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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프란 곽여사 Dec 27. 2023

언니들, 이래서 여행하겠어?

이동조차 힘겨운 마음만 젊은 언니들.

한껏 차려입은 엄마

전 날, 피곤에 쩔은 몸으로 방에 돌아와서 나는 신경이 날카로웠다. 엄마는 괜히 여행을 같이 가자고 해서 딸을 지치게 했나 미안한 마음에 눈치를 보았다.


“지영아, 같이 들어와서 씻을래…?”


“그렇게 말할 시간에 얼른 씻어…”


엄마는 민망한 표정으로 욕실로 들어갔다. 기껏 여행을 와서 좀 장시간 이동했기 로써니 엄마에게 화풀이를 하는 모양새라 말을 내뱉고도 바로 후회가 밀려온다. 모두가 피로할 텐데 그중 제일 젊은 나이의 내가 제일 힘들어하다니… 제일 가까운 사이가 제일 조심해야 할 사이라는 말은 백 번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는데 누가 똑똑똑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어보니 환희원장님이다.


“어, 이 방은 딸내미랑 엄마구나. 엄마 씻으셔?”


“네 먼저 씻으라고 했어요. 피곤해하셔서…”


“아 다름이 아니고, 아까,,, 그 돈 말이야. 그거 사실 내가 일부러 숨겼어. 말떡언니가 또 주사를 부릴 거 같아서 정신 좀 차리라고 내가 일부러 그런 거야.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 모두 마음이 불편할 거 같아서 내가 일부러 장난친 거라고 알려주러 왔어…”


무슨 일인고하니, 저녁식사자리에서 모두가 캄보디아에서 첫 끼를 한식 두루치기로 맛있게 먹는데 말떡여사가 발동이 걸렸다. 뭔 70대 넘은 할매가 술을 그렇게 마시는지 소주잔도 모자라 종이컵에 따라 들이켜게 되었다. 목소리가 커지고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술을 끝도 없이 드시며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캄보디아는 한국과 토양이 흡사해 농작물이 잘 자라 품질이 좋고, 나라가 가난해서 비료를 살 돈이 없어 모든 채소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무공해라고 한다. 우리는 신이 나서 미나리를 무한리필을 해서 먹었기에 일하는 종업원들이 무척이나 바쁘게 움직였다. 식사비에 이미 팁이 포함돼 있지만 그게 과연 얼마나 되랴? 환희 이모는 나서서 돈을 개인당 1불씩 걷었는데 (나는 종업원 1인당 5불씩 쥐어주었다) 정신이 없는 말떡여사는 달러를 바꿔 온 봉투를 통째로 건넸다. 이때 환희이모가 장난을 친 것이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친 모두가 버스에 탑승을 했는데 가이드가 뛰어들어와 말떡여사 돈 봉투를 본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오래 가이드와 연이 닿은 식당과 종업원들은 이미 두둑하게 팁을 받은 상태에서 돈 봉투로 장난을 칠 이유가 없었다. 뒤늦게 화장실에 간 말떡여사가 돈이 없어졌다고 난리가 난 것이다.


우리는 이미 긴 이동시간에 지쳐 (인천공항-베트남 하노이 4시간 30분, 하노이-캄보디아 공항 1시간 45분, 캄보디아 공항-호텔 1시간) 그저 호텔에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기에 ‘이제 드디어…!’ 하는 순간에 이 난리가 나서 지체가 되니 모두들 얼굴에 피로가 더 쌓였다. 결국엔 나중에 가이드가 음식점과 확인을 한 번 더 하기로 하고 호텔로 온 것이다. 그런데 그 난리가 환희이모의 장난이었다니… 아니 뭔 나이 많은 할매들 여행이 이렇게 버라이어티 하단 말인가. 사람들 마음 편히 자라고 또 그 이야기를 방마다 문 두드려가며 설명해 준 환희이모도 참 착한 사람이다.


다음 날 나는 최대한 이동이 편한 차림을 했는데 엄마는 괴상한 차림을 했다. 스트랩 원피스를 입었는데 팔을 훤히 내놓을 자신이 없다고 그 더운 날씨에 또 흰 티를 받쳐 입었다. 그리고는 전부 다 하얀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내가 가져간 스카프를 둘렀다. 어디 여행을 갈 때마다 온갖 원피스를 챙기지만 한 번도 어깨를 드러내지 못하는 엄마가 답답해 미칠 것 같지만 내버려 두었다. 정신 건강에 해롭다.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바라보는 날 보고 엄마는 잠시 망설였지만 뭐 어떠랴.

근사한 호텔 내부
엄마 사진을 찍어주면 꼭 따라오는 재복이 이모


로비에서 모두 출발 시간을 기다리는데 나는 바쁘다.


“엄마, 엄마는 이리 와서 여기 서. 어, 거기 그리고 날 보지 말고 이 옷들을 보는 척 해.”

