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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얀 Apr 04. 2022

<이즈 잇 케이크>와 부유하는 질문들

재능 낭비 예찬부터 존재론적 위기까지

    본인의 분야에서 최고인 사람들을 보는 일은 항상 영감을 준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감히 상상해보고, 그들에겐 나와 다른 타고난 재능이 있을 것이라 위안도 하다가, 그렇다면 나는 어떤 철학을 바탕으로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성찰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보다 근원적인 질문, 의문, 혹은 의심을 품게 한다…. 넷플릭스 <이즈 잇 케이크 Is It Cake?>(2022)다.


출처 : Netflix

 

    <이즈 잇 케이크>는 넷플릭스의 베이킹 서바이벌 시리즈 중 하나로, 극사실주의 케이크(hyper realistic cake)로 누가누가 심사위원을 잘 속이는지를 겨룬다. 가끔 유튜브 쇼츠, 인스타 릴스, 틱톡을 내리다 보면 절대로 썰릴 리가 없어 보이는 물건을 냅다 칼로 썰어버리는 ‘사실은 케이크였습니다’ 영상을 본 적이 있을 텐데, 그걸 경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깔끔히도 썰어지는 모습은 묘하게 기분 좋은 영상(Oddly Satisfying Video)과 결을 같이 하고, 숏폼 단골 서사인 반전 요소까지 결합되었으니 인기가 없을 수 없는 트렌드다. 거기에 사람을 속이는 재미, 케이크인지 아닌지 맞추는 재미, 리액션 비디오까지 파생되니, 더더욱 흥할 수밖에.

     경연 방식은 다음과 같다. 참가자들은 물건을 하나씩 골라 8시간 동안 그 물건을 똑같이 카피해 케이크를 만든다. 볼링핀, 햄버거, 체스판, 채소, 러버덕, 낚시 상자, 재봉틀…. 네 개의 진짜 물건 사이에 케이크 하나를 숨기면, 심사위원들은 5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제한시간 20초 안에 케이크를 찾아내야 한다. 본게임을 포함해 케이크 찾기 게임은 한 에피소드당 세 번씩 진행된다. 카피할 물건을 선택하는 우선권을 얻기 위해 참가자들끼리 하는 케이크 찾기, 심사위원을 속이는 본게임 케이크 찾기, 해당 회차의 우승자가 추가 상금을 얻기 위한 보너스 케이크 찾기. 케이크 찾는 게임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이 보인다.

    <이즈 잇 케이크>를 계속 보다 보면 문장으로조차 구사하기 힘든 묘한 의문이 머릿속에 동동 떠다닌다. ‘모든 것은 케이크이다’라는 밈으로만 소비하기엔 너머에 더 많은 무언가가 있다. 그 생각은 생활 영역까지 침범해버릴 정도로 강력하다. 이 쇼를 보면서 든 몇 가지 의문을 질문으로 정리하여 자문자답해보고자 한다.


출처 : Netflix



Q1. … 대체 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왜 굳이 이렇게까지 복잡한 상황을 만든 거지? 저것은 케이크인가? 하필 케이크여야 하나?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 목적인 케이크라니? 왜? 굳이? 저렇게? 다시 보면 물건도 닮게 보일 수 있는 거임? 케이크도?  

     그동안 음식으로 장난(?) 치는 형태의 예술은 많이 있어왔다. 설탕 공예도 그렇고 초콜릿 공예도 그렇다. 다만 칼로 썰었을 때 느껴지는 그 만족감과, 앞서 말한 숏폼의 트렌드를 장악한 것, 그리고 파티나 기념일에 축하 및 선물용으로 쓰이는 케이크의 상업성 덕분에 접근성도 좋은 덕에 더 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뇌피셜. 사실 이 시리즈 말고도 케이크로 장난치는 쇼가 굉장히 많은데, 서양인들에게 케이크란 대체 어떤 존재일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출처 : 트위터 @HEY_STOP_LOOK_M 외


