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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니 May 22. 2024

나는 어쩌다 ‘어공’이 되었나

방송작가에서 글쓰는 공무원으로


아빠 曰 "공무원이 최고란다"


오늘로 4005일째 날이다. 어쩌다 보니 공무원이 된 세월이 말이다. 뭘 해도 글을 쓰고 살 줄은 알았지만 방송작가를 하던 내가 공무원이 되어 10년이 넘게 글을 쓰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이렇게 나처럼 다른 일을 하다 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들을 자칭, 타칭 ‘어공’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공무원 공채를 거친 이를 ‘늘공’이라고도 하는데, 딱 맞는 표현은 아닌 듯하다.      


교육 행정공무원으로 퇴직하신 아빠는 내가 어릴 때부터 공무원이 최고의 직업이라고 강조하셨다. 아빠는 그것이 선생님이던, 행정공무원이던, 군인이던 상관없었다. 어떤 때는 간호장교생도모집 홍보물을 보여주시고, 어떤 날은 경찰대 시험을 권하시고, 급기야 수능을 치른 다음 날은 나의 성적과 상관없이 교육대학을 지원하라며 강력하게 권하셨다.      


그렇게 오랜 세월 가랑비에 옷이 젖듯 일명 ‘공무원 세뇌’를 당해 왔던 탓일까. 참 즐겁게 해 왔던 방송작가 생활 6년 만에 나는 서울을 떠나 지방 중소도시에서 공무원의 길을 시작하였다.   



방송작가에서 공무원으로...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게는 방송작가도 공무원이 되기 위한 한 여정이었다. EBS에서 특집방송을 준비하면서 방송작가 출신의 ‘어공’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녀를 만나면서 공무원은 공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게 아니라는, 나름의 틈새시장 진입법을 알게 된 것이다.      


그녀는 교육청 대변인실에서 메시지 작성을 담당하고 있었다. 교육감 대담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나와 1주일가량 가장 자주, 가장 긴밀하게 대화하는 상대가 되었다. 프로그램을 마무리할 즈음 그녀가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방송작가 출신들이 의외로 다양한 직종에 퍼져 있는데, 그중 공무원 조직도 포함된다며 관심 있으면 도전해 보라는 조언을 건넸다.      


때마침 방송작가 생활에 자신이 없던 차이기도 했다. 계속되는 밤샘, 생방송 당일 출연자 펑크, 장소 섭외 거부 등등 내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연속에서 최고의 작가가 되어보리라는 열망에 금이 가고 있었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인연의 힘을 강하게 경험하였다. 채용 사이트에서 경상북도에 있는 한 도시가 올린 메시지 작성 공무원 구인공고를 보게 되었는 데 우대사항에 ‘방송작가 경력’이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공고를 본 순간 ‘이거다’ 싶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내 자리다!’ 싶었다.    

  

일반 행정직 공채와 다르게 ‘전문직’에 해당하는 어공들은 서류전형, 면접전형으로 당락이 결정된다. 단, 글 쓰는 어공들은 ‘필기전형’을 통해서 전문성을 직접 시험받기도 한다. 그 시험이라는 것도 기관마다, 도시마다 다른데, 내가 시험을 본 곳은 무려 3가지 시험을 반나절 동안이나 진행하였다. 1교시 서한문 쓰기, 2교시 기고글 쓰기, 3교시 독서 경험 정리하기.      


이 과정에서도 나는 인연의 힘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내가 준비했던 예상 문제가 무려 1, 2교시에서 모두 나온 것이다. 그야말로 술술 인연이 당기는 대로 나는 써내려 갔고, 최고점을 받아 합격의 기쁨을 안았다.      


그렇게 나는 ‘어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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