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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레탕트 Apr 24. 2024

<챌린저스>
코트 위에서 폭발하는 아드레날린

<챌린저스> 영화 리뷰

기대 이상의 영화였다. 인간의 감정과 욕망, 그중에서도 특히 사랑을 놓고 힘겨루기 하는 인물들의 감정선을 뛰어나게 묘사할 줄 아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색이 짙게 묻어나는 영화임과 동시에 멜로나 스포츠 영화의 매력도 함께 갖춘 장르적으로도 훌륭한 영화였다.


한 여자를 두고 쟁취하기 위해 대립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가 표면적으로는 일반적인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셋의 관계를 시종일관 팽팽하게 유지시키면서도 각각의 인물들 안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성공적으로 묘사한다. 켜켜이 쌓여온 서로의 감정과 갈등이 폭발하고, 관객의 아드레날린까지 폭발시키는 영화의 마지막 랠리 연출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아래 글에는 <챌린저스>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챌린저스> 포스터 (출처:IMDB)


우선 주연 배우 세 명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상당했다.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배우 중 한 명인 ‘젠데이아’는 이전의 <위대한 쇼맨> 그리고 듄과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같은 장르 영화에서 보여줬던 것 이상의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유포리아>에서의 ‘루 베넷’을 떠올리게 만드는 입체적이고 힘 있는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젠데이아’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영화의 연출까지 더해진 덕분에 그녀가 얼마나 매력적인 배우인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젠데이아’를 두고 대립하는 두 친구, ‘아트’와 ‘패트릭’을 연기한 ‘마이크 파이스트’와 ‘조쉬 오코너’의 연기도 대단하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키메라>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준 ‘조쉬 오코너’도 대단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트’를 연기한 ‘마이크 파이스트’의 연기에 매료되었다. 서로 치고 박는 것만 같은 처절한 관계를 이어가는 ‘패트릭’과 ‘타시’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묵직한 연기도 인상적이었지만, 영화 초반부 ‘아트’의 순진하고 어리숙한 모습부터 중후반부의 열등감에 찌든 무기력한 ‘아트’의 모습까지, 다양한 감정을 훌륭히 묘사한 그의 연기에서 심상치 않은 연기 내공이 느껴졌다.


단순한 우정 이상의 복잡한 감정을 가진 '아트'와 '패트릭'의 관계를 연기한 두 배우의 열연이 대단하다. (출처:IMDB)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영화는 세 남녀의 관계, 정확하게는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다. 한 여자를 두고 씨름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는 분명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많이 다룬 이야기 소재 중 하나일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로웠던 이유는 세련되고도 섬세하게 조율된 감독의 연출과 세 인물 사이의 긴장감을 절묘하게 유지시키는 각본 덕분일 것이다.


이전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던 슬로우 모션의 활용이나 과감한 카메라 구도가 개인적으로는 충격적일 정도로 좋았다. 이질적인 느낌 없이 ‘힙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신선했고, 무엇보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과 이야기와 훌륭한 조화를 이뤘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테니스 코트 위에 떨어지는 땀방울과 ‘아트’와 ‘패트릭’의 표정부터 몸짓 하나하나까지 볼 수 있도록 슬로우 모션으로 연출한 방식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테니스 경기의 긴장감을 만들면서, 동시에 분노와 배신감, 안도감과 희열 등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는 그 둘의 감정의 소용돌이를 관객이 오롯이 느끼게 해준다. 또한, 때로는 테니스 코트 정 가운데의 네트의 시선에서, 혹은 공을 쳐내는 ‘아트’와 ‘패트릭’이 되어서, 마지막에는 테니스의 공, 심지어는 코트의 아래에 카메라를 위치시킴으로써, ‘아서’와 ‘패트릭’을 바라볼 수 있는 모든 각도에서 그 둘의 감정적 충돌을 경험하게 만든다.


세 인물의 감정이 충돌하고 휘몰아치는 순간마다 확연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음악 또한 굉장히 인상적이다. 클럽이나 패션쇼의 런웨이에서 나올 법한 강렬한 전자음의 향연은 세 인물의 치열한 수 싸움이 긴장감과 관계의 줄타기가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를 극대화시킨다.


카메라는 세 인물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마치 유령처럼 자유롭게 부유한다. (출처: The Edge)


영화는 둘도 없는 친구였던 ‘아트’와 ‘패트릭’이 ‘타시’를 동시에 사랑하면서 펼쳐지는 흔하디 흔한 치정극, 혹은 심리 스릴러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마지막 두 남자의 랠리처럼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는 ‘타시’의 존재 덕분이다. ‘타시’는 일반적인 삼각관계의 구도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수동적인 여성의 역할이 아니다.


언 듯 보면 ‘타시’는 상대방보다 더 나은 남자라는 것을 증명하게 해주는 존재이자, 성공한 테니스 선수라는 것을 증명하는 전리품, ‘트로피’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타시’는 ‘아트’와 ‘패트릭’ 사이에 숨겨진 무언가를 드러내게 만드는 ‘각성제’이기도 하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평범한 친구 사이로 보였던 둘 사이에 ‘타시’가 등장하면서 둘 사이에 감춰져 있던 여러 감정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열등감뿐 아니라 동성애적 감정까지, ‘타시’는 두 남자의 진짜 모습, 진짜 관계를 끄집어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타시’의 캐릭터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두 남자의 관계를 지켜보는 것을 자처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는 ‘타시’가 부상으로 더 이상 테니스 선수로서 활동할 수 없는 자신을 대신할 잠재력 있는 파트너를 찾는 것처럼 그려지지만, 영화의 마지막 포효하는 ‘타시’의 모습을 보면 그녀가 진짜로 원했던 것은 그저 ‘끝내주는’ 경기, 즉 ‘아트’와 ‘패트릭’이 서로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타시'의 부상으로 세 인물의 관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폭풍을 향해간다. (출처:IMDB)


‘타시’와 가정을 꾸린 건 ‘아트’지만, 그 성취는 그녀의 부상 때문이기에 온전하지 못했고, ‘패트릭’은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둘도 없는 친구를 모두 잃었다. ‘타시’의 부상은 테니스 선수로서의 생활이 끝난 것뿐 아니라, 세 명의 삼각관계에서의 주도권을 잃은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마지막 결승 경기는 영화의 제목처럼 ‘도전자(Challenger)’인 두 남자의 대결처럼 보이지만, 코트 위에서 경기를 하는 ‘아트’와 ‘패트릭’ 뿐 아니라 코트 밖의 ‘타시’까지 플레이어로서 참여하고 있는 파워게임이다.


파국을 향해 가는 것만 같았던 이 셋 각각의 관계는 역설적이게도 마지막 랠리가 끝난 후 통쾌한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아트’와 ‘패트릭’은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타시’의 존재를 걷어내고 서로를 향한 진심을 확인하며, ‘타시’ 또한 ‘끝내주는’ 경기에 다시 한번 플레이어로서 참여했다는 것에 포효한다.


따라서 영화 속 대사처럼 테니스 경기가 서로를 마주하는 단 하나의 진실된 대화라면, 영화의 결말은 ‘아트’와 ‘타시’, ‘아트’와 ‘패트릭’, ‘패트릭’과 ‘타시’ 각각 둘로서의 관계는 비극을 맞이하는 배드엔딩이지만, 셋으로서 완전해지는 해피엔딩일 것이다.


마지막 랠리가 끝난 후의 '타시'의 포효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출처:M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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