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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Mar 20. 2023

어떤 죽음을 준비하고 있나요?

사일런트 브레스, 미나미 쿄코 지음

2020년에 구매한 <사일런트 브레스>를 2023년에야 읽었다.     

내가 아는 최고의 마케터이자 세일즈맨 북스피어스 김사장님께 낚여(! 긍정적 의미임) 구매한 책이었다.     

01

일단 저자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소설.     

남편의 전근지인 영국에서 출산과 육아를 계기로 의학을 독학. 귀국 후 33세 나이에 도카이 대학 의학부에 입학해 의사가 됨. 그 후 내과 의사로 일하며 문화센터 소설교실을 다니고 이를 계기로 의료소설 집필, 55세에 발표한 <사일런트 브레스>로 화려하게 작가로 데뷔.     

‘뭐니, 뭐야, 이 사람?’

약간의 호기심과 질투심과 함께 책을 구매했다.      


02

당시의 나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이 피부로 와닿는 상황이었다. 투병 중인 가족과 친구를 지켜보며 죽음이란 어쩌면 바로 내 곁에 있을 수 있단 생각을 했다. 엄마의 파킨슨병 진단은 영원할 것 같은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자각하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죽음’이 주인공(?)인 소설은 나를 끌어당길 수밖에. 하지만 오랫동안 첫 장을 펼치지 못했다. 어떤 형태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까?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03

사일런트 브레스는 인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내게는 조금 낯선 개념의 병원 방문클리닉. 그곳의 의사인 린코를 중심으로 린코가 만나는 환자들이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신기하게도 엄청 무겁거나 서글프게 다가오진 않았다. 다만, 재택 진료 환자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던 린코가 어머니를 설득해 수 년째 요양병원에 있는 아버지를 집으로 옮기고, 집안 곳곳 건강하던 시절 아빠가 남긴 흔적들과 툭툭 만나는 대목에서는 결국 한참을 흑흑거렸다. 인생의 종말기에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 미리 기록해 놓는 <엔딩 노트>라는 개념을 접한 페이지는 다음에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접어두었다.     


잘 산다는 건 결국 잘 죽는다 것이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보다 곱절은 어렵겠구나 생각했다. 반성하고 개선하고 수정할 수 있는 ‘사는 일’과 달리 죽는 일은 그저 매일 조금씩 준비해 두는 것 외엔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

“안압이 정상 수치보다 많이 높아요. 시신경도... 가능한 한 빨리 큰 병원으로 가 보세요.”


진료의뢰서를 받고 돌아오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쮸 라이딩은 누가 하지?’였다. 녹내장이란 병에 대해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면서는 '볼 수 없다면'에 대해 생각했다. 


- 기억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 무엇을 더 자주 더 많이 봐 둬야 할까?

- 우리 딸 학사모 쓴 모습은 꼭 보고 싶은데... 

      

사일런트 브레스라는 제목 뒤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덧붙여져 있다.

“당신은 어떤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나는 어떤 엔딩노트를 쓰고 싶은 걸까? 북스피어 김사장님의 근사한 책 홍보글에 참으로 잘 낚였구나. 덕분에 잘 사는 동시에 잘 죽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작성할 나의 엔딩노트에 무엇을 쓰고 싶은지, 자주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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