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

by 산유화

손이 예쁜 편은 아니다. 여리고 길쭉한 여인의 손에 반해 손바닥이 두텁고 손가락이 짧은 데다 뼈마디가 굵다 보니 약소한 몸집을 가진 남자의 손이라 해도 믿어줄 사람이 있을 것만 같았다. 모양새는 어쩔 수 없는 못난이였지만 피부결만은 남부럽지 않은 이쁜이였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다행히도 어려서부터 공부를 꽤 잘한 덕분에 거친 일을 별로 하지 않아 보드랍고 매끈한 피부만은 지킬 수 있었다. 게다가 여자들이 의례 겪는 주부생활도 없다 보니 손에 물 묻힐 일도 별로 없었고 그 흔한 주부습진 한번 생긴 적이 없었다. 우유 같은 내 손피부 앞에는 오직 세월이란 적 밖에 없었다.


손이 거칠어질 세라 부지런히 핸드크림을 바르며 세월에 대적해 왔건만 어느 순간부터 손등에 검은빛을 띤 반점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고 하얗던 피부빛마저도 서서히 광채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변함없이 고울 것만 같았던 내 손피부도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되지 못했다. 어쩌다 눈길이 손에 닿으면 세월의 씁쓸함 같은 것이 조용하던 마음속에서 물결처럼 퍼져 나간다. 손에 지워지지 않는 나이의 흔적이 깃들수록 일렁이는 물결 속에서는 또 다른 손이 떠오르며 내 손과 겹쳐졌다. 그건 다름 아닌 엄마의 손이었다.

엄마의 손은 거칠었다. 손바닥도 손등도. 손등은 상처 자국과 검버섯으로 거무칙칙했고 손바닥은 두텁게 박힌 굳은살과 아물 여유가 없는 갈라 터짐으로 꺼칠꺼칠했다. 단단하게 굵어 버리며 튀어나온 손가락 관절도 예뻤을 손의 모양새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느꼈던 엄마의 손은 그랬다. 엄마의 다리를 베고 누운 내 얼굴을 쓰다듬던 손이었다. 대학만 가면 집에 자주 안 갈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내가 집 떠나 객지 생활을 한지 한 달 만에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가까스로 참아왔던 눈물이 엄마의 손이 닿는 순간 통쾌하게 경계를 넘었다. 엄마의 손은 볼에서 머리카락으로 넘어가며 꺼끌꺼끌한 촉감을 이어갔지만 포근한 이불속처럼 따뜻하고 편안했다.


그 후부터 집에 돌아갈 때마다 가방 속에는 항상 핸드크림이 들어있었다. 누가 탐내도 몇 개가 들어 있어도 그건 모두 엄마의 것이었다. 그만큼 엄마의 손은 거칠었고 거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연약한 여자로 살 겨를이 없었고 엄마의 손도 덩달아 호강할 여유를 잃었다. 맏며느리인 엄마의 손은 늘 바빴다. 하루하루 무한하게 이어지는 세월 속에서 엄마는 그 손으로 할머니를 모셨고 고모들과 삼촌 시집 장가보냈으며 세 아이를 키워냈다. 임시직이었지만 교사 일에 열중하셨던 아버지의 볼품없는 월급으로는 집안을 지탱하지 못하자 엄마는 농사일로 거칠다 못해 투박해 보이는 손으로 집안의 경제 기둥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시도 끝에 떡장사로 정착한 엄마는 사시사철 계절에 어울리는 떡을 손으로 빚으며 세 아이를 대학교로 보냈다. 그러는 사이 떡의 영원한 동반자인 물은 엄마 손의 거칠함 사이사이로 스며들며 좋았던 손끝 피부 사이를 짝짝 갈라놓았다. 손끝으로부터 시작해 서서히 손가락으로 손등과 손바닥으로, 갈라 터짐은 조금씩 조금씩 영지를 확장하며 손 전체를 잠식해 나갔다. 물을 끊지 않는 한 핸드크림은 물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며 엄마의 손을 돌려놓을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물을 끊는다는 건 떡을 포기한다는 것과 다름없으니 핸드크림 패배의 운명은 애초부터 정해져 있었다. 엄마의 손은 그렇게 나이를 앞지르며 돌이킬 수 없는 자아 파괴적인 길로 들어섰다.


엄마의 손은 곧바로 엄마의 삶이었다. 어느 소설에서 “그녀의 손바닥은 뼈와 살로 이루어진 신체기관이 아니라 한 사람이 지나온 생애를 기록한 기호인 듯 무슨 말을 걸어오는 것 같기도 했다.” [1]라는 구절을 보는 순간 기억 속 깊이 감춰두었던 꺼끌꺼끌한 촉감이 되살아나며 엄마의 손이 떠올랐다. 엄마의 손도 누군가의 손에 쥐어지면 그럴 테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엄마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드린 적이 없었다. 오히려 외면했다. 그 손이 싫어져서. 내 손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다 보니 자신을 위할 줄 모르는 엄마 손이 안쓰러웠고 오로지 자식들과 남편을 위해 일해 온 엄마의 손이 미웠다. 밉다 못해 화가 나고 싫어졌다. 엄마의 손도 이젠 자아 파괴적인 길에서 벗어나 자아 추구의 길로 전향해도 되련만 그랬으면 참 좋으련만 엄마는 직진 밖에 모르는 듯했다. 오랜 세월을 지나오며 길들여진 엄마의 마음과 엄마의 손은 이미 습관처럼 한눈 파는 법을 망각했다. 나는 그런 손을 갖고 싶지 않았다. 엄마처럼 자신의 손이라는 걸 잊은 채 살아가는 삶도 싫었다. 시대만을 탓할 수 없는 엄마의 선택에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혼자 마음 편하게 외면해 왔다.


지긋한 나이가 되자 엄마의 손은 오히려 고와졌다. 검버섯도 여전하고 손등 피부 색도 햇빛에 탄 것처럼 까맣지만 갈라 터졌던 곳들이 아물며 손 전체의 피부가 보들보들하고 매끈해졌다. 떡장사를 그만두니 핸드크림 없이도 자연스럽게 여자다운 손을 되찾았다. 물과의 치열한 전쟁에서 핸드크림이 설 자리는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자식들의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이 엄마에게는 핸드크림이라는 걸 전에는 몰랐다. 엄마의 삶을 부정했던 내가 한없이 작아지며 점차 커져가는 미안함에 매몰되었다. 엄마는 그렇게 헌신적으로 가족을 지켜왔지만 그 지킴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미안함보다 고마움이 앞섰다. 이 세상의 고초를 겪으면서야 엄마만큼 사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엄마와 딸이 아닌 같은 여자로서 엄마의 삶을 머리 아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뒤늦게 고와진 엄마의 손처럼 내 고마움도 긴 여정을 거치며 뒤늦게야 도착했다. 늦은 만큼, 늦은 만큼의 미안함만큼, 고마움도 날로 깊어 갈 것이다.


엄마의 손은 아름답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가끔은 꿈을 꾼다. 전처럼 엄마의 다리를 베고 누워 편안하게 잠을 자는 꿈을. 현실 속이라면 다 큰 애가 뭐하는 짓이냐고 핀잔을 주시면서도 얼굴에는 분명 싫지 않은 미소를 지을 것이다. 엄마의 그 미소 이젠 내 손으로 지켜드리고 싶다.



[1] 조해진 장편소설 <여름을 지나가다>에서 인용.




2022년 5월 6일

산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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