열심히 잡아준 컨셉대로 하지만 꽝

무척이나 세심한 지도를 해도 엄마는 매우 어색한 포즈를 취했다. 내가 전문 사진사처럼 엄마를 찍어주면 다른 이모들이 몰려와 엄마 사진을 찍어주지 못하고 곧 이동을 해야 해서 난 엄마를 데리고 이모들이 못 보는 곳으로 데려가서 사진을 찍었다. (이모들 10명이 각자의 휴대폰을 내밀며 최소 3장을 찍어달라고 하면 나에게는 30장이다. 못 할 짓이다)


양언니는 (가게 이름이 양언니 뭐시기라 모두 양언니라고 부름) 그 밤에 침대에서 무슨 대환장 파티를 열었는지 자다가 떨어져서 갈비뼈가 아프다고 난리가 났다. 의료시스템이 거의 없다시피 한 캄보디아에서 가이드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재복이 이모는 지난번 허리 수술을 할 때 먹다 남은 진통제를 혹시 몰라 가져왔다며 뭉텅이 약을 우수수 양언니 손에 털어준다. 초창기 쌍꺼풀 수술을 한 양언니는 아직도 자연스럽지 않은 눈을 힘겹게 뜨고 말했다.


“우리 집 침대는 내가 한 바퀴를 돌아도 안 떨어질 정도로 어엄-청 커. 그래서 내가 깜박했어…”

오토바이 택시 툭툭을 타고 이동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단체는 이동을 해야 해서 오토바이 택시 툭툭을 타는 곳으로 이동해 각자 번호가 지정된 툭툭을 탔다. 12월 한 겨울에 뜨거운 바람이 시원하게 스쳐 지나가는 캄보디아 거리를 보니 어제의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길거리에 널브러져 한가롭게 자는 개들, 노상에 좌판을 피고 손님이 있던 없던 한가하게 기다리는 사람들 캄보디아는 모든 게 느리고 느긋한 나라였다. 지독하게 가난한 삶을 불평하고 아등바등 사는 사람이 없으니 우리 눈에 초라한 그들의 삶일지라도 우리 누구의 삶보다 평안해 보였다.


“엄마, 이거 타니까 이제 관광 온 기분이네. 너무 좋다!!!”

“엄마도 딸이랑 이렇게 겨울에 더운 나라에 와서 있으니까 너무너무 좋아. 열심히 살아서 이런 데를 또 오고 싶은 욕심이 생겨.”


“그래, 나도 열심히 살 테니까 우리 건강하게 지내다가 또 여행 가자!”


“그래. 우리 열심히 사니까 이런 날도 오는구나. 그동안 힘들었던 순간들이 싹 가시는 느낌이야.”


삶을 감사하는 계기는 참으로 사소한 것이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나올 수 있었는데 나는 왜 이리 모질게 엄마를 혼자 두었나. 엄마를 그렇게 지독하게 외롭게 하면서도 나는 그 무엇도 손에 쥐지 못했다. 그동안의 세월을 나도 그저 살아내기 바빴을 뿐이다. 나는 앞으로 내가 삶을 사는 방식을 대폭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이 많아진다.

툭툭을 탄 소감 한 마디

딸이라는 이름의 한 사람이 옆에 붙어있을 뿐이건만 엄마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신나 보였다. 그룹보다 훨씬 앞장서 가는 엄마를 따라다니느라 바쁘다. 첫 번째 방문지에서 이미 대여섯 명의 여사님들이 그룹을 이탈했다. 오토바이 택시 툭툭에서 내리고 타고 이 자체가 무릎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아예 내리지를 못한 것이다. 그저 툭툭이만 타고 다른 일행들이 사원을 둘러보는 동안 부채질하며 기다리는 그 여사님들을 보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휴… 저 언니들이 나보다 대여섯 살 많은데 아예 못 움직이네… 지금 이것도 못하면 어째 그래… 엄마도 지금 다녀야 해. 나도 몇 년 안 남았어.”


평생 운동이라고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미용실 뒤편에 모여 고스톱운동만 하는 여사님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혀 운동을 하지 않아 근육과 뼈를 고스란히 삭혀버리고 그 삭아버린 몸을 수술과 약병들로 연명한다. 여행 내내 온갖 알약을 입안에 털어 넣는 그 모습이 기괴할 정도로 이상하게 보였다.


그 알약그룹여사들이 뒤처져 있는 동안 비교적 양호한 젊은 여사들 그룹은 가이드의 신속한 인솔 아래 뜨거운 태양 아래 포인트 지점으로 이동하며 인증샷을 정신없이 찍었다.


결국은 스카프 벗은 오여사
캄보디아에서 잘 사는 집 여식은 전통복장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
캄보디아가 다 내 꺼라는 엄마

“엄마, 여기 서. 지금 사람 없을 때 찍자.”


엄마는 또 우왕좌왕한다.


“아니, 팔을 시원하게 쫙 벌리고 오늘이 남은 인생의 제일 행복한 날인 것처럼 웃어. 캄보디아가 다 내꺼다!!! 그렇게…”


“캄보디아가 다 내꺼다!!!!!!”


엄마는 아이처럼 웃으며 두 팔을 활짝 벌린다. 자신만만하고 밝은 아이 같다. 한껏 부모에게 사랑받고 자란 아이처럼 엄마도 캄보디아에서 활짝 피었다.


엄마도 나를 보며 이런 기분이었을까? 더 행복하게 해 주고 더 웃으면서 살도록 내가 더 잘해야지, 그런 마음이었을까? 얼굴 한가득 웃음을 얹은 엄마의 얼굴이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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