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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로만족 Apr 30. 2022

범상치 않은 할머니를 만나다 1 : 교사 편

[교사] 조복순 선생님 인터뷰

안녕하세요, 개로만족의 브런치팀입니다 :)

개로만족은 지난 <카카오같이가치 펀딩(click!)>에서 "여성 시니어 롤모델 인터뷰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펀딩에서 함께 모아주신 응원 덕분에 교사, 모델, 양말목 메이커, 청소노동자, 펫푸드셰프로서 일하고 있는 여성 시니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만난 이야기를 이 브런치북, <범상치 않은 할머니를 만나다>에 담았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할머니들의 일과 능력에 관한 이야기가 더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범상치 않은 할머니를 만나다>의 1편으로

41년 6개월간 교사로 일해오시다 정년퇴직하시고, 현재는 시니어모델에 도전하고 계신 조복순 선생님을 뵙고 왔어요. 조복순 선생님의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인터뷰를 마친 후 어떤 일을 하고 있든 빛나는 선생님의 모습을 담아 사진을 찍어드렸습니다.



드라마에 나올 법한, 교사가 된 계기


저는 어려서부터 초2 때까지 글을 못 읽었어요. '한글 미해득'이었죠. 그 해에 기간제 선생님이 오셨는데 제가 단박에 글을 못 읽는다는 걸 알고 한글지도를 해주셨어요. 그 선생님 덕에 개안을 하듯이 순식간에 한글의 원리를 깨닫게 되었어요.


'ㄱ'에다 'ㅏ'를 붙이면 가가 되고 여기에 'ㅁ'을 붙이면 감이 되는구나!

그 선생님이 저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어요. 아무것도 몰랐던 저를 구제해주신 느낌이었어요. 이러한 경험이 계기가 되어 저 또한 서울교대를 가게 되었답니다.



한 아이도 외롭지 않게 하겠다


"한 아이도 외롭지 않게 교육을 해야 되겠다." 이게 저의 30년 교육철학이에요. 

하나는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하나를 위한 교육. 혼자만 잘난 게 아니라 일원으로서 잘나야 하고 그 일원이 그 덩어리 자체를 빛나게 하는 거죠. 서로가 힘이 되고 윈윈이 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사로서 느끼는 사회적 책임


교사로서 뿌듯할 때는 제가 가르친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제 몫을 하는 걸 실제로 봤을 때예요. 반대로 정말 가슴 아플 때는 뉴스에 흉악범들이 나올 때, '초등교육에서 따뜻하게 잘 가르쳐주지 못해서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는 사람이 된 게 아닐까...'라는 사회적인 책임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자식처럼 챙겼던 그 아이

교사 시절 조복순 선생님의 모습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간 한 남자아이가 있었어요. 


그 아이는 4학년, 누나는 6학년이었는데 아버지도 아내를 찾으러 집을 나갔더라고요. 아이 둘만 남은 거죠.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누나는 사춘기가 빨리 와서 중학교 오빠들과 본드를 했고, 동생에게 돈을 훔쳐오라고 시켰어요. 이 아이는 학교에서는 잠만 자고 오락실로 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수업만 끝나면 얘를 찾으러 근처 오락실을 전부 사방팔방 뛰어다녔죠. 오락실 사장님들도 모두 저를 알 정도로요.


저 혼자서 어떻게든 그 아이를 그 상황에서 빼내 보려고 아등바등했었어요. 방과 후에 저희 집에 데려가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그 아이는 방과 후까지 선생님이랑 있는 걸 견디지 못하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돌봐줄 어른이 없었던 이 아이를 재우고, 먹이고, 학교에 데려가고... 방과 후에 공부시키고 그랬어요.


근데 어느 날 아이 아버지가 와서 얘를 전학시켜 버리는 바람에 소식이 뚝 끊겼어요. 제가 가장 잊지 못할 학생이고, 지금도 어디선가 성인이 되었겠지만 얘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이 시련이 그 아이에게 반드시 나쁜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극복을 잘해서 자산이 되고 좋은 자극제가 되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꼭 잘 극복했기를 바라고 있어요.

좋게 생각하려 하지만...  가슴이 아픈 건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교사로서 나의 장점


열정적인 거요. 저로 인해서 주변이 밝아지는 느낌? 아이들이 up 되고 선생님들도 up 되는 이런 열정적인 것이요. 또 설득력이 좋은 편이라 이해를 잘 못하는 아이들을 끝까지 설득시키는 것들이 스스로의 장점이지 않나 싶어요.



좋은 교사란 무엇일지


1. 교사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어야 해요.  

사랑이 없는 교사가 있기도 한 것 같아요. 하지만 교사는 인간으로서 따뜻함을 가지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기계적으로 '2+2=4'가 된다는 정보만 전달하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의 손을 직접 잡고 깨우쳐 줄 수 있는 따뜻한 선생님 말이죠.


2. 아이들의 눈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교사요.  

