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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ihnK Apr 26. 2024

나는 초등교사를 그만두었다

20. 아름답지 못한 교실-3

OOO이를 그대로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학부모는 상담주간에도 아무런 신청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어떤 학교 생활을 하는지 관심이 없는 걸까. 무관심한 학부모님이기에 그 아이에게 내가 똑같이 무관심해야 하는 걸까? 고민이 깊지만 하루 일과는 짧았고, 방과 후 아이들은 방과후학교 수업을 듣거나 학원을 가기에 담임이 개입할 여지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상담 시간을 따로 마련하기에 아이들은 상당히 바쁘다.

 

OOO이는 키가 작은 편이 아니었고, 나는 랜덤 프로그램으로 아이들 자리를 배정했었다. 한 번 짝을 했던 적이 있는 경우, 또는 키가 정말 작은 아이가 아주 큰 아이 뒤에 앉는 일이 아니면 웬만하면 프로그램이 정해주는 대로 앉았다. 그러다 어느 날 OOO이 폭발했다.


"안 보인다고!!!"


손발을 부르르 떨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앞에 앉은 친구에게 칠판이 안 보인다고 난리를 쳤다. OOO의 자리는 맨 뒷줄이었다.


"가려져서 안 보이면 앞 친구가 고개를 옆으로 좀 숙여 줘."

"그래도 안 보인다고!!!"


그 수업은 결국 난리통에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책상은 아예 지그재그로 놓아주고는 아직도 칠판이 잘 안 보이는지 물었다. 자기 분에 못 이겨 말도 잘 못한다.


"칠판을 지우지 않을 테니 천천히 적고, 잘 안 보이면 선생님 앞자리에 와서 앉아서 적으렴."


교실 맨 앞에는 빈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상담이 필요하거나 수행평가를 할 때 등등 1대 1 대화를 위해 거의 매년 그렇게 마련해 두었었다. 맨 앞자리에 앉더니


"이제 잘 보인다!!"


알고 보니 그것은 시력의 문제였던 것이다.


"너 근데 왜 여태껏 글씨가 잘 안 보인다고 얘길 안 했어. 선생님은  몰랐잖아~"


OOO은 3학년이 되도록 시력이 좋고 나쁜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몰랐던 모양이다.


"너, 안경을 맞춰야겠다."


학부모님께 그날 당장 연락을 드렸다. 안경을 이내 맞추러 가겠다 하셨다. 며칠 뒤, 아이가 안경을 쓰고 등교를 했다.


"OOO 안경 썼다~!"


아이들이 떠들썩했다. OOO이 그 틈에서 덧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국어 시간에 어떤 장문의 글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며, 아이들 틈 사이를 걸어 다니다 OOO이 책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는 책을 더 열심히 읽었다.




어느 사회 수업에서 '마을 지도 그리기' 수업을 했다. 교과서 빈칸에 '집에서 학교 오는 길'을 그림으로 그리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각자 알아서 그릴 시간을 주고, 아이들에게 책을 뒤집어서 제출하면 내가 따로 검사해서 돌려주겠노라 했다. 아이들이 하교한 후 한 권씩 펼쳐보다 깜짝 놀랐다. OOO의 책에는 정말 상세한 지도가 아주 정확하게 그려져 있었다.


다음 날, 아이들 책을 나누어주면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어제 지도 그리기는 OOO한테 한 번씩 보여달라고 해서 보면 좋겠다. 정말 자세해서 선생님이 깜짝 놀랄 정도였어. OOO이가 지도 그리기에 재능이 있었지 뭐야."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가 OOO이의 책을 서로 보여달라고 했다.


"아!! 선생님! 너무 많이 보여달라고 해서 힘들어요!!"


라며 인상을 또 찌푸리고 짜증을 내었다.


"얘들아, OOO이 힘들대. 줄 서서 차례대로 한 명씩 봐."

"그래그래. 줄 서서 봐. 아휴 힘들어!"


그러면서도 보지 말라는 말은 안 했다. 나는 그 이후로도 지도 그리기에 관해서는 OOO이에게 주도적으로 과제를 수행할 기회를 주었다. 협동학습에서 항상 배제되기 일쑤였던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이끌어가는 것은 굉장히 어색했으나 아이들도 그것을 재미있다 생각하며 잘 따라 주었다.


반 전체 아이들이 참여한 큰 지도 그리기에 OOO이의 지도를 거의 그대로 옮겨 그리기로 결정했다. 그 지도는 우리 반 교실 벽면에 한동안 게시되었다.


이러한 일들과 거의 동시에 도덕 전담 선생님께서도 OOO이에게


"안경 쓰니까 정말 똑똑해 보인다."


라는 칭찬까지 해 주셨다. OOO은 학기말까지 아이들과 아주 사이좋게 지냈다. 욕설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4학년이 되었고, 반장이 되었다. 어느 날 급식소에 가다가 그 아이가 줄 맨 앞에 서서 걸어가는 것을 마주쳤다. 깨끗한 남방에 넥타이까지 매었다. 다른 사람 같았다.


"이야~ OOO, 웬일이야? 반장까지 되고."


아이가 쑥스러워하며 미소를 머금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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