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파멸의 렌티큘러, 천만 영화의 매스큘리즘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읽기

by 김믿음

1. 박찬욱의 주제의식에 관하여

영화 「박쥐」의 아트포스터


규범과 질서는 추방과 격리의 메커니즘으로 탄생하고 재생산된다. 쓰레기, 오물, 시체, 병리적 현상에 대한 생리적 거부감은 정상신체와 위생성의 규범과 질서를 구획하지만, ‘더럽고’, ‘위험한’ 것을 추방하고, 격리하는 과정에서야 정상성은 비로소 그 의미를 확보한다. 마찬가지로 법과 윤리, 믿음이나 신뢰, 계급 또는 명예를 둘러싼 규범과 질서도 결국 ‘우리는 무엇을 추방할 것인가’란 질문에 대답할 때야 의미를 갖게 된다.


살인, 복수, 신성모독, 불륜, 동성애, '불법체류자', 근친 간 에로시티즘, 혹은 ‘통일의 물꼬를 트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동지애. 박찬욱의 서사는 그런 ’추방되어야 할’, ‘더럽고’ ‘위험한’ 위태로운 위반으로 구원을 찾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의 인물이 저지르는 일탈은 언제나 구원을 위한 정상성과 선악의 경계에 대한 도전이면서, 필연적으로 파멸로 귀결할 자초위난으로 보인다. 다만 의도적으로 과장된 미술적 연출과 특유의 서스펜스가 담긴 스토리텔링은 영화의 독자를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위험한 일탈의 공모자가 되게 만들고, 바로 그 지점에서 박찬욱의 영화는 탁월함을 빛낸다.


「어쩔수가없다」는 가족을 위해 살인을 감수할 수 있는가 질문한다. 만수(배우 이병헌)는 가족을 위해, 아버지의 실패란 트라우마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파멸로 귀결할 수 밖에 없는 위반을 결심한다. 실직한 만수는 재취업을 위해 사람을 죽이기로 한다. 만수는 베트남 참전 용사인 아버지가 '공산주의자'들을 죽였던 총을 오래된 장식장에서 꺼낸다. 아버지와 가족이란 주제가 으레 그렇듯 「어쩔수가없다」는 매스큘리즘(Masculism)을 경유한다.



2. 박찬욱 서사의 남성주의에 관하여

「어쩔수가없다」의 미리(배우 손예진)를 중심으로

영화 「헤어질 결심」의 서래(탕웨이), 해준(박해일)


남성주의적 서사가 재현하는 여성은 통상적으로 ① 남성 인물의 위반을 촉발하는 타자이거나 남성적 질서를 파괴하는 균열 그 자체이거나 ② 위기의 남성을 구호하는 어머니-마리아 혹은 그 대립 쌍으로서 그 남성이 지켜내야 할 순결한 희생자를 수행한다.


헤어질 결심」 의 서래는 불법입국한 중국인이자 살인의 혐의를 받는 피의자로서 해준의 남성-정상 세계를 ‘완전히 붕괴’하는 팜므파탈의 역할이었다. 서래는 남편 기도수를 죽이고 이를 변사 사건으로 숨기기 위해 해준을 무너트린다. 잠도 못 자고, 벽에 내 사진 붙여놓고 오로지 자기 생각만 하게 만드는 균열 그 자체이다.


반면 「어쩔수가없다」 의 미리는 따뜻한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수행하는 마리아의 역할을 맡았다. 미리는 과거 만수가 알코올 중독에 빠져 미리의 아들이자 만수의 양자인 ‘시원’을 폭행했을 때도 가정을 지켜냈듯이, 이번에도 만수가 저지른 살인의 죄를 고발하고 심판하는 대신 가족의 균열을 봉합하기로 한다.


