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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프란 곽여사 Mar 15. 2024

화병이 있는 사람들이 달려야 하는 이유

내질러야 해소되는 화

화사한 캘리포니아 햇살

한국인에게 제일 많은 병은 고혈압 다음으로 화병이라고 생각한다. 억눌린 사회, 무한으로 경쟁하는 사회에서 기대치는 너무 높아치고 나의 자존감은 낮아진다. 인스타에서 스레드로 넘어오면서 화병을 해소하지 못해 속으로 골병든 사람들을 무척 많이 본다. 인스타에서 좋은 것만 보여주던 사람들도 스레드에서는 속으로 얼마나 곪았는지 털어놓는 일이 많기에 다양한 이유로 화병이 난 사람들을 많이 본다.


화병의 증상은 가슴이 갑자기 두근거리고, 얼굴이 달아올라 뜨거운 느낌이 들거나,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답답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6년 전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내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좀처럼 실패를 딛고 일어서지 못하는 남편과 하루에 수십 번을 싸우면서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심장이 고장이 났다. 덜컥거리는 심장,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은 마음 증상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화병’이라는 기사가 떠올랐다. 그래서 내가 화병에 걸린 걸 알았다.


화병의 해소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몸과 마음에 쇠심줄처럼 칭칭 감긴 감정들을 시원하게 내보내는 것이다. 남에게 악쓰고 나를 쥐어뜯는 방법대신 적당량 몸을 혹시시키는 방법으로도 충분히 길길이 날뛰는 화를 진정시킬 수 있다. 달리기를 처음 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실 골목길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뛰는 것도 굉장히 큰 에너지와 체력을 소모시킨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려 옆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이고 숨이 너무 차서 혼이 쏙 빠진다. 온몸의 근육이 통증을 호소해 잠깐 뛰고 오면 드러누워 한참을 쉰다. 아예 아무 생각도 못하게 된다.


당신이 얼마나 못난 사람이고, 시어머니에게 받는 내 처우가 얼마나 지독한 처우이고, 왜 내가 저 친구보다 못난 삶을 사는지 생각할 정신이 없다.


이렇게 한참을 씨근덕거리면 묘한 평온이 찾아온다. 시원하게 씻고 나오면 더욱 상쾌한 기분이 배가 된다. 땀 내서 씻고 나온 뒤 얼굴이 얼마나 화사해 보이는지 한 번 느끼면 나에 대한 사랑도 전보다 배가 된다. 물론 화병이 날 정도로 억울하고 화나는 사건이나 사람은 달리기로 해결하지 못한다. 그 사건도, 그 사람도 그대로 거기에 있다. 하지만 내 시선을 문제로부터 잠시나마 돌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것은 화는 작아지고 내 마음도 더 편안하다.


필라테스나 요가가 아닌 달리기를 권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이 발산의 쾌감이 수렴의 평온보다 먼저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씩씩대며 달리고, 빠르게 지나쳐가는 자연을 보고, 귀가 떨어질 듯한 혹한에 정신이 하나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내 독기는 사라지고 순수한 삶의 에너지만 남는다. 내 속에 화가 용암처럼 거꾸로 솟구치는 마당에 명상을 하고 조용히 자세를 가다듬는 운동을 하라고 하면 ‘내 속도 모르고…’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 마련이다. 고름이 꽉 찬 상처가 있을 때, 그 위에 향유를 발라주는 대신에 붓고 열이 나는 고름을 먼저 터트리고 난 뒤 그 위에 진정제나 연고를 발라주는 이치와 같다.


실제로 내가 처음 운동을 시작하고 약 한 달이 흘렀을 때 스스로 너무 차분해진 마음가짐을 자각하며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수년을 남편에게 서운하고 답답한 마음을 악귀처럼 퍼붓는 상상을 하며 한편으로는 시원함을 느끼고 한편으로는 그래봐야 내 입만 아프지, 하는 마음으로 수도 없이 삭히며 살았다. 그런데 달리기를 시작하고 헉헉대며 오르막길이 두 번이나 있는 코스를 매일 달리니 더 이상은 남편에게 퍼붓는 상상을 하지 않아도 속이 답답하지 않게 되었다. 화가 진정이 된 것이다.


내 뒤를 쫓아다니며 팀원에게 민폐 주지 말라고 쪽 주는 팀장, 사랑 없이 결혼해 애만 보고 사는 와이프, 주말마다 불러대는 시어머니, 부모의 기대치에 치여 원치 않는 삶을 사는 K자녀, 우리 모두에게 화병이 있을 수 있다.


달려보자.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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