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엄마로 나로 다시
엄마라는 이름으로 버티는 나에게》
하루하루가 아이들 위주로 돌아간다.
몇 시에는 뭘 하고, 몇 시에는 뭘 해야 하고,
모든 주제와 결정의 이유가 아이들일 때가 많다.
누가 보면 당연한 일처럼 보일 테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하루가 끝나면
뭔가 이룬 성취감보다
진이 빠지고,
허무함이 더 크게 밀려온다.
이걸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다.
말하면 왠지
‘투정처럼 보일까 봐’,
‘애들 싫다는 걸로 들릴까 봐’
더 조심하게 된다.
⸻
“엄마니까 해야지.”
“그 정도는 너가 해야지.”
“남편이 돈 벌어오는데, 너만 힘든 거 아니잖아?”
“너 정도면, 힘들어도 괜찮은 거다.”
그 말들이
나를 조용히 무너뜨렸다.
처음엔 그냥 넘겼다.
그다음엔 스스로도 그 말들을 내 마음속에서 되뇌었다.
그래, 이 정도는 내가 해야지.
나는 전업주부니까.
나는 아이들 엄마니까.
그러면서 점점
나는 사라졌다.
⸻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그 아이들 덕분에
간신히 ‘엄마’라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엄마 노릇조차 하지 않으면
나는 정말 형편없는 사람일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나마의 괜찮은 사람인 척,
어영부영 그 끈을 붙잡고 있는 느낌.
나는 나를 오랫동안 미뤄왔다.
애들 밥 챙기고, 재우고, 병원 가고,
낮잠 시간 틈타서 빨래 돌리고,
조금만 앉았다 싶으면 또 어딘가서 우는 소리.
그러다 보니,
**내 하루는 항상 ‘누군가를 위한 시간’**이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젠 떠올리려 해도 잘 모르겠는 나.
⸻
한때는 글 쓰는 걸 좋아했다.
단어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고,
밤새 낙서처럼 끄적인 문장에
내가 살아있다고 느꼈다.
그런 내가 지금은
하루가 끝나면
잠깐이라도 조용히 있고 싶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분명 내 안에 있는데,
그걸 들여다보는 것조차 무섭고,
그걸 보여주는 것도 두려웠다.
왜냐면,
남편도 힘드니까.
그는 매일 늦게까지 일하고,
몸도 마음도 고단하다.
그런 남편에게
내 허전함을 말한다는 건
그를 더 지치게 하고
나에게 실망하게 만들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그 빈 공간을 덮어두었다.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아무도 실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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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 가장 외로웠을까.
누군가가
“너 힘들지?” 하고
진심으로 물어봤으면 좋았을 그날들.
아이들 감기 앓을 때,
혼자 밤새워 간호하며
기댈 곳 없이 멍하니 앉아 있던 그 밤.
그게 너무 오래 반복되다 보니
이젠 기대는 방법도 잊었다.
눈물이 나도
그걸 삼키는 게 익숙해졌다.
⸻
그런데 이 글들을 쓰면서
나는 깨닫는다.
나는 아직 여기 있다.
희미하게라도
나를 기억해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나는 엄마지만,
엄마이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나는 아내지만,
그보다 먼저 나 라는 사람이다.
⸻
이 글은 나를 위한 기록이다.
내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조용한 저항이고,
잊고 살았던 나를 다시 꺼내는 회복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