만수가 지난 몇 주간 수 천km를 이동하고, 이상하게 밤늦게까지 장화를 신고 다니는 걸 보면서도, 장식장에 진열된 참전용사 아버지의 권총이 바뀐 것을 깨달았을 때도, 미리는 네가 무슨 짓을 했더라도 나도 같이 한 것이라며 그 사후 공모를 선언한다.


「어쩔수가없다」 中 이미리(손예진), 유만수(이병헌)


시원은 실직한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를 돕는다는 핑계를 들어 동호와 함께 동호 아버지의 핸드폰 판매점을 턴다. 동호 아버지는 몸에 문신이 가득한 '양아치'이지만, 나름 성공한 영세사업가이기도 하다. 만수는 그의 남성-됨에 은근한 열등감을 느낀다. 만수네 가족은 먹고 살기 위해 집을 동호 아버지에게 넘기기로 했다. 더욱이 그 집은 만수가 강박적으로 집착하던 생가(生家)였던 만큼, 만수는 자존심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미리는 형사처분으로부터 시원을 보호하기 위해 동호 아버지에게 섹슈얼한 신호를 보낸다. 미리는 여성-희생자로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이지만, 그와 동시에 가족을 위해서 윤리적 경계를 위반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남성주의 시스템의 공모자이기도 하므로 이러한 모습은 마리아적 역할과 상반되지 않고, 되려 마리아적 이미지와 팜프파탈의 이미지가 본래 여성을 재현하는 하나의 장치임을 보인다.


만수의 살인을 눈치 챈 시원에게 미리는 거짓말을 한다. 아빠가 사과나무 잘 크라고 통돼지 한마리를 통으로 묻은 거야. 그렇게 아들 시원은 만수가 사과나무 밑에 묻은 고시조(배우 차승원)를 모른 척할 수 있게 되고, 미리는 만수의 알리바이가 된다.


그리하여 미리의 이러한 ‘봉합’은 만수의 아버지-만수-시원 사이의 ‘남성 연대’가 완성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흡연을 눈감아주고 아들은 아버지의 살인을 침묵으로 동조한다. 요컨대 「어쩔수가없다」는 남성의 폭력적 일탈이 ‘위대한 어머니’의 희생과 공모를 거쳐 ‘숭고한 부성애’로 구성되는 모습을 재현한다.



3) 「어쩔수가없다」에 대해 생각하기

「어쩔수가없다」 中 만수, 아니 '아라'가 범모를 죽이고 돌아왔을 때


만수의 구원을 위한 일탈과 위반의 서사아버지의 자살이란 트라우마에서 시작된다. 만수의 아버지는 ‘베트남 참전 용사’로서 국가와 민족의 수호자로, 가족을 위해 축산업에 헌신하는 가부장으로 호명된다. 그는 구제역으로 돼지 2만 마리를 제 손으로 묻고 온실에서 나무에 목을 매고 목숨을 끊는다.


다만 만수는 미리가 말하듯 멋지고 잘생겼다. 미리의 남편이자 아들 시원과 딸 리원의 아버지로서 정상가족을 이뤘다. 아버지의 채권자들이 빼앗아간 집도 되찾아왔다. 아버지가 자살한 온실에는 만수가 사랑하는 종이가 되는 소중한 나무-상징들로 가득하다. 그제서야 만수는 말한다. 다 이뤘다.


「어쩔수가없다」 中 만수, 미리, 시원(배우 김우승), 리원(배우 최소율)


아버지의 파멸이 만수에게 반복되는 걸까. 제지 공장이 더는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동화 설비와 AI가 사람을 해고한다. 미국 자본은 만수와 그의 동료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는다. 해고는 살인이라 소리치던 만수는 해고된다.


만수는 구원을 위한 의식(Ritual)을 벌인다. 동료를 위해 앞장서 항의하던 만수는 이제 동료를 죽이기로 한다. 가족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재취업을 위해 자신처럼 종이를 사랑하는 제지 전문가 동료이자 경쟁자인 세 사람을 죽이기로 한다.


