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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ug 22. 2024

영화 리뷰 《세 번째 살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범죄  스릴러... 일까?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쩌면 영화의 스포일러라고 볼 수 있는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관람한 건 2017년 12월 말이었다. 영화에 끌렸던 가장 큰 이유는 감독이 무려 고레에다 히로카즈인데 제목은 《세 번째 살인》이었기 때문이다

감독님의 전작들을 싸잡아 이리 말해도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때까지의 히로카즈 감독님 영화를 관통하던  '잔잔한 감동이  있는 가족 이야기'는 솔직히 그렇게까지 내 취향은 아니었다.

영화 《세 번째 살인》 포스터

그런데 어두운 배경에 많은 생각을 품고 있는 듯한 주연배우 야쿠쇼 코지와 후쿠야마 마사하루, 그리고 히로세 스즈의 옆얼굴을 클로즈 업한 이 영화의 포스터는 강력하게 내 관심을 끌었다.


'인물 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압도하는 묵직한 이야기'와 '똑똑한 사람들이 똑똑한 말 엄청 많이 하면서 바보짓하는 이야기'.  이  두 종류가 나의 최애 스토리 양대 산맥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를 보고 생각했었다.
내 인생 탑 5 영화다!


그런데 웬 걸. 네티즌 리뷰나 평점은 감독님 영화 중 최하위 수준이었고, 꼬으고 꼬다 길을 잃었다 류의 리뷰들도 꽤 있었다.  


그래서 영화가 나온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브런치의  내 첫 글로 내가 사랑하는  이 영화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게 되었다.


앞으로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영화의 장르는 스릴러가 아니라 드라마라는 걸 잊지 말기 바란다. 제목이 《세 번째 살인》 이라 해서 이 영화를 보며 진짜 범인이 누구이고 미스터리의 전모가 어떻게 되는지 고민하려고 너무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는 얘기이다.

내가 보기에 감독님은 그러라고 이 영화를 만든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영화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30년 전 살인 전과가 있는 남자 미스미(야쿠쇼 코지)가 자신이 다니는  공장의 사장을 살해했다고 자백한다. 그의 변호를 어쩌다 떠맡게 된 변호사 시게모리 (후쿠야마 마사히로)는 형량이나 낮춰 보겠다는 생각으로 대충대충 이 남자를 만난다. 그런데 죽은 사장의 딸(히로세 스즈)은 자백한 남자와 전혀 다른 진술을 한다. 점점  미궁에 빠지는 사건, 그리고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마주하고 싶은 변호사.


많은 이들이 이 영화에 대해 감독조차 진실을 모르는 것 같은 미궁이라고 얘기한다.


그도 그럴것이  주인공 미스미는 사실의 이면에 있는 진실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고 끝까지 철저히 숨기기 때문이다.


영화 《세 번째 살인》 스틸 사진


하지만 속시원히 진실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이 영화의 주제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왜 태어났는지 모를 정도로 쓸모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한 사람이 '살인'이라는 불법적인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마지막으로 구원하는 이야기'.


 '속죄'와 '구원'.

내 생각에 《세 번째 살인》은 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젊은 시절 실수로 벌인 미스미의 첫 번째 살인. 그리고 그로 인해 평생 아버지를 부정하며 불행한 삶을  살게 된 미스미의  딸. 어쩌면 미스미는 에 대한 속죄로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른 게 아닐까.

영화 《세 번째 살인》 스틸 사진

그리고 불완전한 사법 시스템 안에서는 진정한 죄인을 처단한 이 남자를 사형시킬 수밖에 없기에 우리 사회는 세 번째 살인을 저지를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변호사 시게모리사형선고를 받은 감옥안 미스미의 마지막 면회 장면은 이 영화의 주제를 너무나 절묘하게 그려낸다. 단연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이자 개인적으로는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최고의 씬 이다.


교도소 면회장 유리에 겹치는 두 주인공의 표정.

변호사 시게모리가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미스미에게 혹시 이 사건의 진실은 이런 것이 아니냐 묻는다.

그러자 미스미는 미소 지으며 조용히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방금 당신이 말한 게 사실이라면

저 같은 사람도 누군가의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그게 설령 살인일지라도?"


내가 히로카즈 감독님께 홀딱 반한, 그리고 그분을 남들이 그리  불러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거장이라 서슴지 않고 부를 수 있게 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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