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되었을 때 기성품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하여
얼마 전 유튜브에서 김이나가 한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에 한 번 봤던 영상인데, 그 때는 별 생각 없이 봤던 것 같다. 이번에 그 영상을 보고나서는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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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다. 그래서 책이나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고 눈물도 자주 흘리는 편이다. 잔인한 영화를 잘 못 보고 누군가 힘들었던 얘기를 하면 금세 감정이입이 되어버린다.
생각도 굉장히 많은 편이다. 그냥 많은 게 아니라 아주 많은 편이다. 어느 정도로 많냐면, 시험 기간 때 잡생각이 공부를 방해하는걸 막으려고 스스로를 ‘기계’라고 암시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고 나면 기숙사 방에 돌아와서 새벽 늦은 시간까지 일기를 쓰며 그 동안 하고 싶었던 밀린 생각들을 실컷했다. 생각을 많이 하는 이유는 어떤 현상을 마주하고나면, 그 부분에 대해 그냥 지나치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때로는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유하고 나면 조금이라도 얻는 것이 있기에.(사유의 끝이 혜안이 아닐때도 많지만)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꾸준히 쓰고 어떤 일을 겪고나면 반드시 성찰을 하는게 습관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장점이다.
그러나 장*단점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법이다.
감수성이 풍부하다보니 공부를 할 때나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감정이 이성을 방해해서 잘못된 판단을 할 때가 있었다. 때로는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 고심하는 모습과 눈물이 많은 모습들이 ‘여리고 약하게’ 비춰지는게 싫기도 했다.
모든 면에 걸쳐서 많은 생각을 하다보니 정작 우선순위가 높은 일에 그다지 많은 에너지를 쏟지 못해, 높은 효율을 얻지 못한 경험을 한 적이 빈번하다. 그리고 이것은 목표 달성의 어려움과 낮은 자존감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스물 한 살까지 이렇게 살다가 더 이상은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 같아보이는 친구들(혹은 유명인)을 보며 그들이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하는 판단, 행동 같은 것들을 보며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절제된 글이 특징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보며 그 사람처럼 생각해보고 그 사람 문체를 모방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결과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엄마가 굉장히 직설적이고 칭찬을 잘 안 하는 분이라서 엄마의 칭찬은 신뢰가 가고 굉장히 귀한데, 작년 내 모습을 보고 칭찬을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들로부터도 20대 초반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다가 최근 김이나의 영상을 우연히 다시 보고나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어떤 특징들 (감수성이 풍부한 면, 생각이 많은 면 등)이 일상에 방해가 될 정도면 덜어내는 것이 많지만 어쩌면 너무 거세시켜버렸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sns에서 누군가가 장문으로 쓴 글을 보았는데, ’오글거리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이 글은 이 사람이 지닌 감성으로만 쓸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용기가 부럽기도 했다.
평소 진지한 (때로는 오글거리는) 이야기는 주변 사람들과 자주 하는 편이지만, 그걸 글로 담을 때는 상당한 고민이 있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대다수는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오글거린다고 생각할까봐, 지나치게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까봐. 멋과 거리가 있는, 쿨하지 못한 사람같아 보일까봐.
그래서 다가오는 2024년도부터는 조금 더 ‘나’에 가까운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다. 그게 어떤 모양이든, 나만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벌써부터 단점으로 분류시켜 다림질하지 않고, 재능으로 살려보기로 했다. 물론 일상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균형을 이루며. 30대가 되었을 때 기성품 같은 사람이 아닌 충분한 매력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