「어쩔수가없다」 中 유만수(이병헌), 구범모(이성민)


첫 번째 제물은 알코올 중독자인 구범모. 종이와 음악, 그리고 아내 '이아라'를 가슴 깊이 사랑하지만 범모는 처절하게 무기력하다. 술을 마시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 제지 전문가로서 재취업하지 못한지 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에게 계획은 없다. 아라는 그에게 음악 카페를 차리든, 집을 팔든 제발 돈을 벌라며 구박한다. 이런 그를 아라가 사랑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만수는 범모를 죽이지 못한다. 끝없이 범모를 동정하고, 아라의 외도를 범모가 목격하지 않게 노력한다. 결국 범모는 만수 자신과 다르지 않으니까. 만수는 범모처럼 종이 전문가이자, 알콜 중독자이고,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는 사람이다. 다만 범모는 만수가 극복해야 할 자신의 실패한 과거이자, 9년간 금주하며 억눌러 온 무력함의 알레고리다.


만수는 결심했고, 아라는 외도를 들켰다. 이 살인은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흐르는 가운데, 만수의 총을 빼앗은 아라가 범모를 죽이며 끝난다. 아라는 말한다. 총알 2발 맞는다고 죽어? 다만 범모의 남성성은 그 전에 이미 죽었다. 범모의 우습고 슬픈 죽음 그리고 만수가 머뭇거리는 이미지는 고개숙인 남성성에 대한 애도로 읽힌다.


「어쩔수가없다」中 고시조(배우 차승원)


두 번째 제물은 고시조. 시조도 마찬가지로 실직한 제지 전문가이자 만수와 닮은 '딸바보'이다. 시조는 구두 판매원으로서 딸 아이에게 용돈을 쥐어주는 아버지면서, 한편으론 손님에게 무릎을 꿇고 신발을 신겨줘야 하는 소시민이다. 만수는 리원의 이야기를 하며 시조를 연민한다. 시조 또한 범모와 같이 거울 속의 자신이니까.


그러나 시조가 죽어야 만수가 산다. 만수는 시조를 죽이기 전에 끊었던 줄담배를 태우면서 '죄송합니다'를 되뇌인다. 죄책감에 구역질까지 한다. 자동차가 고장났다는 만수의 차를 손보는 시조를 아버지의 권총으로 죽인다. 범모를 죽인 것은 아라였으니, 만수의 첫 살인이다.


만수는 시조의 얼굴만은 끝까지 두 눈으로 온전히 마주하지 못하지 못한다. 시체를 전기톱으로 자르려다 포기하고, 사과나무 아래에 묻기로 한다. 마치 어떤 나무 뿌리처럼 시조는 철끈에 단단하게 묶여 매장된다. 이것도 수목장일까? 만수네 반려 강아지인 시투와 리투는 냄새를 맡고 계속 그 위주를 맴돈다.


만수는 경찰이 찾아오자 체념한듯 모든 걸 말하겠다고 한다. 경찰은 아들 시원의 절도 혐의를 묻는다. 아라는 범모와 시조의 원한관계를 지어낸다. 만수는 이 계획이 성공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만수가 죽인 건 자신의 양심이었고, 그는 차차 괴물이 된다.


「어쩔수가없다」 中 최선출(배우 박희순)


마지막 살인은 만수의 최종적인 파멸을 보여주는 의식이다. 최선출은 만수가 재취업을 위해 무릎을 꿇고 빌던 경쟁업체 제지 공장의 관리자이다. 선출의 회사는 일본 수출의 판로를 개척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번듯한 가족도 있고, 별장도 있고, 낚시도 하는 선출을 만수는 부러워 한다. 그러니 선출을 죽여야 한다.


