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의 3일 (1)

by 이끌려



뉴욕 펜스테이션.


아침 7시 25분 워싱턴으로 이동하는 기차 암트랙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아고다에서 보낸 메일입니다.

예약하신 워싱턴 호스텔의 에어컨이 고장났습니다.

예약을 취소하실 경우 전액 환불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시간을 확인했다. 7시 6분. 열차 출발까지 고작 20분 남짓.

황당했다. 여행을 시작하기도전에 숙소에 문제가 생기다니.

그렇다고 워싱턴행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곧장 카페 채팅방을 열었다. 워싱턴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었다.

사실 처음엔 동행을 구할 생각은 없었다. 혼자 여행할 계획이었으니까.


하지만 작년 크리스마스,

혼자 간 시드니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언니와 며칠을 함께 여행했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이번에도 혹시 또 그런 인연이 있을까 싶어 글을 올렸던 거다.


한국에서 미리 동행 구하는 글을 올렸는데, 댓글이 달리지 않다가 뉴욕에 온지 사흘째, 드디어 댓글이 달렸다.


"안녕하세요 아직 동행 구하시나요?"


나는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답했다. 내 일정을 공유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현재 보스턴 여행 중이라고 했다. 내가 워싱턴에 도착하는 날, 마침 그도 워싱턴으로 온다고 했다.


나는 보스턴 당일투어를 예약했는데 가이드 개인사정으로 뉴욕 입국 날 취소되었고,

아쉬움을 그에게 토로하며 보스턴은 어떠냐 물으니, 그는 보스턴은 로맨틱한 도시라고 했다.

그의 말에 보스턴 취소가 더 아쉽게 느껴졌다.

또 그는 베이글과 카페를 좋아한다고, 만나면 카페를 가자고 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여행 이야기로 이어졌다.

뉴욕은 어떻냐는 질문에 나는

'너무 좋고 오늘은 센트럴파크에서 요가를 했다'고 말 하자,

그도 "파머스마켓을 구경갔었고, 한국에서는 시장가는거 안좋아했는데 거기는 너무 좋다"라고 했다.


나는 나이아가라 당일투어가 있어서 얘기하니,

그는 '캐나다쪽에서 보는게 더 이쁘다고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만나면 뉴욕의 좋은곳을 알려주겠다'라고 했다.

답장 텀이 길었지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여행 중인 지금은, 채팅보다는 각자 여행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워싱턴 일정은 3일, 그는 그 중 이틀만 동행하기로 했다.

워싱턴 도착은 점심 즈음.

점심을 해결해야 했고, 그도 점심을 먹어야 할 테니 같이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어보니, 그도 좋다고 하여 캐피탈버거에서 만나 점심을 함께하기로 했다.


나는 3일치 짐을 트레이더조 에코백 하나에 챙겨왔는데, 덕분에 짐은 하나로 끝났지만 무게가 상당했다.

도저히 버거집까지 들고 갈 수 없을것 같아,

검색을 해보니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에 무료 락커가 있다고 했다.

거기에 짐을 맡겨놓고 버거집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암트랙이 정차하는 워싱턴 유니온스테이션에서 스미스소니언 미술관까지는 걸어서 25분 정도 걸렸다.

나는 '이정도 쯤이야' 하고 어깨에 짐을 짊어지고 당차게 걸어갔다.

뉴욕과는 다른 워싱턴 분위기, 흐린 날씨, 드문 인적에 긴장이 됐다.

무거운 짐 때문에 체력은 점점 바닥을 쳤다.


어찌저찌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에 도착해서 짐을 맡기고,

구글맵으로 버거집까지 걸어서 10분 정도임을 확인했다.

걸어가는 길에 카톡아이디를 교환했는데,


알려준 아이디는 남자 이름이었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아, 그렇다 나는 성별도 물어보지 않은채 동행이 여자일 거라고 혼자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