Lonerism 커버를 보고 있자면 어쩐지 나른한 오후가 생각난다.



듣기만 해도 좋은 음악들인데 보면서도 즐길 수 있다니. 일테면 어떤 물건을 원해서, 가격을 지불했는데 포장지도 기가 막히게 예쁜 거다. 버릴 필요가 없는 포장지, 심지어 같은 이미지는 하나도 없고 각각의 개성으로 빛난다. 시각과 청각의 공감각적 믹스매치, 그것이 LP다.

   Radioheafd - OK COMPUTER
Tame impala - LONERISM

     

또한 LP는 인테리어 소품이다. 그림 캔버스보다 작고 책 표지보다 크다. 피규어나 조각보다 단순하며, 양주나 와인병보다 덜 거추장스럽다.빈약하지만 대체재로 CD가 있지 않나 싶을 텐데 기껏해야 겨우 어른 손바닥만 할 뿐이다. 그것으로는 핑크 플로이드 앨범 wish you were here 커버 주인공의 표정이 웃상인지, 울상인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카세트는 더 심각하다. 일단 크기가 음악을 담기에는 박하게 느껴진다. CD보다 작을 뿐만 아니라 무려 직사각형(!)으로, 기존의 정사각형의 앨범 커버를 마지못해 절취하고 비율을 조정했을 것이다.불경스럽게도 원본을 훼손했거나 검열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카세트는 같은 아날로그 계열이라 눈감아 줄 수 있을지도.




예컨대 당신의 집 한편에 서재가 있다고 하자 (서재야 말로 본인의 취향과 기호가 축약된 곳이다!) 책장에 가득 채운 책만으로 사위를 다 채우자니 좀 답답해 보인다. 책 등을 돌려 겉표지를 보여주자니 책 제목이 너무 뚜렷하게 보여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여 아쉽다.



큰 그림을 걸어 놓는 것은 어쩐지 너무 힘을 준 것 같다. 유명한 작가의 그림은 상대적으로 내가 가벼워 보이고, 그렇다고 아무 동의도 못 얻는 그림을 턱 하고 올려놓긴 쑥스럽다. 피규어나 소품들로만 채우기엔 공간이 남아 버리거나와 나의 덕력이 많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LP는 단독으로도, 같이 있어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LP는 세로로 가지런히 꽂아 놓으면 경제적으로 적은 공간을 차지하며 마음에 드는 앨범 커버를 몇 개를 정면으로 보이게 두어도 좋다. 그 자체로, 작은 캔버스이자 예술작품으로 기능한다.무슨 가수의 무슨 앨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며, 누구에게나 설명할 수 있는 앨범이면 된다. 어디 인생 곡 하나, 얽힌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겹쳐있는 LP는 방문자에 의해 몇 번이고 넘겨질 것이고, 또 보여지기 위해 그 자리를 차지한다. LP 커버는 책의 주제를 설명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며, 그냥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하릴없이 시간을 죽일 수 있다. 혹시 아는 앨범이 나온다면 기꺼이 반색하며 음악에 얽힌 그의 추억을 나눌 것이다. 그리고 서재의 주인 역시 유난 떨지 않으며 은은하게 내 취향을 드러낼 수 있다.



LP안에는 음반 말고도 속지가 꼭 들어있다. 이것도 LP와 같은 아날로그 매체가 가진 매력인데 창작가의 인터뷰부터, 음악평론, 앨범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간단한 과정 소개, 가사, 멜론에서라면 세세하게 보지 않았을 각 세션들의 이름들까지 (어 뭐야 여기 기타를 이 사람이 쳤다고???)



 LP에서 나오는 소리에만 집중할 수도 있지만 느긋하게 속지를 읽으면서 듣는 것도 하나의 '체험'이다. 스마트폰 창에서 앨범 소개를 보면 되는 거 아니냐고? 절대. 그것은 기어코 나를 나무 위키로 이끌고, 11번가로 데려가며, 다른 곡들을 클릭하게 만든다.





음악에 들을 때만큼은 정보에 덜 노출될 권리도 있지 않을까, 더 알아야 할 권리가 아닌 원하는 것만 알아야 할 권리(?)를 LP 속지를 읽으며 보장받을 수 있다. 음악을 들을 때 음악 관련 정보 말고 다른 게 또 필요한가. 어느 기업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것이 '최고'다가 아니라 이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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