만수는 먼저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친다. 어쩔 수가 없다. 만수는 중얼거리듯 어쩔 수가 없다고 반복한다. 알콜홀릭 선출의 마음을 사기 위해 9년 간의 금주를 깨고 폭탄주를 들이킨다. 그리고 만수는 펜치로 고통스러웠던 썩은 어금니를 뽑아내면서 완전히 붕괴된다. 선출은 만수에게 마음을 열고 그의 재취업을 주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만수는 선출을 죽이지 않으면 범모와 시조의 희생을 헛되이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때마침 미리가 전화를 건다. 당신이 어떤 짓을 하든 나와 같이 한 일이라는 축복 같은 말이 지나간다. 만수는 선출을 나무를 심듯 땅에 묻는다. 땅에 몸이 묻혀 얼굴만이 겨우 드러난 선출의 입에 음식과 술을 붓는다. 취중 구토로 인한 질식사로 위장한다.


만수는 취업에 성공한다. 가족을 지켜냈다. 자신이 아끼던 집을 팔 일도 없어졌다. 만수의 의식이 완성된 것을 축하하듯 리원은 처음으로 첼로 연주를 성공적으로 해낸다. 미리와 시원은 그 연주를 벽 넘어로 듣고 감탄한다. 그러나 만수는 모든 것을 잃었다. 자신과 꼭 닮은 동료들을 셋이나 죽였다. 제지 전문가로서 쓸모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했지만, AI와 자동화 설비가 대체한 공장에 사람은 쓸모없다.


다만 만수는 여전히 시스템이 이미 검수를 마친 종이를 두드리며 재차 불량을 점검한다. 이런 시대에도 관리자 한 명은 필요하지 않냐면서 자신을 굽힌 대가이다. 영화는 종이를 만들기 위해 산림을 파괴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만수가 그렇게 외워 따라하던 선출의 '친환경적 제지 기술'에 대한 말이 무색하게 떠오른다. 아버지의 트라우마를 대물림하는 일을 피했다. 가족의 해체란 비극도 면했다. 그러나 만수는 공허하다.



4. 그래서 박찬욱은

「어쩔수가없다」中 만수가 재취업을 위해 마지막 면접을 치르던 때

「어쩔수가없다」는 가장의 숭고한 남성주의적 구원 서사와 그것을 위한 위반과 파멸의 기록을 담은 렌티큘러이다. 가족을 위해 기꺼이 괴물이 된 아버지의 부성애에 대한 연민을, 만수 그리고 다른 가족의 온실 속에 숨겨진 파멸과 공허를 우리는 함께 목격하게 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그렇듯 이 양가성이 그의 탁월함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살펴봤듯 「어쩔수가없다」의 남성주의적 혐의는 무고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러한 재현이 문제적이라 지적하기 위해선 ① 그 재현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② 나아가 영화적으로 아름다운 작업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계속 드는 생각은, 아무래도 괴물이 된 아버지와 마리아적 어머니이란 익숙하고 보수적인 코드를 택한 것은 박찬욱 감독이 천만 영화란 꿈(?)을 위해 상대적으로 쉬운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싶다.


감독님은 JSA도, 올드보이도, 박쥐도, 아가씨도, 헤어질 결심도 만든 사람 아닌가요... 영화가 괴상하게 예쁜 건 여전해서 마음에 들지만요... 아쉽게도 좀 지루하단 생각이 드네요.


별점 ★★★★ (4.0/5)

한줄평 음주는 질병입니다.



(1) 박찬욱 영화에서 인물들이 서로의 언어를 닮아가는 순간들을 사랑하지만, 리원의 반향어와 만수가 관자를 두드리며 같은 말을 반복하는 모습이 겹치는 지점은 어떻게 말을 얹어야 할지 고민이 크다.
(2) 음... 나는 헤어질 결심을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 서래가... 허리가 꼿꼿해서...?
(3) 고시조도, 기생충의 문광도 수목장을 한 게 아닌가 싶어서, 기생충의 기택은 계획이 없었지만, 만수는 완벽한 계획이 있었던 게 재밌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