    (나는 안 해봤지만) 베이킹을 해 본 사람이라면 베이킹 재료들이 전부 개복치라는 것을 잘 안다. 재료의 비율과 온도, 시간에 맛과 형태가 심각하게 달라진다. 베이킹은 사실 맛있는 빵/케이크/과자를 만드는 과학 실험에 가깝다. 또, 이 프로그램에서 만드는 케이크는 바닥에 펑퍼짐하게 퍼진 형태가 아니라 일반 물건처럼 높이와 부피가 생기기 때문에 무게중심도 잘 잡아야 한다. 사람들의 눈을 속여야 하기 때문에 실제 물건의 컬러와 흡사하게 색을 조합해내야 하고 무광이면 무광, 유광이면 유광에 맞게 광택도 조절해야 한다. 거기에 맛까지 있어야 한다. 단순히 눈속임에 놀라는 것을 넘어, 이 시대의 인재상인 올라운더나 제너럴리스트를 넘어서 제빵, 미술, 모든 분야에 걸친 스페셜리스트를 보는 재미가 엄청난 비중을 차지한다. 경솔하게 말하자면 ‘재능 낭비’다. 이 쇼는 제빵쇼가 아닌 재능 낭비 쇼다.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tvN 예능 <식스센스>를 볼 때 드는 생각과 흡사하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재능 낭비 자체도 정말 즐겁게 소비하기 좋은 콘텐츠다.




Q2. 저걸 과연 케이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이즈 잇 케이크>에 나오는 작품들은 케이크라고는 하지만, 시트를 겹겹이 쌓아 그 위에 아이싱을 한다는 기본 개념만 살아있고, 그 외의 과정은 그냥 조소에 가깝다. 문외한도 알 수 있다. 반죽을 물건 모양의 틀에 완벽하게 구워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가 아는 케이크 시트는 작품 안쪽의 밀도를 완성하는 용도(케이크라는 명목을 지키기 위한 용도)이고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대부분 ‘폰던트’라는 흰 설탕 반죽이다. 찰흙 같은 질감의 폰던트는 케이크 시트를 얇은 이불처럼 덮어 조각칼로 다듬고 붓으로 색을 입히기 용이하다고 한다. 아니면 모델링 초콜릿으로 속이 빈 초콜릿 틀을 만든 다음 안쪽에 케이크를 분쇄해 단면을 꽉꽉 채우기도 한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이건 케이크라기보다 폰던트, 모델링 초콜릿, 식용 광택제, 식용 접착제, 식용 분말 색소, 웨이퍼 페이퍼(식용 종이), 케이크 시트 등을 조립한 조소 작품인 것이다.

    이쯤에서 ‘케이크’란 대체 뭘까 정의를 검색해봤다.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a sweet food made from a mixture of flour, eggs, butter, sugar, etc. that is baked in an oven이라고 한다. 안쪽을 채운건 오븐에 구워낸… 케이크가 맞다. 계란, 버터, 설탕 등이 들어간 것도 맞다. 단 것도 맞고, 먹을 수 있으니 음식도 맞다. 그런데 케이크의 '모양'은 정해져 있지 않다. 케이크의 정의에서 인류는 이미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일 테다. 

    여전히 드는 의문은, 아무리 폰던트와 초콜릿이 케이크의 구성물질이라 해도 시트만큼이나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전체 중 일부가 시트라면 케이크라는 것인가? 그 허용치는 어디까지인가? 혹시 작품의 반 이상이 케이크 시트가 아닌 다른 재료(폰던트, 초콜릿)라면? 여전히 케이크인가? 그럼 쿠키런 킹덤에 나오는 벨벳케이크맛 쿠키는 오른팔을 잃고 케이크로 팔을 만들어 붙였으니, 쿠키가 아니고 케이크인가? 나는 70%가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물인가? 고양이도 물성만 따지면 액체가 맞나? 하긴, 트러플이 0.000001% 함유된 감자칩도 트러플 감자칩이라던데….




