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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프란 곽여사 Dec 28. 2023

엄마가 딸이 되고 딸이 엄마가 된다

아이처럼 행복한 엄마의 하루

톤레 삽 호수의 맹그로브 쪽배 투어

오늘 하루도 아침부터 온갖 약을 먹으며 시작한 여사님들은 일과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죽는소리를 한다.


‘아휴 나는 못 가. 호텔에 있을게, 응?’


‘아휴 다리가 아파죽겠어! 우리 같은 노인들을 데리고 뭘 그렇게 다니는 코스로 짰어?’


‘아유 이렇게 더운데 자꾸 이동하니 힘들어죽겠네, 오늘은 어디야…?’


짧은 시간 내 일차게 구성을 한 가이드는 평균 나이 70대의 여사들의 푸념에 진땀을 흘리며 웃는 얼굴로 성득을 한다.


‘아유 어머님 오늘은 하나도 안 걷는 코스예요! 배 타고 구경만 하면 돼요. 가세요, 네???’


가이드는 극한 직업이다. 오늘은 하나도 걷는 게 없다는 말을 들은 여사들은 여기저기서 아이고~ 하는 소리를 내며 관광버스에 올랐다.


오늘 가는 톤레 삽 (Tonle Sap) 호수는 베트남전 당시 메콩강 줄기를 타고 들어온 베트남 사람들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본국에서 받아주지 않아 할 수 없이 호수 위에 정착하며 만들어진 수상가옥촌이다.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100% 물 위에서 해야만 하는 이들의 삶은 참 고단해 보인다. 물결이 치면 치는 대로 흔들리는 모두 다른 크기의 집들은 참 위태롭고 평화로워 보였다. 비정상적으로 주거형태에 집착하는 우리들은 물 위에 흔들리는 이들의 삶이 정말 딱하고 안타까워 보였다.

쪽배 정착장에서 이인 일조로 배를 타면 사공이 배를 저으며 숲으로 이동한다. 뱃사공이 한국말을 좀 잘하면 이것저것 웃기는 말도 해주고 못하면 그저 조용히 배를 타고 다니기만 한다고 굿럭! 이라며 가이드가 웃는다.


우리 배를 담당한 사공은 한국말을 꽤 하는 편이라 엄마는 호구조사에 들어간다.


“나이가 몇이야? “


“30살이에요. 혼자 살아요. 맘 편해.”


“하하하하 그래 혼자 사는 게 맘 편하지.”


“여기 살아요?”


“네 여기 살아서 이거 해서 돈 벌어요. 이거 해서 먹고살아.”



각자의 배가 맹그로브 숲으로 들어가니 슬슬 뱃사공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겹치지 않는 동선으로 각자 이동하며 노래를 뽑기 시작한다. 우리 뱃사공도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엄마는 물 위에 조각배의 풍류가 마음에 든 듯 구성지가 노래를 따라 하며 한껏 목청을 높인다.

“지영아, 너 돈 좀 줘봐. 아휴 이 총각 팁 좀 주자.”


한 곡 시원하게 따라 부른 엄마는 풍류를 즐기면서도 노래도 일로 해야 하는 사공의 노고를 알고 있었다. 쓸려고 가져간 돈 엄마에게 $10을 건넸다. 캄보디아의 하루 일당은 $3-$4로 팁을 건넬 때는 하루 일당만큼은 주려고 노력했다. 이 사공 입장에서는 어느 손님이 타느냐에 따라 하루 일당을 버느냐, 못 버느냐가 갈리는 셈이다. 팁문화가 익숙하지 못하거나 애초에 이들의 수고에 감흥이 없는 사람들은 $1불을 받기도 한다. 팁을 받은 사공총각은 신이 나서 노래를 몇 곡 더 부른다.

어깨춤이 덩실 덩실 나는 엄마

딸이 돈주머니에서 돈을 턱턱 건네주니 엄마는 더 신이 났다. 어디를 가도 영어 하는 딸이 뒤에 버티고 서서 낼 돈이 있으면 내고 살게 있으면 사주니 너무 좋다고 박수를 친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엄마를 보면 나는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건강하게 살아서 돈도 더 잘 벌고 엄마를 데리고 다녀야 할 텐데…


부모가 없는 아이가 평생을 고생을 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엄마도 내가 없으면 끈 떨어진 연이라고 우스갯소리로 하던 말이 이제는 현실로 느껴진다. 내가 없으면 누가 엄마를 데리고 해외여행을 하고 누가 엄마의 사진을 찍어주며 행복한 시간을 추억할까.


내가 어릴 때 엄마가 나를 보는 마음이 이랬을까? 이제는 좀 이해가 간다. 그저 더 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모습. 고생해서 뭐라도 하나 해주면 그렇게나 뿌듯해하던 모습.


이제는 내가 엄마가 되어 딸 같아진 엄마를 엄마의 마음으로 돌보아줄 시기가 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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