1학년은 1학년에 맞게, 6학년은 6학년에 맞게, 바로바로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는 탄력적인 교사가 훌륭한 교사 같아요. 근데 그런 교사가 되는 게 참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냥 "교사"가 아니라, 학년에 딱 맞춘 "6학년 교사"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명이라도 더 눈 마주쳐줬다면


교사 생활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제가 승진을 신경 쓰느라 아이들 교육에 소홀하기도 했다는 점이에요. 되게 미안하죠. 한 아이라도 외롭지 않게 하겠다는 게 저의 교육철학이지만, 제 눈에서 소외된 애들도 많았을 거예요.


40년 전쯤에는 6-70명 가르칠 때도 있었으니까요. 1부제, 2부제, 오전반, 오후반이 있었거든요. 한 명씩 눈 마주쳐주는 것이 시간적으로도 부담되었던 것 같아요.


사실 아까 부모님이 집을 나간 아이의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각자의 문제가 있던 아이들을 제가 다 보듬지 못하고 제 손을 떠나간 아이들도 많았을 거예요.


'내가 정말 참다운 교사였나'를 생각해보면 '나도 월급쟁이에 불과한 것이었나'라는 자책감도 있어서 아쉬워요.





꿈을 가져라, 훨훨 날아라 얘들아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설령 불가능할지라도, 또는 아주 작아도 괜찮으니 꿈을 키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꿈이 없는 사람하고 있는 사람하고 눈빛이 다르거든요. 


아이들이 꿈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해볼 수 있게, 교사와 어른들이 잘 이끌어줘야 하죠. 자기 꿈이 백 번이 바뀌더라도, 꿈이 허황돼 보일지라도 꿈을 꾸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나중의 문제예요.


어른들은 그 아이에게 끊임없이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대화해야 해요. 

작은 일일지라도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깨우쳐주고, 아이와 무엇이 흥미로운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계속 찾게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교사도 하나의 인격체

#후배 교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교사는 우선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야 해요. 선생님이 건강해야 아이들도 건강해지거든요.


교사로서의 책무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도 자아실현해서 끊임없이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단순한 월급쟁이 이상으로, 내가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자아실현해가는 태도가 필요해요. 



직접 교과서 집필까지?

초등학교 시절 이 교과서로 공부했던 인터뷰어 무지!



'교사'라는 직업을 추천/비추천?


저는 교사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선천적으로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고 나에게 따뜻함이 있다면, 저는 그 사람이 교사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추천해주고 싶어요. 즐겁고 뿌듯한 일이 될 거예요.





퇴직 후 시니어모델로 인생 제2막 시작?

출처 : KBS '황금연못'


저는 마침표를 찍을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 정년퇴임을 했어요. 퇴직 후에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계획이 다 세워지지 않았었거든요. 그래서 퇴직 후에 시간을 가지고 “내가 가르치는 거 말고 뭘 하고 싶지?” 생각해봤어요. 이제 새로운 일을 하고 싶더라고요. 정적이지 않고 동적인 일, 완전히 다른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어 졌어요. 그게 무엇인가 했더니 캐릭터에 맞게 저를 변신할 수 있는 배우나 모델이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강남구청의 '강남 시니어클럽'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모집하길래 시니어모델 프로그램에 신청했어요. 덕분에 지난 8월 아침에 KBS ‘황금연못’에 나가기도 했답니다. 또 '알토란'이란 프로그램에 나가서 음식 먹을 때 디저트를 먼저 먹는 게 좋은지, 아니면 한꺼번에 다 먹는 게 좋은지에 대한도 실험해봤어요. 색다른 경험이었죠.


정말 더 진지하게 해 보기에는 시니어모델이 저에게는 어정쩡한 느낌이었어요. TV에 나오는 시니어 모델들은 머리가 하얗게 센 완벽한 할머니들인데 저는 아직 그게 아니라서요. 


시니어 모델이라면 저처럼 어정쩡한 나이의 사람들은 아직 쓸모가 많지 않더라고요. 제가 머리가 새긴 했지만 그렇게 하얗게 샌 할머니는 아니고... 또 제 나이 정도의 모델이면 이미 경력이 오래된 분들도 너무나 많거든요. 저는 그냥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그 사람들의 밥그릇을 뺏어갈 만큼 간절하거나 능력이 대단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40년 동안 앞으로 봐도 선생님, 뒤로 봐도 선생님인 이미지에서 살아왔는데, 새로운 모습에 도전해보니 재미있었어요. 자유로운 제 모습을 알게 되기도 했고, 새로운 모습에 맞춰보기도 한 이 경험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퇴직 이후 제2의 인생을 알차게 사는 원동력

퇴직 이후에도 새로운 즐거움을 탐구하고, 제가 모르는 미지의 것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건 뭘까? 그건 어떻게 되지?'하고 호기심을 가지면서 제가 다시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빛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저의 큰 장점이에요. 그렇게 저는 60이 넘어서도 제가 모르는 저의 모습들에 대해 알게 되는 재미가 있어요. 몸이 아프지만 않으면 인생은 참 여러모로 새롭고 재밌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Main interviewer & editor: 무지(PM)

Final editor: 제시(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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