Q3. 근데 저게 맛이… 있나?

     이 극사실주의 케이크 경연대회에서 ‘맛’과 ‘디자인’은 놀랍게도 거의 같은 비중으로 다뤄진다. 각 케이크의 정교함이 비교 불가할 때는 맛으로 승자가 결정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아무리 조각하고 색칠하고 주물주물 모양을 내도 작품의 본질은 케이크이며, 맛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 경연이 시작할 때마다 참가자들은 본인 케이크의 맛을 설명하는데, 온갖 맛있는 재료를 읊는다. 스위스 머랭, 버터크림, 바닐라 시트, 다크초코 시트, 라즈베리 잼, 딸기 크림, 구운 헤이즐넛, 피스타치오, 땅콩버터, 마시멜로, 마스카포네 치즈, 브라우니, 진저브레드…. 메인 맛 요소가 최소 너 덧가지는 들어가데 그 조합도 꽤 신경 쓰는 것 같다. 하나도 먹음직스럽게 생기지 않은 물건이 칼로 잘리는 순간, 다양한 레이어의 단면이 나타나며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케이크가 등장한다….

     미국 프로그램답게 심사위원들의 시식 리액션도 맛을 참 풍부하게 설명해준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케이크들이 하나같이 촉촉하다는 평을 받는다는 것이다. 폰던트나 초콜릿으로 겉을 열심히 감싸서 빵을 통으로 덮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분이 유지되는 것인가 싶다. 그러나 여전히 클러치백이나 공룡 장난감이나 여행 트렁크를 잘라서 먹는 걸 보는 건 인지 부조화가 온다. 




Q4. 사실은 나도 케이크가 아닐까?




    이제 케이크는 무언가의 대유가 되어버렸다. 굳건하게 믿어왔던 것이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혹은 나를 속이려고 드는 음모론적 세계관, 일본 문화의 ‘혼네(속내, 진심)’와 ‘타테마에(겉으로 표현하는 것)’, 표리부동, 구밀복검, 그것을 파악하는 눈치, 의심, 비판적 사고라는 개념까지 다 케이크가 포괄해버린 걸지도 모른다.

    시리즈를 다 끝내고 나니, 물리적으로 만질 수 있는 물체를 넘어서 특정 개념조차 케이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종교와 철학도 케이크가 아닐까? 진리의 칼로 잘라 봐야 하는 거 아닐까? 잠깐, 그 칼도 혹시 케이크가 아닐까? 그러면 나조차도 케이크 일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농담 반 진담 반이다. 잠깐. 진담이 반이나 섞여있다면.. 그건 이미 진담인가? 폰던트라는 진담으로 싸인 농담인가?

    이제 더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상사의 칭찬, 부하직원의 웃음, 부모님의 ‘난 괜찮다’, 친구의 ‘밥 한 번 먹자’, 애인의 ‘아무거나’, 고양이의 골골송, 파트너의 오르가즘, 정치인의 공약…. 이 모든 것이 다 케이크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Q5. 우리는 거짓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즈 잇 케이크>에서 심사위원들의 오답률은 생각보다 높다. 이대로 극사실주의 케이크 트렌드가 계속 이어져서 기술이 더욱 발전한다면, 우린 정말 감각의 세계를 믿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려워하지는 말자. 그들은 케이크에서 꽤나 떨어져서 20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틀릴 수 밖에 없다. 내가 앞에서 호들갑은 떨어놨지만, 사실 시청자 입장에서 클로즈업 화면으로 유심히 보면 물건들 가운데 케이크는 티가 좀 난다. 시청자들이 허어어억! 하면서 숨을 들이키는 순간은 날 감쪽같이 속여서 놀랍다는 뜻이라기보다 스무스하게 들어가는 칼날이 주는 감각적 쾌감과 베이킹의 한계를 뛰어넘은 참가자에 대한 경외에 가깝다. 


