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서 엄마로 적응중입니다.
Dear. 나의 독자들에게
독박육아를 억울해하지 말고, 독점육아로 즐겨보자. 아이와 온전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감사하고 이런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출근해야 하는 남편에게 미안해하자. 그래도 가끔 마음에 폭풍이 찾아올 때는 휩쓸리지 않도록 항상 책을 가까이 두자. 현명하지 못한 나의 언행이 내 아이의 미래를 망치지 않도록 긴장하자. 실수하더라도 반성하고 뉘우치자.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나도 아이와 함께 잘 자랄 거라고 믿어보자. 아이로 인해 내가 늙고 쪼그랑할멈이 되는 것 같다는 슬픔에 잠길 때면 이 글을 떠올려보자.
❚ 재수강도 안 되는 육아 : 학점은 A+, 육아는 F
생후 4개월 이하의 영아에게 발작적인 울음과 보챔이 자주 발생하면 영아산통을 의심한다. 이유 없이 울고 보채고 달래지지 않으면 “네가 또 크려나 보구나”하고 짐작한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주기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는다. 신체적 성장 외에도 발달이 성장할 때도 엄마를 많이 찾거나 보채고 힘들어한다. 그 시기가 지나면 신기하게도 새로운 행동을 한다. 갑자기 걷거나 말이 늘기도 한다. 아이의 보챔 강도가 심해지면 가끔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나올 것 같은 위기가 오기도 한다. 이제는 큰 숨을 한 번 내뱉고 유난히 긴 하루도 잘 버틴다. 아이처럼 엄마도 성장통을 겪는다. 온전한 나에서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는 과정 중,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겨우 한 명 키우면서 그렇게 쩔쩔매니. 나 때는 말이야. 라떼 라떼~ 포대기로 하나 업고 양손에 한 명씩 손잡고 다녔어. 세탁기도 없이 찬물에 천 기저귀 빨았어. 지금처럼 애 키우기 좋은 세상에 살면서 우는 소리는 쯧쯧” 정말 맞는 말이다. 나보다 먼저 엄마가 된 모든 여자들은 정말 위대하다. 그 옛날과 비교하자면 지금은 아이 키우기 수월해진 세상이라는 생각도 격하게 든다.
그런데 왜 나를 비롯한 요즘 엄마들은 육아가 이렇게 힘든 걸까? 2021년의 엄마로서 대변해본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우리 세대 엄마에게는 인내와 희생보다 더 가치 있는 무언가가 있다. 할머니가 엄마였을 때와 내가 엄마가 된 지금은 너무나도 다르다. 엄마의 모습은 시대가 흐르면서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엄마가 될지 안 될지를 선택하는 세상이다. 엄마가 되기로 내가 선택했더라도 막상 육아에만 매달리다 나라는 존재가 점점 흐려질 때 마음에 큰 혼란이 온다. 우리 세대는 남녀가 평등하게 교육받고 똑같은 조건에서 경제활동도 했다. 하지만 출산 후에는 살림과 육아가 여자의 몫인 경우가 대부분이니 다소 억울한 면도 있다. 집안일과 육아는 부부의 공동책임이라고 말하는 사회지만 현실은 엄마의 책임이 8할인 가정이 훨씬 많다.
나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다. 자존감도 높고 학교생활, 직장생활 하면서 인정도 많이 받았다. 칭찬에 익숙하고 자신감 넘쳤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세수도 못 하고 아기 띠하고 우는 아이를 달래는 모습이 참 딱했다. 열심히 책도 읽고 영상도 보며 육아 공부를 해도 내 아이에게 적용되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육아는 최대의 노력으로 최소의 효율을 만드는 일이다. 계획대로 되는 날은 거의 없다.
어차피 집에서 살림하고 애 키울 거였다면, 왜 열심히 공부하고 힘들게 대학가고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했을까? 토익점수가 없어도 집안일은 할 수 있고, 어학연수 경험 없어도 애 키울 수 있는데 말이다. 출산 전, 열심히 살았던 노력들이 다 무의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는 깔끔하고 계획적인 성격이다. 정리 정돈이 되지 않은 광경을 참지 못한다. 하지만 육아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 다르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매일 매일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내가 살아 온 삶과 성격이 육아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줄은 정말 몰랐다. 육아는 내려놓음의 진리를 깨우치기 아주 적절한 경험인 것 같다. 이런 고난은 아마 내 또래 엄마들이 한 번 씩은 겪는 성장통이 아닐까.
이제 나는 그 암울했던 육아의 늪에서 조금은 빠져나온 것 같다. 점차 나와 아이를 분리하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나의 본모습을 찾아가는 노력을 한다. 산소마스크를 보호자가 먼저 착용하는 것처럼, 내가 건강하고 안전해야 내 아이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의 건강한 마음이 가정의 평화를 유지한다.
「 이지영의 엄마의 소신, 늙는가 젊어지는가 」
원래는 개미허리였어요. 임신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바람 불면 날아가는 가녀린 여인이었죠.
피부는 탱탱했고, 술배는 나올지언정 똥배는 없었는데
아이를 낳고 여자들은 신체에서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떨어지는 탄력은 늘었다 줄어든 배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죠. 피부도 푸석, 머릿결도 푸석.
살의 분포도도 달라져 없어야 할 곳에 붙어있고, 있어야 할 곳엔 없습니다.
하이힐도 포기, 면티 외의 옷도 포기.
머리는 묶지 않으면 아이에게 쥐어 뜯기고, 립스틱을 칠하고는 아이와 뽀뽀가 어려워요.
마스카라를 할 시간도, 지울 시간도 허락되지 않지요. 그렇게 살다 보면 그에 맞게 몸매도 적응을 해요.
더 이상 아이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지 않아도,
더 이상 뽀뽀를 애걸하지 않아도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늙는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아이를 키우며 다시 한 살을, 다시 세 살을 살아요.
다시 유치원을 다니고, 다시 학교를 다니지요.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이 새롭게 보이고 동요를 부르고 구구단을 외우면서 다시 어려집니다.
수학의 원리가 이랬구나. 역사는 실은 재미있는 거구나. 내가 참 과학에 무식했구나.
다시 자랍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젊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사춘기를 지나는 딸들을 보며 나의 사춘기를 되새김질하고 있어요.
설렘이 무엇이었는지, 패기 어린 분노가 어땠는지,
까르르 웃을 때의 폐활량을 떠올리며 함께 까르르 웃게 됩니다.
나를 늙게 만드는 것도 나를 젊어지게 하는 것도 내 아이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