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때 강원도의 어느 마을에서 살았다. 90년 대 초반 서울도 아닌 그 마을에는 '학원'이라든가 '학습지' 같은 사교육들이 좀 뒤늦게 들어오기 시작했고, 좁은 동네였기에 그 주변의 내 또래 아이들은 거의 비슷한 사교육을 받는 것이 어떤 정해진 수순과도 같았다. 안 다니면 "왜?"라고 물을 정도로.
당시, 그곳에는 작은 미술학원이 학교 앞에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어느 남자 선생님이 원장이었고, 그 아래에 후배인가 하는 또 다른 남자 선생님이 한 분 더 계셨다. 원장 선생님은 수채화를 전공하였다 들었다.
나와 오빠는 그곳에 함께 등록하여 그림을 배웠다. 온 동네 아이들이 거의 다 다닌 것 같다. 처음 그림을 배울 땐 내가 오빠보다 스케치도 잘하고, 조색도 잘했다. 오빠가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 다니다 보니, 오빠의 실력은 쭉쭉 향상되는데 내 실력은 제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두 학년 위인 오빠와 어느 사생대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오빠는 '교육부 장관상'을 수상했고, 나는 '장려상'을 받았다. 다른 대회에서도 오빠가 '최우수상'을 수상하면 나는 '입선'이었다.
스케치도 잘했고, 밑색도 잘 칠했는데 희한하게 마지막에 그림이 모두 번지며 칙칙한 색으로 마무리되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성격이 급해서'라고 했는데 그 이유도 있었겠지만 나 스스로나 가족들도 '재능이 뛰어나지는 않다.'는 것에 동의하며 미술학원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못내 아쉬움은 있었다.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미술학원은 그만두었지만 그래도 내 미술 실력이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미술학원을 금방 그만두지 않고, 더 오래 배웠다면 더 잘하지 않았을까? 학교에서는 그림을 꼭 2시간 안에 마무리하라고 하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그린다면 더 잘 그리는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그래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미술 실기에서는 실력이 좀 더 드러났다. 그땐 하나의 과제를 몇 주간 그리거나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과제였든 미술실기는 항상 만점이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학교 성적이 아주 좋았기에 미술보다 더 잘하는 것은 바로 '공부'라고 생각했다. 미술시간이 나에게는 재미있는 시간이라는 것, 딱 그 정도까지였다.
나는 교육대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공립 초등교사로 재직했다. 전공과목은 '과학교육'이었다. 고등학교 때도 자연계열 선택이었고,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다. 학사 학위를 받고, 임용고사에 합격한 후 발령을 받은 뒤에는 교육대학원에도 진학하여 과학교육 석사학위도 취득했다. 그때는 '미술'은 모두 잊어버리고, '과학'에 심취해 있었다.
석사 학위 논문을 쓰고, 우수 논문상을 수상했고, 이제는 과학 전문 교사의 길을 걷게 될 것을 상상했다. 그러나 내가 근무하는 학교 그 어느 곳에서도 과학 전담교사는 필요로 하지 않았고, 교육청에서 하는 과학교육 관련한 일들은 공식적인 모집으로 충원되기보다는인맥에 따라 서로 아는 사람끼리 연결되어 있었고,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박사학위를 따볼까도 생각했으나 시간과 돈의 제약이 컸고, 파견이 가능한 교원대는 내가 원하는 학교가 아니었다.
학교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고, 많고, 박봉이었으며, 감정 소모를 많이 해서 금방 지쳤다. 방과 후에 동료 선생님들과 동호회도 해보고, 배드민턴도 땀 흘리며 열심히 쳐봤다. 맛집도 찾아다니고, 수다도 열심히 떨었다. 그러나 더 이상 '삶의 재미'를 찾기는 어려웠다.사는 것이 반복적이고 지겹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나 요즘 화실에 다녀. 퇴근하고 저녁에."
친하게 지내던 동료교사 중 한 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언니, 나도 배울 수 있으면 다니고 싶다. 구경가도 돼?"
"그래! 선생님께 여쭤볼게."
그곳은 다니기 좋은 위치에 있었고, 화실 선생님은 한국화를 전공하신 분이었는데 수채화도 잘 그리는 분이었다. 젊은 시절 지방 방송에서 MC를 맡아하신 적도 있으시다는 선생님은 40대의 아주 아름다운 여성분이었고, 그림도 외모만큼이나 아름답게 그리는 분이었다.
화실이 있는 동네는 내가 어릴 때 다니던 초등학교 앞에 있었다. 정겹고 오래된 아파트에 고목들이 자라는 사이에 낡아빠진 상가가 무너질 듯 있었는데 그 상가 외벽에 그림을 그리고 데크를 만들어 화분을 기르고 계셨다. 내부도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꾸며서 감성이 넘쳐났다.
구경을 간 그날, 당장 다니기로 결정했다. 일주일에 한 번 그림을 그리러 갔다. 선생님이 없어도 아무 때나 와서 그림을 그려도 좋다고 했다. 저녁을 함께 먹기도 하면서 퇴근 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그림을 그렸다. 화실에 가지 않는 날에도 집에서 혼자 그림을 더 그리기도 했다. 퇴근 후 시간이 점점 기다려졌다. 일이 없을 땐 작은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스케치했다. 방학 때는 낮에 다른 회원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화실 선생님과 친분이 있으신 분들이었다. 분위기가 정말 화기애애했다.
여기에서 연필 깎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연필 소묘로 정육면체, 원통, 구 같은 것도 그리고, 정물화로 주전자랑 락스통도 그렸다. 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첫 수채화 작품의 주제는 '튤립'이었다. 두 번째로 그린 것은 '루드베키아'였다. 화실 회원들의 작품을 모아 동네 작은 갤러리에서 회원전을 열었다. 시청 로비 전시회에 초청되어 전시되기도 했다. 지금 보면 잘 그린 그림이 아니었지만 당시 내 눈에는 참 멋졌다.
인생은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그에 맞게 흘러가는 법이 없다. 갑자기 계획에 없던 화실을 우연히 알고, 다니게 된 2015년. 그것이 변화의 계기가 될 줄 몰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