개? 돼지? 식빵? 인공지능을 혼란에 빠뜨리는 마성의 퍼그 몬치. <미첼가족과 기계전쟁> 중에서. 출처 Giphy @sonyanimation


    우리는 물체를 인식할 때는 하나의 큰 덩어리로 인식하지만, 시간을 들일 수록 디테일을 발견해내는 재주가 있다. 가짜는 디테일이 다르다. 아무리 가죽가방의 박음질을 하나하나 재현했다고 해도 시간을 들여 집중력있게 보면 그것이 폰던트로 만든 양각 무늬임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모든 인간들이 타고난 재능이다. AI한테 <이즈 잇 케이크>를 보여주면 케이크와 케이크가 아닌 것을 절대로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AI는 아직 후라이드 치킨과 푸들도 구별 못한다. 리캡챠의 단어도 인식 못한다. <미첼가족과 기계전쟁>에는 개인지 돼지인지 식빵인지 모를 몬치라는 퍼그가 나와 AI에 대항할 무시무시한 존재로 군림한다. 그러나 인간에겐 한없이 작고 소중한 강아지이며, 우리는 이 사실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우리는 나와 나를 둘러싼 존재들을 구별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고, 그래서 사회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감히 희망을 품어본다비판적 사고와 약간의 의심, 저것이 케이크인지 한 번 더 살펴보는 눈썰미 있다면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학생들의 디지털 정보에 대한 사실과 의견 식별률도 최하위(25.6%)를 기록했다. OECD 회원국 학생의 평균 식별률은 47%였다. 출처 연합뉴스.


    우리는 케이크를 구별해내는 비판적 사고력을 삶의 다른 영역으로 확장시켜야 한다. 인간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표리부동적인 상황 외에도, 사회에는 우리가 판별해야 할 거짓 정보들이 넘쳐난다. 한국인 청소년들의 디지털 문해력(디지털 정보의 진위를 판별해내는 능력)이 OECD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분명 청소년 뿐만 아니라 전세대에 걸쳐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정보 홍수의 시대, 한 정보를 이해하고 수용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이 너무나 짧아졌다. 5미터 밖에서 가짜뉴스를 몇 초 잠깐만 보고 ‘진짜잖아!’라고 판단하는 일의 위험성을 깨달아야 한다. 한 번 진짜라고 믿으면 아무리 칼로 잘라서 케이크의 단면을 보여줘도 여전히 ‘진짜’라 인지한 순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어쩌면 범람하는 정보를 무비판 수용하던 사람들이 <이즈 잇 케이크>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말)




 Q6. 가짜라고 다 거짓이고 거짓이라고 다 가짜인가?

    앞의 디지털 문해력이나 가짜뉴스 얘기는 접어두고, 다시 제빵사들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극사실주의 케이크들은 진짜를 모방하긴 했지만, ‘가짜’라고 칭해지긴 너무 아깝다. 그 작품들은 진짜 사이에 있을 때만이 ‘가짜’이고 ‘거짓’이라고 불릴 수 있다. 만약 그 케이크가 단독으로 있다면 가짜일지언정 거짓일 수 없다. 그것을 만든 자들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해당 분야에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그 무엇으로도 자를 수 없는 진심의 소유자들이기 때문이다.

    경연이 진행되면서 참가자들의 인터뷰와 사연이 교차편집 되는데, 그들의 열정 가득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마땅한 감동이 올라온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빠지고 경연에 참가한 18세 제빵사부터 30년도 더 케이크를 만들어온 베테랑 제빵사까지. 나는 잘 모르는 용어를 자유자제로 구사하며 서로 응원한다. 경쟁이 주된 목표이긴 하지만 누구보다 베이킹의 어려움을 잘 알고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있기에 서로의 작품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이렇게 진실된 가짜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물론 세상엔 반대로 가짜같은 진실은 너무 많다. 살다 보면 차라리 케이크였으면 하는 일들이 생긴다. 월요일이 케이크였으면 좋겠지만, 칼로 잘리지가 않는 걸 보니 케이크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고 진짠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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